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史書에 나타난 高句麗 初期 王系와 宮의 裔孫化
The Study on the Early Royal Lineage of Goguryeo and the Genealogy of the King ‘Gung’ in the Chinese History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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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고구려의 1대 동명성왕부터 6대 태조대왕까지를 분석 대상으로 하여, 중국사서에 기록된 고구려초기 왕계를 『삼국사기』 및 「광개토왕비」 등 한국 측 자료에 나타나는 왕계와 비교ㆍ분석한 글이다. 『위서』는 주몽의 고구려 건국 설화와 기재하면서 주몽을 위시한 초기 4대 왕계를 설정하였다. 그런데 이 당시 고구려에서는 시조 주몽의 고구려 건국 설화와 함께 그 계승자인 유리왕, 대무신왕 등 3왕의 사적이 하나의 서사구조로 전승되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 측에서 입수한 정보는 「광개토왕비」에서 전하는 추모왕 및 초기3왕 계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위서』가 비록 최초로 고구려 초기 왕계를 전하였으나, 이후편찬된 중국사서에서는 『위서』에서 제시한 4대 왕계를 3대로 수정하여 싣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편, 『위서』는 고구려 6대 태조대왕 궁이 막래, 즉 3대 대무신왕의 예손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북사』 나 『册府元龜』 등 중국 측 자료에는 주몽의 고구려 건국 및 초기 3왕의 재위 시기가 모두 한 무제가 조선을 멸하기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주몽을 『삼국사기』에서 밝혔듯 서기전 1세기 후반에 건국한 고구려의시조가 아니라, 현도군의 속현이 된 바 있는 그 이전 고구려의 시조로 오해한 것이다. 이로 인해 『後漢書』나『三國志』를 통해 이미 2세기 대 구체 행적이 확인되는 태조대왕(궁)과 초기 3왕의 마지막 왕인 대무신왕(막래) 과는 200여 년의 시간상 공백이 설정되어 버렸고, 궁은 자연 막래의 예손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궁의 裔孫化는 역사적 사실 관계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몽이 건국하기 이전부터 존재한 고구려의 실체와주몽이 건국한 고구려의 정보가 착간되면서 발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Abstract
本稿は、高句麗の初代の東明聖王から6代の太祖大王までを分析対象として、中国史書に記録された高句麗の初期王系と『三国史記』及び「好太王碑」などの韓国側の資料で王の在位年数をめぐる記録が異なっている点に着目した論文である。 『魏書』には朱蒙の高句麗の建国説話とともに初期4代の王系が記載されているが、この記録は435年に高句麗へ来た北魏の使臣であった李敖が集めた情報によるものとされる。その当時の高句麗では始祖の朱蒙の建国説話と朱蒙の継承者である瑠璃王と大武神王の業績など3王の事績が、一つの叙述構造として結びつけられていることが確認される。従って、中国側が手に入れた情報は、「好太王碑」に見られる鄒牟王及び儒留王と大朱留王の3王の系譜と同じ王代の数だと思われる。そのため、『魏書』は初めて高句麗の初期王系を伝えている史書であるが、『魏書』以後に編纂された中国史書には『魏書』のように4代の王系ではなく、3代として修正し記録していること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 一方、『魏書』には、高句麗の6代目の太祖大王、つまり「宮」という王が莫来(3代の大武神王)の裔孫であるという記録が残されているが、『北史』や『冊府元龜』などの資料には朱蒙の高句麗の建国時期と初期3人の王の在位時期が、すべて漢の武帝の朝鮮征伐の以前にあったとされている。紀元前2世紀のことだと想定しているのである。それにより、朱蒙のことを『三国史記』による紀元前1世紀後半に建国された高句麗の始祖ではなく、玄菟郡の属県になったことがある、それ以前に存在した高句麗の始祖だと誤って理解したのである。そのため、『後漢書』や『三国志』を通じてすでに2世紀に具体的な行跡が認められ、宮と莫来との時間差は200余年の空白が生じざるを得ない状態になってしまった。宮を莫来の裔孫として誤って理解していた理由はここにある。結局、宮の裔孫化は歴史的な事実関係に基づいたものというより、朱蒙が建国する前から存在していた高句麗という実体と、朱蒙の建国した高句麗を錯覚した結果とい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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