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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라시압 高句麗 사절에 대한 새 논란 검토 - 高句麗 사신 사행(使行) 부정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Ⅰ)

Consideration on the New Dispute on the Koguri envoy at the Afrasiab wall painting - Critical View on the Denial Theory of the Dispatch of a Koguri env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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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서 발굴된 아프라시압 벽화는 고구리(高句麗) 사람의 가장 큰특징인 2개의 깃털을 꽂은 절풍 쓴 인물이 그려져 있어 국내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아프라시압 벽화에 나온 장면의 연대(年代)와 깃털관(羽冠)을 쓴 사절의 국적 문제가 많이 논의되었으나 2000년대 들어와서는 고구리 사절로 일반화되었다. 벽화의 내용 연대가 650년대로 밝혀지면서 당시 당나라와 전쟁 중이던 고구리 사신이 어떻게 사마르칸드까지 갈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도 많이 연구되었다. 따라서 당시 고구리, 당, 돌궐 같은 국제정세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전되었고, 당나라 지역을 피해 초원길로 갔던 루트도 깊이 연구되었다. 그런데 ‘고구리 사신은 강국에 간 적이 없다’는 독창적인 주장이 나왔다. 사마르칸드 화가가 당나라 그림본(模本)을 보고 그려 넣은 것이고, 고구리 사신이 실제 사마르칸드까지 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바로그 주장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연구목적이다. 사마르칸드 화가들이 중국의 그림본을 보고 그렸다는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그림본(模本)을 검토한 결과그들이 중국 모본의 성립 시기에 대해 큰 착오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이 주장한 중국의 모본이 대부분 아프라시압 벽화와 거의 같은 시기이거나 아프라시압 벽화보다 더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림본(模本)이란 그림을 그릴 때 원본으로 쓰는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본(模本)이 베껴 그린 모사도(模寫圖)보다 뒤에 출현할 수 없다. 중국의 모본 가운데 아프라시압 궁전의 벽화를 그릴 때 모본으로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① 염립본이 양직공도를 본떠서 그린 왕회도(640~656년)와 ② 막고굴 220호굴 유마힐경변상도(642년) 두 점뿐이다. 따라서 그런 그림들은 650년대에 만들어진 아프라시압 벽화와는 거의 같은 시기이거나 10년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아프라시압 벽화의 그림본(模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밝혔다. 또 실제 위에서 본 ①②의 인물과 아프라시압 벽화의 고구리 사신을 비교해 본 결과 머리에 쓴 깃털관과 소매 안에 두 손을 넣은 것을 빼고는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구리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그린 고구리 벽화의 인물과 아프라시압 벽화의 인물과도 비교해 보니, 2개의깃털로 장식한 모자, 갸름한 얼굴, 환두대도와 활동적인 바지 등, 수천 리 떨어진 나라에서 그린 그림이라는것을 감안하면 같은 계통의 그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였다. 이를 통해서 아프라시압 벽화는 고구리사람을 직접 보지 않고 그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편 후대의 베낀 그림(摹寫圖)를 가지고 시대가올라가는 그림본(模本)을 추정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지만, 그 그림본이 아프라시압의 그림본이 될 수 없다고보았을 때는 큰 의미가 없어진다. 아프라시압 벽화의 원류를 강국(사마르칸드) 바깥에서만 찾는 것보다 강국의 역사와 문화 자체에서 찾을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에 아프라시압 주변에서 발굴된 두 가지 소그드 예술품을 검토해 본 결과 소그드인 특유의 벽화 구성과 화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Abstract

The Afrasiab wall paintings excavated at Samarkand, Uzbekistan in 1965 have a depiction of two male figures wearing a feathered hairdress, a typical trademark of a Koguri 高句麗 personage which has been received an intense attention of Korean scholars. The date of the scene of the Afrasiab wall painting and the nationality of an envoy with a feathered hat 羽冠 have been the major focus of the debates so far, but since 2000s, the Koguri envoy theory is more generally accepted now. As the date based on the content of the wall painting revealed it was constructed in 650s, the issue of how a Koguri envoy could have reached to Samarkand while the Koguri had a warfare with the Tang China have been widely discussed. Therefore, the international relations among the Koguri, the Tang, and the Turks, and the route to the steppe road as avoiding the Tang territory have been studied in depth. In the meanwhile, a unique argument saying ‘Koguri envoy had never reached to the State of Kang’ came out. The argument is that the Afrasiab wall painting was made by a Samarkand painter who drew it based upon the painting copy of the Tang China, and a Koguri envoy had never reached to Samarkand. This paper proposes the counterargument to that opinion. For the issue of the Samarkand painters using the painting copy of China, the author examined the currently existing painting copies and it turned out that most arguments made a mistake on the date of the production of Chinese painting copies. Most painting copies suggested in the previous studies were the contemporary to the Afrasiab painting or later than the Afrasiab one. Because a painting copy 模本 is used at the time of the production of a painting, the painting based on a painting copy 模寫圖 cannot appear later than the original painting copy 模本. Among Chinese painting copies, the possible ones used for the Afrasiab palace painting are only two, ① Yan Liben 閻立本’s Wanghuitu 王會圖 (640~656) copied from Liang Zhigongtu 職貢圖(Illustration of Envoys Presenting Tribute) ② the scene of the Vimalakirti sutra at Mogao Cave no. 220(642). Thus, those paintings are contemporary to or about 10 years from the Afrasiab painting made in 650s, which make them difficult to be a painting copy of the Afrasiab. In addition, the comparison of a figure on the above mentioned two paintings and the Afrasiab wall painting suggests that besides the feathered hat and the posture of two hands inside a sleeve, there was no common feature. A Koguri figure on a Koguri wall painting drawn by Koguri people and the Afrasiab figure also look similar in a two feathered hat, an elongated face, a circular ended sword, and active trouser. Therefore, the paper reached to the conclusion that the Afrasiab wall painting could not have been drawn without direct observation of a Koguri personage. Because it is more desirable to search the origin of the Afrasiab wall painting not outside the State of Kang 康國 but within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State of Kang, the paper further discussed two Sogdian artworks excavated near Afrasiab and showed that they exhibit the originality of the wall painting composition and painting styles of the Sogd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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