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북연 집단’의 이동을 통해 본 430년대 고구려 외교정책

Diplomatic Policy of Goguryeo in the 430s and the Trend of the Northern Yan Group

1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430년대는 북위의 화북 통일로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시기였다. 당시 고구려는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외교정책을 추진해나갔다. 이 글은 430년대 고구려가 추진하였던 외교정책의 흐름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특별히 436년 확보한 ‘북연 집단’의 고구려 내 이동 및 안치를 통해 해당 시기 고구려 외교정책의 한 단면을 탐색하였다. 430년대 고구려가 먼저 주목한 국가는 북위였다. 고구려는 435년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북위와 국제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북연의 멸망이 가까워지면서 동방 지역에 대한 북위의 압박은 커져갔다. 고구려는 북위와의 관계를 통해 자국이 원하는 바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북연과의 연합을 선택하였다. 436년 2월 북위가 보낸 告諭使의 방문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북연 집단’이 고구려로 유입되었다. 이 글에서는 ‘북연 집단’의 고구려 내에서의 이동과 안치 공간에 중점을 두었다. 수도 和龍을 떠난 ‘북연 집단’이 처음 이른 곳은 요동, 구체적으로 양평이었다. 이후 고구려는 이들을 평곽에 안치시켰으며, 재차 북풍으로 이동시켰다. 평곽은 오늘날의 遼寧省 蓋州市 일대로 비정된다. 한편 북풍은 그 위치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있는데, 이 글에서는 요동반도 해안가 일대로 간주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북연 집단’을 안치한 공간으로 요동, 특히 평곽과 북풍이 선택된 배경이다. 이는 평곽, 북풍이 가진 지리적 이점과 함께 북연 멸망 이후 고구려가 구상하였던 외교정책이 반영된 결과였다. 즉, 고구려는 북위의 위협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宋‧柔然 등 주변 세력과의 연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때 북위의 무도한 무력팽창으로 유랑하였던 ‘북연 집단’은 북위에 반대하는 세력이 연대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였다. 북연이 가지고 있었던 송‧유연과의 관계도 고구려가 이들과 교섭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되었던 듯하다. 이처럼 고구려는 송‧유연과 연계하기 용이한 교통로상의 거점인 북풍에 ‘북연 집단’을 안치하고, 새로운 대외정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Abstract

The 430s was a turbulent period in East Asia. The Northern Wei led multiple wars to unify the northern territories, and various nations engaged in diplomatic efforts to avoid wars. It was a time when both physical warfare and intense diplomatic struggles were prevalent.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diplomatic policy of Goguryeo in the 430s. Goguryeo's main objective during this period was to secure its own safety, including the newly acquired territories like Liaodong. However, the specific methods to achieve this objective manifested in various forms. Goguryeo's first focus was on the Northern Wei. In 435, Goguryeo dispatched envoys to establish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Northern Wei. However, as the downfall of the Northern Yan became imminent, the pressure from the Northern Wei increased. The envoys dispatched in February 436 was a decisive event that confirmed the Northern Wei's pressure. Subsequently, Goguryeo adjusted its foreign policy towards forming an alliance with the Northern Yan. During the process of forming an alliance with the Northern Yan, a group of the Northern Yan including Feng Hong(馮弘), the ruler of the Northern Yan, entered Goguryeo. They initially settled in Liaodong(Xiangping, 襄平), but soon moved to Pingguo(平郭) and later to Beifeng(北豊). The selection of Pingguo initially, and the subsequent move to Beifengg, had implications on Goguryeo's diplomatic policy. Exspecally, Beifeng(北豊) had the potential to be used in coordination with other neighboring powers like Liu Song(劉宋) or Rouran(柔然). That is, Goguryeo intended to minimize friction with the Northern Wei while strengthening ties with surrounding powers like Liu Song and Rouran to ensure the safety of Liaodong.

참고문헌 (53)

  1. "三國史記", ~
  2. "晉書", ~
  3. "宋書", ~
  4. "魏書", ~
  5. "北史", ~
  6. "南史", ~
  7. "資治通鑑", ~
  8. "十六國春秋", ~
  9. "十六國春秋輯補", ~
  10. "讀史方輿紀要", ~
  11. "광개토왕릉비", ~
  12. 朴時亨, "광개토왕릉비" (1966), 사회과학출판사
  13. 김종완, "中國南北朝史硏究 : 朝貢‧交聘關係를 중심으로" (1995), 일조각
  14. 필립 모로 드파르쥐, "지정학 입문 : 공간과 권력의 정치학" (1997), 새물결
  15. 지배선, "中國中世史硏究" (1998), 연세대학교출판부
  16.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1999), 사계절
  17. 이성제, "高句麗의 西方政策 硏究 : 北朝와의 對立과 共存의 관계를 중심으로" (2005), 국학자료원
  18. 콜린 플란트, "지정학이란 무엇인가" (2007), 도서출판 길
  19. 이재성, "高句麗와 유목국가의 관계사 연구" (2018), 소나무
  20. 王绵厚, "고대 동북아시아 교통사" (2020), 주류성
  21.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과 유물 VIII : 혼하-요하 중상류, "여호규", 동북아역사재단, ~ (2020)
  22. 武田幸男, "高句麗史と東アジア : "広開土王碑"研究序説" (1989), 吉川弘文館
  23. 関尾史郎, "周縁の三国志 : 非漢族にとっての三国時代" (2023), 東方書店
  24. 孙進己, "东北历史地理 第1卷‧第2卷", pp.3~ (1989), 黑龍江人民出版社
  25. 徐榮洙, "廣開土王碑文의 征服記事 再檢討(中)", 歷史學報, 119 (1988), 역사학회
  26. 박경철, "高句麗軍事戰略 考察을 위한 一試論 : 平壤遷都以後 高句麗軍事戰略의 指向點을 中心으로", 史學硏究, 4 (1989), 한국사학회
  27. 池培善, "北燕에 대하여(3) : 馮弘 재위시와 對高句麗關係를 중심으로", 東洋史學硏究, 32 (1990), 동양사학회
  28. 盧泰敦, "廣開土王碑", 譯註韓國古代金石文, 1 (1992), 古代社會硏究所
  29. 林起煥, "高句麗前期 山城 硏究", 國史館論叢, 82 (1998), 국사편찬위원회
  30. 孔錫龜, "高句麗에 流入된 中國系 人物의 動向", 高句麗渤海硏究, 18 (2004), 고구려발해학회
  31. 박진숙, "長壽王代 高句麗의 對北魏外交와 百濟", 한국고대사연구, 36, pp.195~230 (2004), 한국고대사학회
  32. 여호규, "<광개토왕릉비>에 나타난 고구려의 대중인식(對中認識)과 대외정책", 역사와 현실, (55), pp.25~60 (2005), 한국역사연구회
  33. 시노하라 히로카타, "북연을 둘러싼 고구려의 정책과 국제질서인식-대북위, 대송관계를 중심으로-", 韓國史學報, (36), pp.193~234 (2009), 고려사학회
  34. 윤병모, "長壽王代 高句麗의 西方進出과 그 境界", 동방학지, (147), pp.277~314 (2009), 국학연구원
  35. 박세이, "長壽王代 北燕民 刷還에 대한 一檢討", 백산학보, (86), pp.119~149 (2010), 백산학회
  36. 김종완, "한중관계사상의 교통로와 거점" (2011), 동북아역사재단
  37. 이성제, "4世紀 末 高句麗와 後燕의 關係- 396년 後燕의 廣開土王 冊封 問題를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연구, (68), pp.35~66 (2012), 한국고대사학회
  38. 서영수, "광개토태왕의 패려 정벌과 요동순수", 백산학보, (95), pp.67~104 (2013), 백산학회
  39. 임기환, "고구려의 요동 진출과 영역", 고구려발해연구, 45, pp.77~110 (2013), 고구려발해학회
  40. 안정준, "4~5세기 高句麗의 中國系 流移民 수용과 그 지배방식", 한국문화, (68), pp.111~141 (20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41. 박세이, "高句麗와‘ 三燕’의 境界", 고구려발해연구, 54, pp.9~35 (2016), 고구려발해학회
  42. 백다해, "5세기 국제정세와 장수왕대 대송관계(對宋關係)의 성격", 역사와 현실, (102), pp.219~254 (2016), 한국역사연구회
  43. 안정준, "唐代 高句麗 遺民 一族인 劉元貞과 그의 부인 王氏 墓誌銘 -8세기 초반 高句麗 遺民 후손의 활동 사례-", 木簡과 文字, (23), pp.277~295 (2019), 한국목간학회[DOI]
  44. 이성제, "중국계 流移民의 來投와 高句麗의 대응방식 ― 중국계 유이민의 遼東지역 世居를 중심으로 ―", 중국고중세사연구, (55), pp.83~111 (2020), 중국고중세사학회[DOI]
  45. 여호규, "5세기 초·중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과 고구려의 외교정책", 역사와 현실, (124), pp.115~161 (2022), 한국역사연구회
  46. 백다해, "4~6세기 高句麗 국제관계의 전개와 遼東", 박사, pp.2023
  47. 여호규, "광개토왕릉비 제1~2면의 비면 현황과 비문 판독", 고구려발해연구, 75, pp.37~100 (2023), 고구려발해학회[DOI]
  48. 정동준, "북위와 고구려의 사례를 통해 본 책봉의 의미", 한국사연구, (202), pp.37~76 (2023), 한국사연구회[DOI]
  49. 池内宏, "滿鮮史硏究 上世 第一冊" (1963), 吉川弘文館
  50. 三崎良章, "北魏の対外政策と高句麗", 朝鮮学報, 102 (1982), 天理大學朝鮮學會
  51. 峰雪幸人, "五胡十六国時代‧西涼の防衛体制から見た柔然の拡大", (2021年, 成均館大学校‧早稲田大学校 国際学術大会)グローバル‧ヒストリの試み: ジェンダー‧異邦人‧地域対立‧政治秩序 (2021)
  52. 王绵厚, "鸭绿江右岸高句丽山城硏究", 辽海文物学刊, (2) (1994)
  53. 王飞峰, "辽宁盖州市青石岭山城的调查与发掘", 考古, (12) (2017)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