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화한 기억의 재구성과 봉오동전투의 배경 —1919, 20년 시점에 동만주지역의 운동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
Reconfiguration of the Memory that Became Gypsum and Background of Bongo-dong Battle(鳳梧洞戦闘)
1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운동 공간의 특성과 그에 따른 활동 양상에 주목함으로써 봉오동전투의 배경을 새롭게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다. 필자의 출발점은 동만주지역의 1919,20년이란 시기가 그 이전이나 그 이후와도 달랐다는 문제의식이다. 또 그 시기 민족운동 내부의 움직임을 균질하고 평면적으로도 볼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동만주지역의 민족운동 공간은 독립군의 활동공간과 주요 활동 방식(민정 대 무장)에서 볼 때 두 개의 공간, 곧 연길현, 화룡현과 왕청현, 훈춘현으로 구분된다. 단체로 표현하면 대한국민회와 군무도독부, 북로군정서가 대표 조직이다. 군무도독부를 비롯해 북로독군부의 활동공간인 봉오동은 ‘독립군 기지’였다. 연길현과 화룡현에 없던 독립군 기지가 봉오동에는 있었다. 동만주지역의 민족운동을 하나로 보아온 석고화한 기억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현상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보아야 두만강과 인접한 동만주지역 가운데 봉오동에서 전투가 벌어진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understand the background of the Bongo- dong battle by paying attention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movement space and its activities. The starting point of the author is the problem consciousness that the period called 1919, 20years in East-Manchuria-region was different before and after that, and the problem consciousness that the ethnic movement at that time can not be seen even in a homogeneous and planar manner. The ethnic movement space of East-Manchuria-region can be divided into two. It is divided into two spaces in terms of the independent space of the independent army and the main activity system (civilian vs. military). Bongo-dong, which was the activity space of gunnmudodokbu(軍務都督府), was an “independence army base”. This point is different from the gypsy memories of the East-Manchuria-region as one of the ethnic movements. Bongo-dong had an independent military base that was not in Yŏn’gil-hyŏn and Hwaryong- hyŏn. From this point of view, we can naturally explain why the battle took place in the Bongo-dong among the East-Manchuria-region adjacent to the Dooman river.
참고문헌 (27)
- "獨立新聞", ~
-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18", ~
- 국가보훈처, "북간도지역 독립군단명부", ~ (1997)
- 김승학, "한국독립사" (1963), 국사편찬위원회
- 님 웨일즈, "아리랑" (1984), 동녘
- 梶村秀樹 姜德相, "現代史資料, 26" (1967), みすず書房
- 梶村秀樹 姜德相, "現代史資料 27" (1970), みすず書房
- 이강훈, "무장독립운동사" (1975), 서문당
- 이은숙, "가슴에 품은 뜻 하늘에 사무처" (1981), 인물연구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홍범도편" (199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한시준, "대한민국임시정부법령집", 국가보훈처, ~ (1999)
- 김희곤, "대한민국임시정부 I—상해시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2008)
- 김춘선, "최진동 장군" (2006),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 서중석,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2001), 역사비평사
- 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45)" (1999), 아세아문화사
- 신주백, "1920,30년대 중국지역 민족운동사" (2005), 선인
- 金靜美, "朝鮮獨立運動史上における1920年10月", 朝鮮民族運動史硏究, 3 (1986)
- 박걸순, "북간도 간민회의 해산과 추이", 중앙사론, (30), pp.205~250 (2009), 중앙사학연구소
- 박창욱, "국민회를 논함", 국사관논총, 15 (1990)
- 박환, "윤병석교수화갑기념 한국근대사 논총" (1990)
- 신용하,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 한국학보, 43 (1986)
- 신주백, "1910년 전후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정체로 정치이념의 전환 - 공화론과 대동론을 중심으로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3), pp.151~184 (2017), 한국민족운동사학회[DOI]
- 신주백, "‘민주공화제’론과 비자본주의를 지향한 ‘민족주의운동 좌파’(1919~45)", 역사와 현실, (108), pp.91~140 (2018), 한국역사연구회[DOI]
- 신주백, "봉오동전투에 관한 기억의 流動과 새로운 기억을 향한 접근 -지역으로서 동북아와 근원적 사실을 향해-",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5), pp.321~356 (2018), 한국민족운동사학회[DOI]
- 楊昭全, "中國朝鮮族革命鬪爭史" (2007), 吉林人民出版社
- 유준기, "독립운동기지 한흥동 건설과 독립운동가의 망명 경로 -이승희를 중심으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42, pp.6~29 (2005),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장석흥, "대한국민회 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 (19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