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해인사대장경판의 印出佛事와 滿洲國 溥儀
A Study on the Pu-Yi(溥儀) of the Manchukuo’s(滿洲國) Emperor & the Printing-Work of the Haein-Temple’s Tripitaka-Woodblock(海印寺大藏經板) in 1937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1937년 수행된 해인사대장경판의 印出佛事에 대한 경위와 주체, 인출본의 실체와 만주국 황제에게의 봉정 목적을 새롭게 진단하였다. 이 인출불사는 사업 주체와 목적에서 일제강점기 이전과 비교하여 역사․문화적으로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이 때 인출불사는 1935년 일본을 방문한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가 해인사대장경판 인출본을 열람하고 크게 관심을 보인 이후, 1936년 만주국 궁내부에서 조선총독에게 인출 의사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경성제국대학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교수를 실무 책임자로 의뢰하여 인출불사를 완료하고 만주국의 궁내부를 통해 푸이에게 봉정하였다. 이로써 인출불사의 주체는 최고식민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였으며, 목적도 외교적 필요성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당시 조성된 인출본의 두 질은 형태서지학적인 실체를 현재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러면서 인출 종이의 종류와 함께 이 때 보충된 보각경판의 특징으로 당시 인출본의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인출종이는 만주국소장본이 黃蘗色으로 물들인 황색 종이이며, 묘향산 보현사의 경우는 흰색 종이이다. 그리고 이 때 보각경판은 13세기 중엽 조성된 해당원판의 인출본과 비교하여 글자․광곽형태 및 각수․간행정보의 표기유무 등에서 일부의 차이를 보인다. 인출불사의 목적은 만주국 황제 푸이의 간절한 희망에 부응하여 수행되었다. 더구나 푸이에게 해인사대장경판의 인출본을 봉정한 목적은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과 정치․외교적인 공동목표를 강화시켜 대륙침략의 거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효과도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s attempt to analyze the printing-work of the Haein-Temple’s Tripitaka-Woodblock that was printed in 1937. In the process, this paper reviewed the details and main agents of the printing-work, the bibliographical form of the printing-books, and the purpose for delivering the printing-books to the Pu-Yi of the Manchukuo’s Emperor. At this time, the printing-work of the Haein-Temple’s Tripitaka-Woodblock began in response to the Manchukuo-Emperor’s earnest request. The printing- work was spearheaded by the Korea Government-General(朝鮮總督府) that has ruled the Joseon(朝鮮)-Dynasty as a colony. the printing-books were yellow or white paper, and the bibliographical form of the printing-books were compared to the original Woodblock that was printed in the mid - 13th century, which differed in the letter-type(書體) and the existence or absence of the engravers(刻手), along with published information. In particular, the purpose of the delivering printing-books helped to realize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interests of Japanese imperialism in the Manchukuo. In the process, Korea’s Buddhist cultural heritage was also expanded.
참고문헌 (34)
- "高麗史", ~
- "世宗實錄", ~
- "世祖實錄", ~
- "明宗實錄", ~
- "新增東國輿地勝覽", ~
- "牧隱藁", ~
- "東文選", ~
- "靑莊館全書", ~
- "朝鮮總督府官報", ~
- "東亞日報", ~
- "京城日報", ~
- "每日申報", ~
- "新京日日新聞", ~
- "平壤每日新聞", ~
- 高麗大藏經印出顚末, "高橋亨", ~ (1939)
- 增上寺史料編纂所, "增上寺三大藏經目錄解題" (1982)
- 국립문화재연구소, "海外典籍文化財調査目錄—日本 大谷大學 所藏 高麗大藏經" (2008)
- 국보 제32호 海印寺大藏經板 중복판 조사용역사업 보고서, "최영호", 법보종찰해인사․합천군, ~ (2013)
- 세계기록유산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사간판 연구, "徐首生", 청주고인쇄박물관, ~ (2009)
- 오용섭, "『高麗國大藏移安記』에 대한 硏究", 서지학연구, 24, pp.61~88 (2002), 한국서지학회
- 오윤희,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2011), 불광출판사
- 李萬烈, "韓國近代 歷史學의 理解" (1981), 문학과지성사
- 임득균, "海印寺 소장 高麗大藏經板의 印經佛事에 대한 조선 세조의 지원 의도", 석당논총, (59), pp.175~213 (2014), 석당학술원[DOI]
- 조남호,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조선불교연구", 한국사상과 문화, (20), pp.389~419 (2003), 한국사상문화학회
- 崔凡述, "海印寺寺刊鏤板目錄", 東方學志, 11 (1970),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의 판각사업 연구, "최영호", 경인문화사, ~ (2008)
- 최영호, "해인사 소장 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의 일제강점기 補刻板 조성현황과 성격", 한국중세사연구, (40), pp.101~136 (2014), 한국중세사학회
- 韓文鍾, "조선전기 일본의 大藏經求請과 한일간의 文化交流", 한일관계사연구, (17), pp.5~58 (2002), 한일관계사학회
- 高橋亨, "朝鮮仏敎の歷史的依他性", 朝鮮, 250 (1936), 朝鮮總督府
- 高橋亨, "高麗大藏經板印出顚末", 朝鮮學報, 2 (1951), 天理大學 朝鮮學會
- 馬場久幸, "고려대장경이 일본불교에 미친 영향", 박사, 불교학, pp.2008
- 小田幹治郞,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1915 )" (1923), 泉湧寺
- 池內宏, "高麗朝の大藏經(上)", 東洋學報, 13(3) (1923), 東洋學術協會
- 池內宏, "滿鮮史硏究", 中世, 2 (1937), 吉川弘文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