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무장기지 ‘봉오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평가 - 최진동·최운산 형제의 역할을 중심으로 -
A New Approach and Evaluation of the Independence Military Base ‘Bongo-dong’ - Focusing on the Roles of Choi Un-san and Choi Jin-dong Broth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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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20년 6월 7일 시행된 봉오동전투는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10여 년 동안 만주 및 간도 지역에서 축적된 항일무장투쟁 역량을 바탕으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대승을 거둔 최초의 전투였다. 지금까지 봉오동전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일본군에 맞서 승리를 거둔 전투가 이루어진 ‘공간’으로서 봉오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봉오동은 1909년 전후하여 이주한 최진동, 최운산 형제가 주변의 광활한 토지를 매입 또는 개간하여 축적한 부(富)를 바탕으로 건설한 독립군 무장기지였으며, 봉오동전투의 승리는 최진동 형제가 봉오동에서 10여 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특히 1920년 5월 19일 결성된 ‘대한북로독군부’는 최진동, 최운산 형제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결성된 연합 무장독립군단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봉오동 독립군 무장기지에 관한 공식적인 역사 기록은 거의남아있지 않으며, 소수의 독립군과 그 후손들의 기억을 통해 전승되어왔다. 그 결과봉오동은 1920년 6월 7일 일본군과 전투가 벌여 승리를 거둔 ‘공간’이라는 석고화된기억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왔다. 따라서 ‘독립군 무장기지’로서 봉오동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 하겠다. 본 연구는 최진동, 최운산 형제 유족의 증언, 봉오동전투에 참전한 독립군의 회고록 등을 바탕으로 봉오동에 독립군 무장기지가 건설되는 과정을 밝히는 한편, 봉오동 무장기지의 흔적을 위성사진을 통해 식별함에 따라 봉오동을 새롭게 평가할 수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아울러 1920년 6월 7일 시행된 봉오동전투 승리의이면에는 최진동, 최운산 형제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Abstract
The Battle of Bongodong, which took place on June 7, 1920, was a great victory over the Imperial Japanese Army based on the anti-Japanese armed struggle that accumulated in Manchuria and Gando areas for more than 10 years after the annexation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in 1910. Until now, the historical view has generally recognized the Battle of Bongodong only as a place where Independence Army had won against the Imperial Japanese Army. However, Bongo-dong was an independent military base built based on the wealth accumulated by the Choi Jin-dong and Choi Un-san brothers who moved around 1909, and the victory of the Bongo-dong Battle was a result of thorough preparation for years. In particular, the Daehanbukrodokgunbu(大韓北路督軍府), which was formed on May 19, 1920, was a united independence army formed based on the economic power of the Choi Jin-dong and Choi Un-san brothers. Unfortunately, however, there are few historical records of the Bongo-dong Independence Army military base, and it has been handed down through the memories of a small number of Independence Army and their descendants. As a result, Bongo-dong was recorded in history as a “battle space” that has been plastered in many memories, and it is urgent to re-evaluate Bongo-dong as an “Independence Army military base.” Based on the memoirs of the Independence Army that participated in the Battle of Bongodong, the testimonies of the bereaved families of Choi Jin-dong and Choi Un-san and satellite images, the traces and scale of the Independence Army military base built in Bongo-dong could be identified and a new approach and evaluation could also be provided. Through this, it was revealed that the victory of the Battle of Bongodong, which took place on June 7, 1920, was an inevitable victory achieved through the efforts of the brothers Choi Jin-dong and Choi Un-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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