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安高句麗碑』의 발견과 내용에 대한 考察
The Discovery and Analysis of Koguryo Tomb-guarding Mon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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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구려 왕릉을 수묘하기 위해 세워진 고구려비가 중국 집안에서 발견되었다. 집안은 고구려의 왕성, 왕릉이 소재했던 곳이다. 이 발견은 4~5세기 고구려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 비석의 발견으로 인하여 고구려의 수묘제와 관련하여 『광개토왕릉비』에 기록된 내용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은 선대왕의 무덤에 비석을 세운 사실, 수묘인의 매매 및 전매금지령의 시행과 처벌규정을 제정한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광개토왕릉비』에는 보이지 않는 용어들이 있어 당시 수묘제의 실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분석 결과, 이 비석은 광개토왕 시기에 건립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비석은 광개토왕이 祖先王陵에 건립한 비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비석의 건립목적은 왕릉수묘의 원활한 유지와 운영을 위한 수묘비로서 파악하였다. 나아가 이 비석의 주인공을 비석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위치한 천추묘로 비정해 보았다. 『집안고구려비』에는 독자적인 기록이 보인다. 이들 기록을 분석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四時祭祀’용어를 통해서 『광개토왕릉비』 건립 이전 시기에 국가제사, 수묘제의 개편이 시행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烟戶頭 廿人名’용어를 통하여 고구려왕릉에 20家의 수묘인이 배치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自戊□定律敎□發令’ 용어를 통하여 수묘관련 율령의 제정 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고, 『광개토왕릉비』에 기록된 율령관련 기록과 상호비교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 분석을 통해서 『집안고구려비』가 『광개토왕릉비』보다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집안고구려비』는 현존하는 最古의 고구려시대 비석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Abstract
Recently, a new Koguryo stele monument was unearthed in Jian, China. Jian is the location of the ancient capital of Koguryo and its royal tomb complex. This fresh founding is currently known to provide certain clues to understand 4-5th century Koguryo history from a rather different perspective. The discovery eventually confirms the fact that the tomb-guarding system inscribed on the great stele of king Gwanggaeto is indeed authentic. The tomb-guarding system illustrates that the monument was erected at the tombs of former kings, execution of laws forbidding buying and selling of tomb guardians, and formulation of punishment of legal violations. However, the latest monument also reveals several new terminologies which were previously not identified on the Gwanggaeto stele, which then helps to crystallize the realities of tomb-guarding structure of the contemporary period. The study results of the new monument are as follows. This stele was founded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geto. The monument was probably one of the steles arranged for the tombs of predecessors by Gwanggaeto the Great. The motive seems to be a kind of landmark for the amicable maintenance and management of the royal tombs. In this research, it is speculated that this stele belongs to the Cheonchu tomb, which is the closest to the stone. Also, additional terminologies and phrases from the new stele were analyzed, which generated colorful interpretations of the Koguryo tombs and ancestral ritual 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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