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고구려비」의 수묘인 ‘차착(差錯)’ 문제를 통해 본 건립 시기 검토
The Construction Date Observed through the Tombkeeper’s “Trial and Error” in the Jian Goguryeo St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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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국내 학계에서의 「집안고구려비」에 대한 사료적 검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논의를 제기한 후,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집안고구려비」의 사료적 가치를 확보하고 그 내용상의 문제를 합리적으로해석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집안고구려비」는 2012년에 발견된 이후, 중국학계와 국내 학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고구려비」를활용한 연구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해 왔다. 이는 중국 당국에서 국내 학계의 실견(實見)을 허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 측에서 제공하는 제한된 탁본에 의존하여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집안고구려비」의 활용도에 대해 일정한제약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대사를 연구함에 있어 「집안고구려비」의 발견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집안고구려비」를 비롯한 새로운 금석문 및 사료 등의 발견에 있어 사료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학계 내에서의 검토만이루어진 후 국내 학계는 이를 수용하는 형태의 수동적인 입장에 머무르고 있다. 때문에 발견 초기 초보적인 진위여부 문제만이 제기되었을 뿐 이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없었으며, 이에 따라 진정성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점이 이 글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전히 집안비가 위비일 경우그 목적이 무엇인지가 밝혀져야 함에도 불구하며 현재로서는 해명하기 어려운부분이기 때문에 필자 역시 위비일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진위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룬 이유는「집안고구려비」가 가 위비일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진위 문제에서 논란이 될수 있는 부분을 살펴본 후, 「광개토왕릉비」와의 비교를 통해 「집안고구려비」가담고 있는 시기를 파악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집안고구려비」가 「광개토왕릉비」와 달리 수묘인 매매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는측면에 주목하여, 「집안고구려비」가 담고 있는 ‘차착(差錯)’ 문제에 대해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집안고구려비」에서 확인되는 ‘차착’ 문제에 대한 혼란은 「광개토왕릉비」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서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로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집안비는 능비에서 언급하는 ‘묘상입비’의 비석이 아니며, 건립 시기 역시 광개토왕대가 아닌 장수왕대 이후로 상정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article reviews historical records to secure the value of the Jian Goguryeo Stele as a historical record, and seeks reasonable understanding of problems in the stele’s contents. Since the discovery of the Jian Goguryeo Stele in 2012, Korean and Chinese scholars have shown interest in the text. However, Korean scholars have encountered difficulties in conducting research using the Jian Goguryeo Stele because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did not allow actual observation and offered restricted rubbings of the stele. The discovery of the Jian Goguryeo Stele is important for research in ancient Korean history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s. A discussion of discoveries of historical records such as the Jian Goguryeo Stele and inscriptions should proceed, but reviews of these historical records are performed only by Chinese scholars, and Korean scholars are not able to engage the stele text. Accordingly, that a sincere discussion has not yet occurred is the starting point of this article. In the case that the Jian Goguryeo Stele is fake, the purpose for that must be found. However, this is difficult to explain at present. Thus, I too believe that there is a low possibility that the Jian Goguryeo Stele is a fake. Nevertheless, the reason this article primarily treats the authenticity of the Jian Goguryeo Stele is not to present the possibility that the Jian Goguryeo Stele is fake. Rather, the goal is to understand the time of the Jian Goguryeo Stele through a comparison with the King Gwanggaeto Stele, after examining features that may verify authenticity. This article focuses only on the tomb–keeper’s trade, unlike the King Gwanggaeto Stele, and seeks to approach “a trial and error” problem in the Jian Goguryeo Stele. As a result, this article understands that the confusion of “the trial and error” problem in the Jian Goguryeo Stele occurred during a process of pithy narration. For this reason, the Jian Goguryeo Stele is not a tale of royal tombs referred to in the King Gwanggaeto Stele, and the Jian Goguryeo Stele was completed not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gaeto, but after the reign of King Jang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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