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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영화교류 1세대 대표 영화인 ‘정기탁’ 연구: 중국활동시기(1928~1934)를 중심으로

Research on “Jeong Gi-Tak ” the Representative Cineast of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Chinese Film Exchange: Focusing on the Period of Chinese Activity (1928-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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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영화

초록

본 연구는 정기탁의 중국활동시기를 중심으로 한․중 영화인 교류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국내 영화인들 중 최초로 해외진출에 성공한 정기탁은 1928년부터 1934년까지 상하이에 거주하며 한인들을 비롯해 중국영화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해나갔다. 이를 통해 본업이었던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작가로서 중국영화계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애국혼>은 최초의 항일영화로 기록될 만큼 영화적, 민족적 성과를 내었고, 1929년 한 해 동안 무려 9편의 영화에 연출 또는 출연함으로써 그가 소속되어 있었던 대중화백합영화사의 총 제작편수 중 40%를 담당할 정도로 왕성한 활약을 하였다. 이 시기 정기탁은 중국영화계의 핵심인물들이었던 주수국, 이평천 감독을 비롯하여 완령옥, 김염, 정군리, 왕원룡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의 교류를 통해 영화적 성과를 얻게 된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당시 중국영화의 경향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들이 되었고 그의 영화를 통해 하비광, 담영, 장익 등은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렇듯 정기탁은 중국영화계를 선도해 나가는 중요한 인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인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기탁과 상하이파 영화인들에 대한 평가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를 지적하고 교류의 측면에서 정기탁과 상하이파 영화인들이 중국진출 이후 이룩한 성과에 대해 다뤘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in detail the exchange of Korean-Chinese cineasts, focusing on the period of Jeong Gi-tak's activities in China. He, the first Korean filmmaker to enter overseas, lived in Shanghai from 1928 to 1934, and made active exchanges with Koreans and Chinese filmmakers. Through this, he received great attention in the Chinese film industry as a director and writer as well as an actor who was his main job. In particular, <The Patriotic Soul> produced cinematic and ethnic achievements enough to be recorded as the first anti-Japanese film, and Jeong Gi-tak participated in nine films during the year of 1929. This amounted to about 40% of the total production of the Great China Lilies Film Company (大中华百合影片公司) to which he belonged. During this period, Jeong Gi-Tak gained cinematic achievements through exchanges with the best actors of the time, including directors Zhu Shouju and Li Pingqian, who were key figures in the Chinese film industry, as well as Ruan Lingyu, Jin Yen, Zheng Junli, and Wang Yuan-Long. The films he made became representative films that gave a glimpse into the trends of Chinese cinema at the time, and through his films, He Feiguang, Tan Ying, and Chang Yi were able to grow into stars. As such, Jeong Gi-Tak was an important person leading the Chinese film industry, and was a filmmaker with a rich flavor in the era. However, in Korea, the evaluation of Jeong Ki-tak and Shanghai-Group Korean filmmakers has not been sufficiently covered. Therefore, this paper points out this and deals with the achievements that Jeong Gi-Tak and Shanghai-Group Korean filmmakers have achieved since their entry into China in terms of ex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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