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太宗 廟號와 일통삼한 의식
The Temple name(廟號) Taejong(太宗) of Silla and perception of Iltong-samhan(一統三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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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신라의 태종 廟號와 一統三韓 의식을 검토한 것이다. 크게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첫째, 태종 호칭의 성격 문제이다. 태종은 功德에 따라 올린 祖宗의 칭호로 不毁廟이다. 신라는 태종무열왕대에 종묘제를 수용하여 제후 5묘를 세웠다. 이미 종묘가 성립되었으므로, 태종은 종묘에 올려진 묘호이다. 둘째, 봉호의 시점이다. 문무왕은 662년에 즉위 의례를 거행하였다. 당의 책봉을 받고, 중시를 임명하며, 大赦를 하였다. 또 탐라의 복속을 받고, 백제 평정을 기리는 개선의식을 행하였다. 이때 태조의 정당한 계승자라는 의미로 무열왕에게 태종의 묘호를 올렸다. 셋째, 태종 칭호에 반영된 신라의 천하관이다. 일통삼한은 백제와 고구려의 평정과 같은 의미이다. 신라는 삼한이라는 천하를 평정한 천자를 표방하면서도, 당의 제후를 인정하는 이중적인 천하관을 가졌다. 문무왕은 668년에 선조묘(종묘)에 고구려 평정을 고하는 개선의식을 행하였다. 이때 태종에게 일통삼한의 공덕을 올렸다. 신라의 종묘는 662년에 즉위 의례를 거행한 공간이자, 665년에 취리산 회맹문을 보관한 장소이다. 또 668년에 백제와 고구려의 평정을 고한 곳이었다. 이러한 의식을 거행하며 종묘는 국가 제사의 祭場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temple name(廟號) of Taejong(太宗) of Silla(新羅) and the ritual of Iltong-samhan(一統三韓). Taejong is a name of jojong(祖宗) given according to virtue(功德). Taejong is a tablet that is celebrated forever(不毁廟). Jongmyo Shrine(宗廟) started during King Taejong Muyeol. Therefore, Taejong is the temple name. In 662, King Munmu performed the coronation ceremony. At this time, King Muyeol was given the temple name called Taejong. That means King Taejo(太祖)'s legitimate successor. In 668, King Munmu conquered Goguryeo(高句麗). This was reported in the Seonjomyo(先祖廟). At this time, King Taejong was given credit for Iltong-samhan. Iltong-samhan means to unify the world(天下) called Samhan. And Kings of Silla was the emperor(天子) of Samhan and a servant(諸侯) of the Tang Dynasty. Through this process, Silla's Jongmyo Shrine was able to establish itself as a place where state rituals were h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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