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서학파의 사서 해석 연구 이항로, 유중교를 중심으로
A Study on Hwaseo school’s Interpretation of the Four Confucian Books[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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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위정척사파로 대표되는 화서학파의 경학설, 특히 四書에 대한 경학적 관점이 사서장구집주에 기반한 맹목적 존숭에 있었는지를 연구하였다. 송시열로부터 시작된 주자학 텍스트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화서학파까지 이어지면서 화서학파의 사서 해석이 주자학 옹호로 경직되었는지, 아니면 주자학에 기반한 보다 심화된 문제의식으로 확장되었는지를 검토하였다. 화서학파의 사서 문헌 연구 범위는 이항로(1792-1868)와 김평묵(1819-1891), 유중교(1832-1893) 등으로 한정하여 검토하였는데, 화서학파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이면서 학파 내 심설 논쟁의 핵심 인물이 김평묵과 유중교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사서 해석과 관련한 연구 대상 자료는 한국 경학가 사전과 國際儒藏에서 제시한 경학 성격의 문헌까지 포함하였다. 화서학파의 사서 관련 저술들에서 인용된 경학가들을 분류해 보면, 정자와 주희를 전후하여 성리학 확립에 공이 있는 경학가들이 주로 인용되었고, 조선의 경학가들은 송시열의 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경학가들의 주석 내용은 화서학파의 심성론과 관련한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중심적 관점은 훈고나, 고증에 의한 접근보다는 주희의 사서장구 주석에 기반한 의리론적 관점이었다. 사서의 전체 편집의 맥락, 각 편과 장절에 대한 구조적 의미와 흐름, 그리고 논어·맹자·대학·중용이 서로 어떠한 관계로 연결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주희의 사서장구집주를 근간으로 하여 설명하였다. 이러한 사서 해석은 주희의 집주 주석을 묵수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심화된 관점과 이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송시열 이후 노론 내에서 주자학 문헌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엄밀하게 검토하였던 것이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주자대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송시열 이후 지속적으로 연구되었고 이에 대한 결과를 모아서 朱子大全箚疑輯補를 찬술하였던 이들이 화서학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화서학파의 사서 해석과 이해는 심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논어·맹자·대학·중용에 대한 이항로나 유중교의 해석에서 그 심화의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정자나 주희가 소홀히 다루거나 밝히지 않았던 내용들, 그리고 주희가 밝혔지만 여전히 주자학적 시각에서 문제가 되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이항로의 ‘온고지신설’이나 김평묵의 ‘온고지신’, 유중교의 대학 ‘보망장’에 대한 해석, ‘此謂知本’, ‘格物致知’, 중용 ‘中節’에 대한 해석 등에서 살펴보았듯이 주희의 사서 해석과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사서 해석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화서학파 내 심설논쟁에 담긴 문제의식이나 당대의 시대적 문제의식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위정척사파였던 화서학파의 경학관 중 사서에 대한 관점은 주희의 의리론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주자학을 옹호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들의 사서 해석들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희에 대한 존숭의 태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주희의 주석에 비판적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반론을 제기하거나 반박하였다.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주자학적 사유를 공고히 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곧 주자학에 대한 묵수나 옹호라고 보기 어렵다는 측면이 사서 해석에서 확인되었다.
Abstract
This paper studied whether the classical studies[經學] theory of the Hwaseo School represented by the Ideology of 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衛正斥邪], especially the Gyeonghak perspective[經學觀] on the four books, was based on Zhu Xi’s commentary on the Four Confucian Books[四書章句集注]. It focused on whether the Hwaseo School’s interpretation of the Four Confucian Books after the full review of the texts of Neo-Confucianism had become rigid only as the advocate of Neo-Confucianism or whether there was a deeper problem consciousness other than Zhu Xi’s theory on the Four Confucian Books. The scope of the study of Hwaseo School's interpretation of the Four Confucian Books was limited to Lee Hang-ro(1792-1868) and Kim Pyeong-mook(1819-1891), and Lyu Joong-kyo(1832-1893) because Kim Pyeong-mook and Lyu Joong-kyo were the main figures who led the Hwaseo School and the key figures in the deep-seated debate within the school. However, the research target data related to their interpretation of the Four Confucian Books included the literature of Cofuciaism Classics character presented by the Korean interpreter Dictionary of the classical studie[한국 경학가 사전] and the International Cofucian Classics[國際儒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