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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문에 보이는 時制 서술법과 歷史觀

The tense Description and text organization in sentences of King Gwanggaeto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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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연구에서는 광개토왕비문의 문장을 過去, 現在, 未來라는 時制 기술법을 기준으로 분석하여 비문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역사관을 살펴보았다. 1부 문장에서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제가 하나의 완결된 구성으로 짜임새있게 서술되어 있다. 1부 문장의 핵심 내용은 시제상으로 과거와 현재의내용이다. 여기서 과거 시제로 서술된 내용은 17世孫인 광개토왕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왕실이 갖는 신성한 전통이다. 현재 시제는 그러한 과거 조상으로부터 비롯되는 神聖性의 현재적 구현으로서 곧 광개토왕의 훈적이다. 2부 문장에서는 과거의 역사적 상황이 현재 광개토왕의 정벌이나 군사행동의 역사적 정당성이나 명분의 동기가 되고 있다. 특히 광개토왕의 군사행동은 과거 상황의 회복이라는 왕의 훈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舊是屬民’이었던 백제․신라․동부여가 어느 시기엔가 屬民관계에서 이탈되었다가,현재 광개토왕의 征討 등으로 인해 다시 속민관계가 복구되었다고 기술하는방식으로 광개토왕의 훈적을 드러내는 시제 기술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3부 수묘인연호조 기사에서 과거-현재의 관계는 이와는 다르다. 즉 과거가 현재 광개토왕 정책의 명분으로 기능하거나 혹은 과거 역사상의회복이라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수묘인연호제가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기 때문에, 현재 광개토왕은 이를 개혁하여 미래에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수묘인연호 제도를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1부와 2부의 기사와는달리 과거가 현재에 복원해야할 대상으로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개혁한 광개토왕의 훈적을 드러내는 서술법인 것이다. 이와같이 과거-현재-미래 시제 서술을 통해 광개토왕의 훈적을 드러내는문장 구성 방식이 1,2부와 3부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1,2부가 광개토왕의 공훈을 드러내는 훈적비로서의 서술 문장이라고 한다면, 3부 기사는 보다실용적인 公文書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1,2부와 같이 이념적인 서술이 아니라 수묘인연호와 관련된 현실과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이라고볼 수 있다. 이러한 시제 서술법의 차이점을 고려하면, 광개토왕비문은 서로다른 목적으로 작성된 2개의 텍스트로 구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Abstract

本文以对‘过去’,‘现在’,‘未来’三种时态叙述法的分析为基础,去探讨广开土王碑文所体现高句丽人的历史观。碑文第一部分,具备‘过去’-‘现在’-‘未来’三种时态,叙述结构完整而严谨。第一部分文章的核心内容按时态可归类为过去式及现在式。在这一段,文章以过去式描述了及至17世孙广开土王的高句丽王室所具有的神圣传承。而现在式时态部分则是基于过去祖之先神圣性的当下体现,即广开土王的勋绩。在第二部分文章里,‘过去’历史情节便为‘现在’广开土王的征伐或军事行动提供历史正当性,或为其名分的动机。尤其是,广开土王的大肆举兵便延伸为他恢复昔日秩序的辉煌勋绩。例如,身为‘旧是属民’的百济,新罗,东夫余,不知何时脱离于属民秩序,‘现在’广开土王通过征讨又重新恢复其属民关系,这种时态叙述法便是为凸显大王的勋绩而采取的。但是在碑文第三部分,有关守墓人烟户记事当中,‘过去’与‘现在’的关系设定则截然不同。即‘过去’并不具备作为‘现在’广开土王制定政策之名分的意义,或恢复历史秩序之意。反之,‘过去’的守墓人烟户制度导致了诸多问题,因此广开土王便改其制,重新拟定延伸至未来的崭新守墓人烟户制度。换言之,与碑文第一,第二部分不同,在第三部分叙述里,‘过去’并非是‘现在’要恢复的对象,而是作为广开土王改革的对象,来凸显其勋绩。如前所述,通过‘过去’-‘现在’-‘未来’时态来凸显广开土王勋绩的叙述法,在第一,二部分和第三部分碑文里,其文章逻辑结构有所不同。第一,二部分为了突出广开土王的勋绩,采取了作为纪功碑的文章叙述方式,相比之下,第三部分则作为实用性公文书的性质尤为明显。因此,第三部分内容并不像第一,二部分那样,属基于理念的叙述范畴,而是有关守墓人烟户的现实问题及现象的客观论述。考虑到碑文所采取的时态叙述法各不同,可推知广开土王碑文实际上基于不同目的而书写的两种文本组构而成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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