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덕왕대 太子妃 貞嬌와 태자
A Study on the identity of JeongGyo’s husband who was the royal succeror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822년 정월에 흥덕왕은 부군이 되어 월지궁에 들어간다. 부군은 왕위계승권자인태자와 동일한 지위와 신분이라 여겨지지만, 같은 해 3월에 태자비가 된 정교가 흥덕왕과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군의 실체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논문은 부군과 그 거처인 월지궁의 실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정교와 결혼한 태자가 누구인지를 검토하였다. 822년 정교와 결혼한 것은 김균정으로 추정된다. 그는 충공의 딸과 결혼했으며, 그의 부인 중 하나의 이름이 정교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균정의 부인 정교는 신무왕의 어머니로 되어 있는데, 정교가 태자와 혼인한 해에 이미 신무왕은 장성한 상태였기에, 그녀가 신무왕의 생모가 될 수는 없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왕의 모친에 대한 기록들은 생모를 적은 것이 아니라, 왕위계승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계보상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정교가신무왕의 친모는 아니지만, 민애왕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신무왕이 왕위계승의 정당성을주장하기 위해, 부친의 재취이자 자신의 의모가 되는 정교부인을 자신의 공식적인 어머니로내세웠다고 추정된다. 다만 태자가 아닌 균정의 부인 정교를 태자비로 적은 것은 후대의 관념이 반영된 것이다. 신무왕과 그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문성왕, 헌안왕까지 균정의 직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균정을정당한 왕위계승권자로 분식하여 태자의 지위에 올랐던 것처럼 만들었고, 그 결과 균정이정교와 혼인한 사실이 마치 그녀가 태자비가 된 것처럼 기록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결국 헌덕왕대의 태자비 정교의 혼인은 그 당시 왕위계승과는 무관한 것으로, 이를 통해 헌덕왕대 부군이 태자와 다른 지위 내지는 신분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흥덕왕이 된 부군은 태자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지위이자 신분이라 할 수 있으며, 흥덕왕이 부군이 되어 들어가살게 된 월지궁은 태자의 거처인 동궁이 될 수밖에 없다.
Abstract
In January of 822, King HeungDeok became a Bugun and moved into the Wolji-Gung. Bugun is the same position with Crown prince. But in March of the same year, Daughter of ChungGong named JeongGyo became Taejabi which means wife of Crown prince, and her husband was not King HeungDeok. So still the true identity of Bugun is not clear. In order to confirm that Bugun is the official position of royal successor in Silla Dynasty, I researched about the husband of JeongGyo. And I conclude that Kim GyunJeong is most likely candidate. That’s because it is written on records that he married with one of ChungGong’s daughter and one of his wife’s name was JeongGyo. But two questions remains. One is that JeongGyo can not be the birth mother of King SinMu who was the son of Kim GyunJeong’s wife named JeongGyo. But that is not critical issue. Because the king’s mother written on SamgukSaki and SamgukYusa were not birth mother but genealogical mother. The other is Kim GyunJeong was not Crown prince when he married JeongGyo in 822. It can be explained that King SinMu, King MunSeong and King HeonAn who were the descendant of GyunJeong, made up the records as if GyunJeong was a legitimate royal successor. In conclusion, the husband of JeongGyo was not actual Crown prince, and it is clear that Bugun is official position and title of royal successor during the reign of King HeonDeok.
참고문헌 (40)
- "三國史記", ~
- "三國遺事", ~
- "三國史節要", ~
- "隋書", ~
- "唐會要", ~
- "舊唐書", ~
- "新唐書", ~
- "冊府元龜", ~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 (1992),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李基東,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1984), 一潮閣
- 李基白, "新羅政治社會史硏究" (1974), 一潮閣
- 이문기, "신라 하대 정치와 사회 연구" (2015), 학연문화사
- 井上秀雄, "新羅史の基礎硏究" (1974)
- 권덕영, "신라 하대 朴氏勢力의 동향과 ‘朴氏 王家’", 한국고대사연구, (49), pp.189~222 (2008), 한국고대사학회
- 權英五, "新羅下代 왕위계승분쟁과 閔哀王", 韓國古代史硏究, 19 (2000)
- 권영오, "신라하대 왕위계승과 상대등", 지역과 역사, (10), pp.5~37 (2002), 부경역사연구소
- 金東洙, "新羅 憲德·興德王代의 改革政治-특히 興德王 九年에 頒布된 諸規定의 政治的 背景에 대하여-", 韓國史硏究, 39 (1982)
- 김병곤, "신라 헌덕왕대의 副君 秀宗의 정체성과 太子", 동국사학, (55), pp.183~223 (2013), 동국역사문화연구소[DOI]
- 金昌謙, "新羅時代 太子制度의 性格", 韓國上古史學報, 13 (1993)
- 김창겸, "신라 하대 왕실세력의 변천과 왕위계승", 신라문화, (22), pp.81~103 (2003), 신라문화연구소
- 김창겸, "신라 憲安王의 卽位와 그 治績", 신라문화, (26), pp.21~54 (2005), 신라문화연구소
- 김창겸, "신라 승려 心地 연구-『삼국유사』 「心地繼祖」와 관련하여-",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34 (2013)
- 나희라, "신라의 종묘제 수용과 그 내용", 韓國史硏究, 98 (1997)
- 文暻鉉, "西巖趙恒來敎授華甲紀念 韓國史學論叢" (1992), 아세아문화사
- 서정목, "孝昭王의 출생 시기 관련 기록 검토", 진단학보, (122), pp.25~48 (2014), 진단학회
- 선석열, "신라 헌덕왕대의 정치과정과 정교부인의 혼인 문제", 신라문화, 48(48), pp.171~194 (2016), 신라문화연구소
- 손흥호, "9세기 전반 신라의 정치동향과 충공의 역할", 한국고대사연구, (83), pp.301~334 (2016), 한국고대사학회
- 辛鍾遠, "崔永禧先生 華甲紀念 韓國史學論叢" (1987), 탐구당
- 윤경진, "신라 興德王代 체제 정비와 金庾信 追封 ― 三韓一統意識 출현의 일 배경 ―", 사림, (52), pp.105~142 (2015), 수선사학회
- 尹炳喜, "新羅 下代 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 歷史學報, 96 (1982)
- 李基東, "新羅 興德王代의 政治와 社會", 國史館論叢, 21 (1991)
- 이재환, "新羅 眞骨의 ‘家系 分枝化’에 대한 재검토-사위의 왕위계승권을 중심으로-", 대구사학, 127, pp.79~115 (2017), 대구사학회[DOI]
- 이영호, "통일신라시대의 王과 王妃", 신라사학보, (22), pp.5~60 (2011), 신라사학회
- 조범환, "新羅 下代 憲德王의 副君 설치와 그 정치적 의미", 진단학보, (110), pp.31~54 (2010), 진단학회
- 조범환, "신라 중대 聖德王의 왕위 계승 再考-『三國遺事』의 五臺山事蹟을 중심으로-", 서강인문논총, (43), pp.87~119 (2015), 인문과학연구소
- 주보돈, "新羅 下代 金憲昌의 亂과 그 性格", 한국고대사연구, (51), pp.233~279 (2008), 한국고대사학회
- 蔡美夏, "新羅 宗廟制의 受容과 그 意味", 역사학보, 176, pp.41~65 (2002), 역사학회
- 최홍조, "新羅 哀莊王代의 政治變動과 金彦昇", 한국고대사연구, 34, pp.329~372 (2004), 한국고대사학회
- 홍승우, "문헌으로 보는 신라의 왕경과 월성" (2017),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홍승우, "신라 副君과 月池宮", 동양학, (70), pp.63~84 (2018), 동양학연구원[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