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대 고구려의 국제관계와 이주민 동향
International Relations and Trends of Migrants in Goguryeo in the 4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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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4세기대 고구려의 국제관계에서 발생한 移住民의 동향을 검토하였다. 4세기대 고구려와 慕容部(前燕) 등의 국가 간에 발생한 이주민의 사례는 17건이 추출되었다. 고구려로 들어온 것이 10건, 고구려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 경우가 7건이다. 고구려가 확보한 이주민은 10,062명 이상, 고구려에서 타국으로 이주한 사람은 약 55,008명이다. 고구려의 인적 손실이 훨씬 컸다. 고구려로 온 ‘정치 이주민’은 모두 자발적인 망명이었다. 崔毖ㆍ佟壽ㆍ宋晃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본국에서 官人이었고 고구려로 이주한 후에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았다. 동수ㆍ서읍태수와 대방태수 張氏ㆍ佟利는 고구려에 의해 낙랑군과 대방군 고지로 徙民되었다. 이들은 고구려의 통제하에 해당 지역에 배치되었다. 4세기대 고구려는 두 차례 대규모의 ‘전쟁 이주민’을 확보하였다. 미천왕은 302년 현도군을 공격해 8천 명을, 313년에는 낙랑군을 쳐들어가 남녀 2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미천왕은 현도군으로부터 확보한 포로들을 平壤으로 사민시켰다. 이들은 고구려 도성과 인근의 勞役에 차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구려에서 모용부(전연)로 간 이주민 중 지배층은 質子로서 잡혀가거나 파견된 ‘외교 이주민’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전쟁 이주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고구려 이주민들은 주로 전연의 수도와 그 인근으로 사민되었다. 封裕 상서문에 따르면, 345년 당시 고구려 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10만 호가 도성에 거처하였다. 전연이 수도를 옮기는 과정에서도 일부 피정복민이 함께 사민되었다. 전연이 피정복민을 수도로 옮긴 까닭은 정복지에서 이주시킨 사람들을 관리ㆍ통제하기에 도성과 그 인근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전연은 목축이 생업이었으므로 농업기술에 능한 漢人과 고구려 등 이주민을 농업 노동력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trends of migrants in Goguryeo’s international relations in the 4th century. In the 4th century, there were 17 cases of migrants between countries such as Goguryeo and Murong Bu(慕容部)~Former Yan(前燕). Ten migrants entered Goguryeo and seven moved from Goguryeo to other countries. In terms of population alone, Goguryeo secured 10,062 migrants and 55,008 migrants from Goguryeo to other countries. Goguryeo suffered much greater human losses. All the ‘political immigrants’ who entered Goguryeo were voluntary asylum. Choi Bi, Dong su, and Song huang are representative. Since they were bureaucrats in their home countries, they were treated accordingly even after moving to Goguryeo. Dong su, Seoeup Taesu Jang, and Daifang Taesu Jang, and Dong ri were relocated from Goguryeo to Lolang Commandery(樂浪郡) and Daifang Commandery(帶方郡) old land. They were distributed in the area under the control of Goguryeo. In the 4th century, Goguryeo secured a large number of ‘war immigrants’ on two occasions. In 302, King Micheon(r.300~331) attacked the Xuantu Commandery(玄菟郡) and took 8,000 prisoners. King Micheon also invaded Lolang Commandery in 313 and captured more than 2,000 men and women. King Micheon moved the prisoners from the prefectural army to Pyongyang(平壤). It is highly likely that they were transferred to Goguryeo’s capital and nearby labor. There are no ‘political migrants’ in the case of emigrants who went from Goguryeo to Murong Bu(Former Yan). In the case of the ruling class, they were ‘diplomatic migrants’ who were taken hostage or dispatched. Among migrants, ‘war migrants’ accounted for the largest portion. Most of the Goguryeo emigrants were relocated to and near the Former Yan capital. The reason why Former Yan privateized the conquered people in the capital and nearby areas was that securing large-scale prisoners of war became a means of weakening the competitiveness of the other country. Since livestock farming was a livelihood, it was also necessary to use migrants such as Goguryeo, who were good at agricultural technology, as agricultural labor. The capital city and its vicinity were also advantageous in managing and controlling people who migrated from other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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