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에 대한 중국인의 반향
Chinese People’s Responses on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uen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에서 필자는 안중근 의거에 대한 중국의 반향을 주요하게 중국의 신문보도를 통해 이토의 ‘만주 여행’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기대와 경계 및 비판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표출된 것을 확인하였다. 즉 일본인들이 발행하는 『순천시보(順天時報)』와 『성경시보(盛京時報)』는 이토의 ‘만주 여행’이 중국의 유신개혁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시신문들은 이토의 ‘만주 여행’은 곧 공무 시찰이고 만주를 분할하고 청나라 재정을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하면서 그가 ‘만주 통감’ 내지 ‘중국 통감’의 꿈을 품고 있었다고 비판하였다. 안중근 의거에 대한 중국인의 반향에서 기존 연구는 청나라 정부의 태도에 기본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안중근 의거는 한·중·일·러 등 4국간의 외교 문제와 직결되는 동아시아 국제적 정치사건이므로 청나라 정부의 태도를 고찰할 필요성이 있다. 청나라 정부는 고도로 긴장한 분위기 속에서 이토 죽음에 국가적 예의를 표시하였는데 청나라 군기처는 이토의 죽음에 선통 황제의 이름으로 애도의 뜻을 조전으로 표시하였고 또한 일본 주재 청나라 흠사(欽事)에게 일본 정부의 동향을 살펴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중국 땅에서 발생한 안중근 의거는 일본이 중국에 그 책임을 전가시킬 우려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나라 정부의 이러한 외교적 의례에서 이토는 ‘영웅’으로, 한인 자객은 ‘원흉’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현상은 시비가 전도된 것이고 또한 동아시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역사적 기억의 혼돈이었다. 또한 한인 자객의 이름에 대한 오보를 통해 이 사건 진상이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알려지고 있었는가를 검토하였다. 본고에서는 안중근 의거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향을 당시 중국 신문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혁명파의 『민우일보(民旴日報)와 『신주일보(新州日報)』, 입헌파의 『대공보(大公報)』·『시보(時報)』·『신보(申報)』 및 보수파의 『공성회순보(孔聖會旬報)』를 통해 그들이 안중근 의거의 정치적 성격, 암살 수단 및 전략적 효과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혁명파와 입헌파는 안중근 의거의 성격에 대하여 대체로 ‘정치자객’이 정치가를 암살한 ‘정치사건’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그 원인은 일본이 조선에 대한 침탈과 조선인에 대한 탄압에서 초래된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암살 수단에 대하여 혁명파와 입헌파 및 보수파는 서로 다른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즉 혁명파는 암살 수단이 혁명운동의 보조적 수단으로서 그 정당성을 찬성하였지만, 입헌파는 한 개인에 대한 암살은 실질적인 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암살주의 풍조가 성행되는 것을 우려하고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더욱이 보수파(신해혁명 이후 보황당으로 전락한 입헌파)는 안중근 의거에 대하여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열렬한 애국심과 충성심 및 고매한 인격을 인정하면서도 암살 수단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박은식과 정원이 각각 지은 『안중근』이란 동명이서에 수록된 중국 지성인들의 그 시대적 인식과 역사적 평가를 재조명하였다. 안중근 의거 후, 중국 신문에는 이토를 추모하는 글들이 많았지만 안중근 순국 직후 그를 추모하는 글을 기본상에서 찾아 볼 수 없었다. 박은식의 『영웅루』 와 『안중근』은 상하이에서 한문으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중국 속에서 안중근이 애국과 저항 및 의협의 상징, 그리고 평화 화신의 영웅적 이미지를 확립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중국인들은 안중근 의거가 한국 침략과 한인 폭정의 원수를 갚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 침략의 공적(公敵)을 척결한 것이며, 또한 정신적으로 중국인들의 신해혁명-반청공화혁명에 공로가 크다고 평가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박은식의 『안중근』은 중국 유명 지성인들에 의한 ‘한국의사-안중근’의 공식적인 데뷔로 표상되었다. 그러나 암살 수단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었지만 이것은 안중근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의 첫 번째 비약이었다. 그리고 신문화운동의 발흥과 함께 안중근 형상은 중국 청년들의 심목 속에서 애국의 모범, 열혈의 의협 및 정의의 화신으로 각인되었다. 중국 신문화운동의 기수였던 진독수가 『청년잡지』의 창간호에 발표한 글에서 “안중근을 따라 배우라”는 호소는 지대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국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 시기에 중국인들의 반일 정서가 고조되고 있을 때, 정원(鄭沅)은 장사(長沙)에서 『안중근』을 발간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중국의 유명 지성인은 26명에 달하고 이들이 지은 영탄시(詠詩)·제사(題詞)·비문(碑文) 등에서 표현된 내용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하였다. 즉 안중근을 중국 역대의 유명한 협객들인 형가(荊軻)·장량(張良)·시전(施全) 등에 비하여 더 높이 평가하였고 또한 외적(外敵) 보다 내적(內賊)을 먼저 처단해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안중근 의거는 결과적으로 조선의 더 빠른 망국을 초래시킨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중한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임을 역설하였는데 이것은 안중근 의거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의 두 번째 비약이었다. 안중근 의거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러한 시대적 인식과 역사적 평가는 중국의 시대적 배경의 변천이 투영되고 있었고, 중국의 항일전쟁시기에 안중근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은 새로운 비약을 이룬다. 이데올로기적 담론이 지배적이었던 항일전쟁시기 안중근에 대한 중국인들의 기억에 대하여 차후 연구 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중국 근대 민족주의의 형성과 발전―특히 배일·반일·항일 감정의 증폭에 따라서― 과정에서 안중근 형상은 지대한 촉매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본다.
Abstract
This paper discussed the responses of Chinese people on An Jung-guen’s patriotic deed through researching the reports of Chinese medias. Chinese people’s responses on Ito Hirobumi’s “travels in China” contain of expectations, alert, and criticism. Most newspapers in China criticized Ito Hirobumi’s “travels in China” for being as “general supervisor of China” at that time. Previous studies took little attention on the position of the Qing government. The Qing government had mourned the death of Ito Hirobumi because they worried about to take the responsibility for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uen. They feared that Japan would pass the buck to the Qing due to the incident had been took place in China. This paper examined various opinions from revolutionaries, constitutionalists and reactionaries about the political significance, assassination methods and strategic effects of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uen according to the political tendency of Chinese medias. The revolutionaries and constitutionalists identified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uen as a “political event” that a political assassin assassinated a politician. The opinion became a leap for the Chinese people in understanding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uen. However, revolutionaries, constitutionalists and reactionaries hold divergent views about the assassination methods. This paper reviewed Chinese intellectuals’ understanding of the times and historical evaluation from An Jung-guen, two books with the same title which written by Park Eun-sik and Zheng Yuan. Park Eun-sik’s An Jung-guen had included several articles about “An Jung-guen, the Korean patriot” by famous Chinese intellectuals. Besides, Zheng Yuan’s An Jung-guen spoke highly of An Jung-guen, famous Chinese intellectuals rated An Jung-guen as a swordman. Not only that, the book also emphasized that to get rid of the hidden traitor is more important than remove outside forces if the country does not want to be destroyed. And, it argued that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uen had accelerated the death of the nation. The book also highlighted that China and Korea had been tied together. The opinion became the second leap for the Chinese people in understanding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uen. Chinese people’s understanding of the times and historical evaluation reflected the change of the time. Therefore, I think An Jung-guen’s image had served as a catalyst for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modern Chinese nationalism, especially based on the emotional change such as exclusion of Japan, against Japan, and anti Japan.
참고문헌 (36)
- "申報", ~
- "時報", ~
- "民旴日報", ~
- "新州日報", ~
- "華字日報", ~
- "大公報", ~
- "順天時報", ~
- "盛京時報", ~
- "中外實報", ~
- "漢口中西報", ~
- "字林西報", ~
- "京津時報", ~
- "新聞報", ~
- "靑年雜誌", ~
- 국가보훈처, "21세기와 동양평화론" (1996), 국가보훈처
- 金宇鍾, "안중근의사" (1998),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 金宇鍾, "安重根" (1994), 遼寧民族出版社
- 서명훈, "중국에서의 안중근연구 논문집성" (2010), 민족출판사
- 손염홍, "중국신문 안중근의거 기사집" (2010),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 연구의 기초" (2009), 景仁文化社
- 이태진,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동양평화론" (2010), 지식산업사
- 鄭沅, "安重根", 長沙
- 滄海老紡子, "安重根" (1914), 大同編輯局
- 金春善, "안중근 의거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 한국근현대사연구, (33), pp.109~136 (2005), 한국근현대사학회
- 徐明勛, "中國人心目中的安重根" (2009), 黑龍江敎育出版社
- 徐勇, "中韓抗日愛國運動硏究論文集 1, 安重根義擧九十周年紀念論文" (1999), 北京大學歷史系東北亞硏究所
- 石原華, "韓國反日獨立運動史論" (1998), 中國社會科學出版社
- 石原華, "論韓國義士安重根與中國關係", 韓國學論文集, 12 (2004)
- 石原華, "安重根義擧的後續影響及其歷史作用", 大連近代史硏究, 9 (2012)
- 楊昭全, "孫中山與朝鮮革命", 延邊大學學報, 2 (1993)
- 楊天石, "孫中山與‘租讓滿洲’問題", 南開學報, (6) (1988)
- 王元周, "認識他者與反觀自我 : 近代中國人的韓國人識", 近代史硏究, (2) (2007)
- 손염홍, "안중근 의거와 중국의 반제민족운동", 안중근 의거의 국제적 영향(광복 64주년 및 개관 22주년 기념학술심포지엄논문집), (2009),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崔峰龍, "三十年來中國史學界對安重根硏究綜述", 大連大學學報, (3) (2015)
- 한시준, "中國人이 본 安重根-朴殷植과 鄭沅의 『安重根』을 중심으로", 忠北史學, 11·12 (2000), 충북대학교 사학회
- 許盈, "安重根義擧對中國的影響及歷史評價-以新聞報刊爲中心", 碩士, 人文學部, pp.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