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鄕校 文書를 通해 본 朝鮮後期 在地士族의 實態와 社會的 連帶 - 전라도 구례 지역 사족을 중심으로 -

Social Solidarity of the JaejiSajok(a local nobleman) in late Chosun Dynasty studied through HyangKyo document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조선후기 재지사족은 향촌에 대대로 거주하며 향교와 서원 등을 통해 지역을 지배하던 계층이었다. 이들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대부분 중앙과 정치적으로 연계되었거나, 사족의 영향력이 큰 지역,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한 가문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재지사족이라고 모두 관리를 배출하거나 정치적으로 세력이 컸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후기에는 오히려 관직에진출하지 못하거나, 관직에 나갔더라도 미관말직에 불과했던 가문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조선후기 재지사족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계층의 재지사족이 존재하였음을 먼저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과거합격자 배출이 매우 적어 관직 진출이 어려웠던 대표적 지역인 구례의 재지사족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구례는 조선시대 전라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56개 군현 중 호구에 있어 거의최하위에 해당되며, 토지도 매우 열악하였다. 이렇듯 토착적 기반도 약했고관직에도 거의 진출하지 못했던 구례 지역의 재지사족이 어떠한 방식으로향촌을 지배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였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이들 재지사족과 관련된 문서들이 향교에 보관되어 있어 이를 중요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鄕案』,『靑衿案』,『幼學案』,『靑衿契案』등 각종 문서를 중심으로 관직 진출이 거의 없었던 재지사족의 존재 양상과 향촌 지배 방식의 일면을살폈다. 구례의 재지사족들은 먼저 『鄕案』을 작성하여 연대하였다. 그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였던 것이다. 17세기 이후에는 『청금안』을 작성하였다. 그들은 이를 통해 향교를 장악하고 향촌을 지배하였다. 19세기에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청금안』을 더 이상 작성하지 않았다. 그 대신 청금계를 결성하고 『청금계안』을 만들었다. 이렇듯 재지사족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동시에 향촌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연대하면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Abstract

The late Chosun Dynasty, JaejiSajok(a local nobleman) has lived forgenerations in villages and dominated areas by HyangKyo (a nationalcountry school) and 서원. Most of previous studies have either beenlinked politically with the center or the famous family has been madeto represent the area under Sajok's influence. But all JaejiSajok(a localnobleman) discharged administrators or was not politically powerful. Late Chosun, a lot of families rather not have had entered thegovernment office or stayed the lowest position of the Government. Thus, for understanding late Chosun JaejiSajok(a local nobleman)correctly, we should recognize various layers of JaejiSajok(a localnobleman) existed and it is necessary for the specific case study ofthese. Under these knowledge, this study studies JaejiSajok(a localnobleman) of Gurye area who have had difficulty on dischargegovernment officer. Gurye's poplulation was 22nd in 25 counties andprefectures over South Jeolla region, and its land was also very poor. It studied how JaejiSajok(a local nobleman) of Gurye dominated thevillages even they had weak native base and not discharge government officer much. In particular, there are documents related to the ruledSajok Hyanggyo, this study took it as an object of critical analysis. This study focuses on existence aspect of JaejiSajok(a localnobleman) who didn't discharge government officer much and aspectof the country domination scheme through documents such as 『HyangAn』,『ChungkumAn(靑衿案)'』,『YouHakAn』,『HyangKyoSeoJaeAn』,『HyangKyoPojikAn』. JaejiSajok(a local nobleman) was firstly created『HyangAn』 for regiment and they consolidated their control powerthrough this. After 17th century, they created 『ChungkumAn(靑衿案)』and they dominated and controlled the HyangKyo. In 19th century, theydidn't write 『ChungkumAn(靑衿案)』anymore because it was hard tomaintain their status. Instead, they organized ‘ChungkumKae(靑衿契)’and created『ChungkumKaeAn(靑衿契案)』. As such, JaejiSajok(a localnobleman) co-worked to keep their social status and dominate thecountry society. Finally, this paper studied concrete case of various cases ofJaejiSajok(a local nobleman) in late Chosun Dynasty. Also expectingthis paper helps to understand JaejiSajok(a local nobleman) who wasdominator of the country society.

참고문헌 (71)

  1. "天啓六年丁卯(一六二七) 十二月 日 鄕案", ~
  2. "仁祖十七年己卯(一六三九) 九月二日 鄕案", ~
  3. "宗七年 丙申(一六五六) 十一月二十七日 鄕案", ~
  4. "孝宗八年 丁酉(一六五七) 六月 日 鄕案", ~
  5. "肅宗二十年甲戌(一六九四) 二月 日 鄕案", ~
  6. "辛未二月 日 靑衿儒案(1691년 숙종17)", ~
  7. "癸酉八月 靑衿老儒(1693년 숙종19)", ~
  8. "戊戌七月 日 靑衿儒案(1718년 숙종44)", ~
  9. "辛丑三月 日 靑衿儒案(1721년 경종원)", ~
  10. "乙巳四月 日 靑衿儒案(1725년 영조원)", ~
  11. "壬子二月 日 靑衿儒案(1732년 영조8)", ~
  12. "艮田面幼學案", ~
  13. "界寺面幼學案 明倫堂重修幼學收錢案", ~
  14. "馬山面幼學案(甲申十月日) 明倫堂重修鳩財案", ~
  15. "文尺面幼學案(甲申十月日)", ~
  16. "-崇禎紀元後四 歲在甲申十月日 明倫堂重修", ~
  17. "放光面幼學案(甲申臘月日)", ~
  18. "甲申月日 明倫堂重修幼學名帖", ~
  19. "龍川面幼學案(甲申十月)", ~
  20. "-歲在甲申十月日 明倫堂重修", ~
  21. "吐旨面幼學名帖案(甲申十月日", ~
  22. "縣內面幼學名案(甲申十月十七日)", ~
  23. "靑衿契名案 崇禎後二百十一年己亥(憲宗五年,1839)", ~
  24. "靑衿契名案 崇禎二百二十年甲戌(憲宗十四年,1848)", ~
  25. "靑衿契改案 名案 丁巳(哲宗八年,1857)", ~
  26. "世宗實錄地理志", ~
  27. "求禮郡誌上" (2005), 구례군지편찬위원회
  28. "구례향교지" (1990), 구례향교지편찬위원회
  29. "전남향교문화사하" (2004), 전라남도향교재단
  30. "戶口總數" (1996), 서울大學校奎章閣
  31. 권경안, "큰산아래사람들-구례의 역사와 문화" (2000), 향지사
  32. 김현영, "조선시대의 양반과 향촌사회" (1999), 집문당
  33. 손병규, "호적, 1606-1923 호구기록으로 본 조선의 문화사" (2007), 휴머니스트
  34. 와그너, "보주 문과방목 CD-ROM" (2002), 동방미디어주식회사
  35. 윤희면, "조선후기 향교연구" (1990)
  36. 이해준, "조선후기 사회사 연구법" (199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7. 전경목, "고문서를 통해서 본 우반동과 우반동 김씨의 역사" (2001), 신아출판사
  38. 전라남도, "전남의 향교" (1987)
  39. 정진영,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1998), 한길사
  40.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기 향촌사회사 연구의 성과와 전망" (1998)
  4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CD-ROM 사마방목" (2001), 서울시스템주식회사
  42. 강대민, "한말 향교유림의 동향 연구-영남지방의 향교를 중심으로-", 부산사학, 17 (1989)
  43. 金恩英, "朝鮮後期 求禮 開城王氏家門의 成長과 顯祖 顯揚活動", 석사, 사학과, pp.2006
  44. 김경옥, "조선후기 동성마을의 형성배경과 사족들의 향촌활동 - 전라도 영암 영보리 사례를 중심으로-", 지방사와 지방문화, 6(2) (2003), 역사문화학회
  45. 김용덕, "조선후기 향교 연구-호남을 중심으로-", 한국사학, 5 (1983)
  46. 김용덕, "조선후기 향교연구", 한국사학, 5 (1983)
  47. 김은영, "조선후기 구례 개성왕씨가의 고문서 검토- 구례 개성왕씨가의 성장과 顯祖顯揚活動을 중심으로-", 古文書硏究, 31, pp.165~191 (2007), 한국고문서학회
  48. 김준형, "鄕案入錄을 둘러싼 경남 서부지역 사족층의 갈등― 晉州鄕案을 중심으로 ―", 조선시대사학보, (33), pp.147~200 (2005), 조선시대사학회
  49. 김호일, "조선 후기 향교 조사연구", 중앙사론, 4 (1985)
  50. 김호일, "조선후기 향교 조사보고", 한국사학, 5 (1983)
  51. 미야지마히로시, "조선 후기 지배 계층의 재생산 구조 —비교 연구를 위한 초보적 탐구—", 韓國史學報, (32), pp.211~243 (2008), 고려사학회
  52. 박진철, "朝鮮時代 地方 居住 士族의 社會的 地位 維持 努力과 司馬試 ―羅州 居住 司馬試 入格者 實態 分析을 中心으로―", 이화사학연구, (41), pp.139~166 (2010), 이화사학연구소
  53. 박진철, "朝鮮後期 鄕校의 靑衿儒生과 在地士族의 動向 ―羅州 『靑衿案』 分析을 中心으로―", 韓國史學報, (25), pp.219~246 (2006), 고려사학회
  54. 송준호, "조선의 양반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조선사회사연구 (1987), 일조각
  55. 송찬식, "조선 후기 교원생고", 국민대학 논문집:인문과학편, 11 (1977)
  56. 안광호, "朝鮮後期 求禮 五美洞 文化柳氏의 移住와 定着 過程", 조선시대사학보, (30), pp.167~191 (2004), 조선시대사학회
  57. 윤희면, "조선후기 향교의 청금유생", 동아연구, 17 (1989)
  58. 이범직, "조선 전기의 교생신분", 한국사론, 3 (1976)
  59. 이성무, "한파 이상옥박사 회갑기념논문집" (1969)
  60. 이정우, "19-20세기초 공주지방 유림의 동향과 향촌활동의 성격변화-서원, 향교의 운영과 고문서류의 작성을 중심으로-", 충북사학, 11,12 (2000)
  61. 이정우, "조선후기 재지사족의 동향과 유림의 향촌지배-전라도 금산군 서원, 향교의 치폐와 고문서류의 작성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7 (1998)
  62. 李政祐, "朝鮮後期 懷德地域 士族의 鄕村支配 硏究", 박사, 한국사, pp.1997
  63. 이창걸, "조선중기 지배집단의 사회적 배경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학회 93년 후기사회학대회 발표논문 (1993), 한국사회학회
  64. 전경목, "조선말기 어느 窯戶富民家의 身分上昇을 위한 노력-전라도 구례현의 ‘절골김씨’ 고문서를 중심으로-", 호남문화연구, 31 (2002)
  65. 정승모, "書院․祠宇 및 鄕校 組織과 地域社會體系(上)", 태동고전연구, 3 (1987)
  66. 정진영,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 (2013), 한국국학진흥원
  67. 최승희, "조선후기 <유학>․ <학생>의 신분사적 의미", 국사관논총, 1 (1989), 국사편찬위원회
  68. 최승희, "조선후기 양반의 사환과 가세변동", 한국사론, 19 (1989)
  69. 최영호, "유학․학생․교생고", 역사학보, 101 (1984)
  70. 최윤진, "송준호교수 정년기념논총" (1987)
  71. 한동일, "조선시대 향교의 교생에 관한 연구", 인문과학, 10 (1981)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