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 王室의 世系 인식 추이와 宗廟의 변천
The Progress of Royal Genealogy and Jongmyo Shrine in Gogu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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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고구려 왕실의 世系 인식 추이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묘의 변천을 추적한 것이다. 먼저 고구려 王號에 대한 분석을 통해 왕의 사후 葬地名에 따라왕호를 추증하는 관례가 故國川王 사후 山上王 시대부터 정착된 것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를 단서로 고구려 왕실 종묘의 1차 정립 시기도 산상왕대였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왕위 계승 분쟁을 거치면서 즉위한 산상왕은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 확보차원에서 왕실제사체계를 새롭게 정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는 처음 山上王 - 東川王 시대를 거치면서 太祖王을 중심으로 하는 종묘체계를 확립하여 ‘國祖王’에 대한 숭앙과 혈연 의식의 강조를 통해 왕실의 정통성과권위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4세기 故國原王 시대에 닥친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변화를 맞이하였다. 실추된 왕실의 위엄을 다시 세우고 왕권을강화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小獸林王 - 廣開土王 시대에 걸쳐 건국기의 3왕 東明聖王․琉璃明王․大武神王에 대한 숭앙 의식을 강조하였다. 이와 더불어 광개토왕 시대에는 先代 왕의 왕호와 그 계보 및 장지명에 대한 일괄 정리가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고구려의 종묘 체계는 이 시기 확립된 왕실 계보에 기초하여 새로운 양상으로 진전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d the progress of royal genealogy in Goguryeo dynasty andreviewed the transition of Jongmyo Shrine(宗廟). Jongmyo Shrine of royal familyin Goguryeo was established during the time of King Sansang(山上王). And It becamethe symbol of King Taejo(太祖王)'s family line and their lineage. By the 4th century, the perception of royal genealogy was changed. The threekings(Chumo-Yuri-Daemusin), the mythical founder of Goguryeo Kingdom, beganto be worshipped during the time of King Sosurim(小獸林王). Consequently, royalancestral ritual in Jongmyo Shrine paid great attention to the mythical three kingsin its early years. In the time of King Gwanggaeto(廣開土王), also the royal tombswas renovated. In conclusion Jongmyo Shrine in Goguryeo dynasty was reorganizedinto a new system under the progress of royal genea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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