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반정을 둘러싼 글쓰기와 문체 논쟁
A study on some controversies related with Munchebanjeong(文體反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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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문체가 經學 및 世道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하에 일련의 문체순정책을 펼쳤던 正祖(재위:17761800), 열하일기로 인해 정조로부터 문풍 쇠퇴의 장본인으로 지목되었던 朴趾源(17361805), 문체반정을 촉발시킨 한 사람이자 科文의 문체 인해 充軍 처벌까지 받았던 문체반정의 최대 피해자 李鈺(17601815)을 대상으로 하여, 문체반정을 둘러싼 글쓰기와 문체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정조의 문장의식을 기준으로 박지원과 이옥의 글쓰기 태도 및 문체를 대비적으로 고찰하였다. 정조는 글쓰기 자세에서 진지성과 실용지향성을 강조하였으며, 글이 단순한 유희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러나 문체 타락의 주범으로 지목했던 패사소품, 명청의 문집, 고증학에 대해 전면적으로 배격한 것은 아니며 실용성을 지향할 경우 일정정도 인정하였다. 또한 정조는 장난기가 농후하고 감각적 수사에만 치중하는 명말청초의 문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世道에 도움이 될 경우에는 허용하기도 하였다.정조의 문장의식에 비추어 볼 때 박지원의 熱河日記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諧笑寓言滑稽의 문체였다. 그러나 박지원에게 諧笑寓言滑稽는 당대의 허위적인 지식인을 풍자하거나 중국의 인정물태를 곡진하게 그려내기 위한 하나의 수사적 방편일 뿐, 유희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열하일기는 실용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박지원이 열하일기로 인해 정조의 견책을 받으면서 한편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반면 이옥은 정조가 보기에 순전한 소품가일 뿐이었다. 戱作的 경향과 번다한 수사가 일단 문제가 되었을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글쓰기가 실질적 효용성을 비롯한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엄숙함과 실용성이라는 강박관념을 벗어버리고 문학 그 자체를 향유하려는 근대적 작가의 면모를 찾을 수도 있다. 여하튼 이러한 이옥의 글쓰기 태도와 문체는 정조와 화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Abstract
A study on some controversies related with Munchebanjeong(文體反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