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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북간도에서의 최진동의 항일무장투쟁

Choi Jin-dong’s Armed Struggle against Japan in North-Gando in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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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최진동은 홍범도와 더불어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다. 그러나 홍범도에 관한 연구 성과나 주목도에 비해 최진동의 삶과 민족운동을 주목한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이 글에서는 최진동의 민족운동을 조명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1920년 북간도 지역에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항일무장투쟁을 규명하고자 했다. 1883년 함북 온성에서 태어난 최진동은 어린 시절 북간도로 이주한 뒤 중국인 지주의 양자가 되어 부를 축적했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항일무장투쟁을 결심한 최진동은 형제들과 함께 봉오동 일대를 무장독립운동을 위한 근거지로 조성하는 한편 사병 조직을 토대로 대한군무도독부를 결성하여 무장투쟁에 나섰다. 그는 1920년 3월 양하청 부대와 함께 온성 진공작전을 통해 일제 군경을 교란했다(온성 작전). 이후 북간도 지역 독립군 통합운동 결과 성립된 대한북로독군부의 부장으로서 홍범도 등과 함께 그해 6월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 후 내홍으로 인해 북로독군부가 해체되자 독자적인 무장투쟁을 모색하던 최진동은 일본군의 간도토벌계획으로 근거지를 위협받게 되자 대한총군부를 결성해 러시아로 이동했다. 그러나 자유시 참변으로 최진동의 항일무장투쟁은 좌절을 맞이한다.

Abstract

General Choi Jin-dong(崔振東), along with General Hong Beom-do(洪範圖), was the main player who led the Battle of Bongodong(鳳梧洞) to victory. However, compared to the results of research on Hong Beom-do Island and the degree of interest, there are few studies that focus on the life of Choi Jin-dong and the national movement. In this study, as part of the work to shed light on the national movement of Choi Jin-dong, the anti-Japanese armed struggle was investigated, focusing on activities in the North Gando(北間島) in 1920. Born in 1883 in Onseong(穩城), North Hamgyong Province, Choi Jin-dong moved to North Gando as a child and became an adopted son of a Chinese landlord and accumulated wealth. Choi Jin-dong, who decided to go on an armed struggle in the wake of the March 1 anti-Japanese demonstration in 1919, established the Bongodong area as a base for the armed independence movement with his brothers, and formed the Daehangunmudodokbu(大韓軍務都督府) based on the Self-Defense Forces. In March 1920, he disturbed the Japanese military and police through a domestic advance operation to Onseong with the Yang-Hacheong(梁河淸)’s army. (穩城 作戰) Later, he was the head of the Daehanbukrodokgunbu(大韓北路 督軍府), which was established as a result of the integration movement of the North Gando Korean Independence Army, and won a great victory against the Japanese in Bongodong in June of that year with Hong Beom-do. (鳳梧洞 戰鬪) After the Bongodong Battle, Choi Jin-dong, who was seeking an independent armed struggle due to internal strife, formed the Daehanchonggunbu(大韓總軍府) and moved to Russia when he was threatened by the Japanese military’s plan to subjugation the North Gando. However, Choi Jin-dong’s anti-Japanese armed struggle faces a setback due to the disaster of Svobodny(自由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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