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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 年間의 文衡 硏究

A Study on the Munhyung[文衡] in Jeongjo[正祖]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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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본고는 국가의 文翰을 주관하고 一代의 문풍을 주도하던 文衡이 정조 연간에 이르러 보인 위상 변화 양상을 검토하고 정조 연간에 문형을 지낸 이들의 문학관의 특색을 살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영조조 이전까지는 한문학사의 구도에서 문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았으나 정조 연간을 지나면서 문형의 위상이 낮아지게 되어 그 문학사적 비중 또한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요인은 바로 정조가 주도적으로 계획하여 성취한 관각 구도의 재편 때문이었다. 즉 홍문관의 핵심 기능을 규장각으로 이양하게 함으로써 홍문관을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시키고, 그에 따라 홍문관 최고 직임자였던 문형의 위상 또한 낮아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黃景源⋅徐命膺⋅金鍾秀⋅吳載純⋅洪良浩 등 정조 연간에 문형을 지낸 이들은 기본적으로 이전 시기 문형들과 다름없이 공통적으로 재도적 문학관을 표방하며 六經을 존숭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六經을 義理의 측면에서가 아닌 文氣의 측면에서 존숭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文과 道를 분리하여 인식하는 태도 역시 더욱 명확히 했다. 또한 서명응이나 홍양호 등은 文에 드러내야 할 道를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절대적 주자주의에서 얼마간 벗어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당시 문사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대주의적 사유로의 전이 양상이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형에게서도 확인된다는 점에서 문학사의 전체 구도의 추향이 변화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sider the changing status of Munhyung[文衡], a great officials who administer literary arts and scholarship, and to consider the distinct feature of their's in Jeongjo[正祖] period. Munhyung was of critical importance to the history of Cino-Korean literary before Youngjo[英祖] period. But the status of Munhyung was going down through the Jeongjo period, and it brought about the low importance to the history of Cino-Korean literary after that time. The main cause of that was the reorganization of official system which dominantly performed by Jeongjo. That is, as the core function of Hongmungwan[弘文館] devolved to Gyujanggak[奎章閣], Hongmungwan's power being weakened. As a result, the status of Munhyung, the supreme officials of Hongmungwan, was in name only. Hwang Gyongwon[黃景源], Seo Myongeung[徐命膺], Kim Jongsoo[金鍾秀], Oh Jaesoon[吳載純], Hong Yangho[洪良浩] who once took office as Munhyung in Jeongjo period, claimed to support of accordance of Dao[道] and Wen[文]. And they seriously considered Liujing[六經] in common. The point of their respect for Liujing is not because of the morality of that, but because of the perfect Qi[氣] of that. And they also considered Dao[道] not as absolute worthy, but as relative value. Relative thingking spreaded more and more in 18th century. Even though Munhyung was the most conservative person, we can catch the relative attitude from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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