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해정변(인조반정)의 명분과 그 인식의 변화
The Causes for the Coup of 1623 and Their Adjustment in Chosŏ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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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계해정변(인조반정, 1623)의 명분은 대개 廢母殺弟 등의 패륜 및 대북의 전횡에 대한 다른 붕당들의 반발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정변이 성공한 다음날 반포된 반정교서에는 반정의 명분이 광해군의 背明親後金외교(43%), 폐모살제(31%), 대북의 전횡(14%), 토목공사(10%) 등의 비중으로 발표되었다. 그렇다면 반정 직후에 널리 강조되었던 외교문제가 이후에 어떻게, 왜 명분에서 사라졌을까? 병자호란 때 인조는 직접 청 태종 앞에 나아가 叩頭禮를 행하며 항복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도 사실상 후금의 무력에 굴복하여 화친을 맺었다. ‘반정’을 한 지 4년 만에 그 핵심 명분 하나를 상실한 것이다. 이에 다른 명분인 폐모살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記述들이 후대에 이르도록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가 하면, 폐모 논의에 가담하였던 북인계열 저자들은 폐모살제보다 권력의 전횡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폐모 논의에 참여한 약점을 덮기 위해 폐모문제를 최대한 덮고, 그 다음 명분인 권력의 전횡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듯 인조의 거사가 反正이라는 점에는 다들 동의하였으나, 어떤 亂에서 어떤 正으로 돌이켰는지에 대한 세부 문제에 있어서는 강조점이 시대에 따라, 또 저자의 정치적 배경에 따라 달랐다. 결국, 반정의 본래 명분에 대한 후대의 손질은 ‘반정’의 명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조선후기사회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Abstract
With emphasis on the original causes for the Palace Coup of 1623, promulgated one day after the coup, this paper looks at the situation in which the causes for the coup were inevitably adjusted and the legacy of such adjustment in Korean history. According to the royal message promulgated in the name of the Queen Dowager immediately following the coup, the causes for the coup could be divided into four categories: the deposed king's betrayal of the Ming to the 'barbaric' Manchus (43%), the confinement of the queen dowager and the murder of princes (31%), the monopoly of power and unfair personnel management (14%), and excessive palace construction (10%). The later sources, however, tend not to cite the betrayal of Ming China, but excessively emphasize the confinement of the queen dowager and the monopoly of power by the Northerner Faction. Why was the issue of foreign policy struck off the official causes for the coup?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Korea (1636-1637), King Injo (r. 1623-1649) eventually surrendered to the Manchu emperor, making three bows and nine kowtows, with the result that one of the primary causes for the coup was now lost. In order to maintain his legitimacy and offset the lost cause with the other one, Injo and his officials had little option but to lay utmost emphasis on the confinement of the queen dowager and the murder of her son. Interestingly, the former Northerners who had joined the rallies held in the palace yard to appeal to the throne for the punishment of the queen dowager tended to place more emphasis on the monopoly of power than the persecution of the queen dowager for the purpose of protecting themselves from expected political accusations. In short, although all agreed that the Coup of 1623 was a righteous restoration, they did not share their views of what was righteous and what was evil. The adjustment of the causes for the Coup of 1623 thus sheds light on the nature of Chosŏn society, which could not have been freed easily from the original causes for the Coup, after its compromise with the Manc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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