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对方的镜头里找回自我 --1949年以前韩中电影文化交流史初探
Finding Oneself in Pictures Shot by the Other - A preliminary study of Korea-China film exchange history before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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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과 중국에서 영화문화의 발전은 각각 근대화의 진행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특히 동아시아의 문화적 네트워크를 근대적 형태로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공헌은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이 근대문화를 수용하고 민족영화를 창조해가던 시기는 또한 식민 또는 반식민의 사회적 위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의 영화교류는 비록 한계도 많았지만, 또한 강렬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공유할 여지도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간행물에 실린 적지 않은 중국영화계 소식과, 상하이로 진출하여 영화를 만든 ‘상하이파’ 한국영화인들에 관한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양국 영화인들의 교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통제되었으며, 상하이영화 대신 일본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만주영화가 한국인들의 중국 상상을 대체하게 된다. 양국이 해방을 맞은 이후 도래한 냉전으로 오랜 단절의 시간을 거쳐, 한중 양국의 영화문화 교류는 21세기 들어 마침내 전에 없는 성황을 맞게 되었다. 1930년대에 이루어진 한중 영화 교류는 비록 오늘날의 그것에 견줄 바가 아니지만, 양국의 근대문화 교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가치 있는 역사적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중화민국 시기 중국의 국제 문화교류에 대한 연구의 연장선에서 본고를 집필하였다. 따라서 작품 자체보다는 1949년 이전 한중 양국의 영화문화 교류 과정과 그 문화적 특징에 초점을 두고 탐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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