고구려 광개토, 장수왕 시기 한·예족의 복속과 고구려인화
A study on Conquest of King Gwanggaeto and Jangsu over Han,Ye tribes and Assimi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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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소위 한, 예의 거주 지역으로 인식된 한반도 중․남부 지역으로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광개토왕 대부터이다. 영락 6년까지의 대 백제전에서 고구려는 예성강~한강을 잇는 선, 백제의 직속 영역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영락 17년에는 당시 백제에 부용되어 있던 강원 영서 지역에 대한 정벌을 단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미 영락 8년에영동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한반도 북부에서 중, 남부 지역으로 이르는 동쪽루트를 확보하였다. 이후 장수왕이 한강 유역과 남한강 수계를 차지함으로써한반도 중부 지역은 완전히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 고구려가 광개토, 장수왕대를 거치며 남진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이며 한반도 중, 남부 지역으로의 진출과 영역화를 이룬 것은 정치, 국제 관계 등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요인 외에도 당시 고구려인들이형성하였던 독자적 천하관과 그 내부에서 존재하던 고구려와 제세력들 간의동류의식 또한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동류의식 형성의 가장 중요한원인은 당시 고구려와 소위 한예 세력 간의 언어, 인종적 유사성에서 찾을수 있다. 언어학적으로나 형질 인류학적으로 고대 한반도 남부의 주민들은 일본, 동남아 등 남방적 특징보다는 퉁구스 등 북방계적 특질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고구려로 대표되는 예맥계와 한반도 중, 남부의 한예계는 서로 다른종족 집단이 아니라 언어, 풍습, 혈통적으로 상당한 동질성을 가졌다고 할수 있겠다. 이러한 종족적 유사성을 토대로 소위 예맥계 국가인 고구려는 한반도 중, 남부 지역의 한예계 종족들을 복속하고 빠른 속도로 ‘고구려인화’할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高句丽向所谓的韩、濊居住的韩半岛中、南部地区全面进驻是开始于广开土王时期。在持续到永乐6年的与百济对战中,高句丽确保a礼成江~汉江一带的百济直属领土。笔者认为,在此基础上,永乐17年高句丽对百济附属的江原岭西地区进行a征伐。并且,高句丽在永乐8年已占领a岭东地区,所以,事实上高句丽已经确保a从北部到中部、南部一线的东部通道。之后,长寿王通过占领汉江流域及南汉江水系使得韩半岛的中部地区完全成为高句丽的领域。高句丽在广开土王,长寿王朝代表现出a强烈的南进欲望,向韩半岛中部、南部进驻存在多样的政治,国际等关系。然而,除这些原因之外,当时高句丽人形成的独立世界观以及内部存在的高句丽与诸集团间的同类意识也起到a不少作用。这种同类意识形成的最重要原因可以在当时高句丽与韩濊集团间语言和人种的类似性中找到。不管是从语言学上还是从形质人类学中,可以发现古代韩半岛南部居民相对于日本和东南亚等南方特征其通古斯等的北方系特征更加突出。也就是说,代表高句丽的濊貊系和韩国岛中南部的韩濊系并不是不同的种族集团,而是在语言、风俗和血统上有着相当大的同质性的。在这种种族相似性的基础上,可以看出濊貊系国家高句丽降服a韩半岛中部、南部地区的韩穢系种族,并将他们快速高句丽人化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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