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 海印寺大藏經의 印出과 板本의 동아시아 유통
East Asian Distribution of a printed Haeinsa Temple(海印寺) Tripitaka Kore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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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초기 해인사대장경판의 印出 과정과 절차를 살펴보고, 국가 재정의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한편 해인사대장경 版本은 주로 일본과 류큐에서 請求하였는데, 청구의 성격과 의미 그리고 유통에 대해 논의하였다. 해인사대장경판 印出은 까다롭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 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 및 공적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조선은 건국 직후 일본과 류큐에서 온 사신 접대와 供饌의 지출, 그리고 그들에게 하사하는 回賜 부담은 물론 僞使 접대 등으로 재정 지출이 많았다. 그럼에도 交隣外交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으로 협조하였다. 대장경판 인출의 소요 경비와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인출로 인해 국가 재정은 그 부담이 가중되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대장경 판본 유통은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일본의 국왕과 지방 세력, 僧團과 사원 등에서 대장경 판본을 동시에 希求하여 경쟁하다시피 請求하였다. 대장경 판본을 청구함에 있어서 倭寇禁壓, 被擄人 및 漂流人의 送還 등을 거론하면서 조선을 은근히 압박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일본은 사원 창건에 따른 안치, 지배층의 조선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 戰亂 및 災難으로 황폐해진 神寺․佛閣의 재건, 영주 개인의 소유 등 다양한 목적으로 판본을 활용하였다. 류큐는 표류인 송환 또는 토산물을 상납하면서 대장경 판본을 청구하였다. 류큐의 불교는 국가 안녕을 기원하려는 鎭護국가의 기원 성격이 강하였다. 그래서 대장경 판본의 확보가 시급하였을 것이다. 통일 왕조의 정당성 확보와 왕권강화, 불교를 통한 사상의 결집 등을 위해서 판본을 적극 활용하였다. 조선-일본, 조선-류큐의 외교현안과 대장경 판본 청구는 서로 연계되었다. 그래서 조선 전기 동아시아에서 대장경 판본의 유통은 상업 행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d the nature and meaning of requesting a printed Haeinsa Temple(海印寺) Tripitaka Koreana during the exchange process with Japan and Ryukyu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printing Tripitaka Koreana must be a cumbersome and difficult process. It could not be done by individuals or groups, and was forced to pursue it at the national level. Joseon spent a lot of money on entertainment expenses for Japan and Ryukyu envoys. Although a printed Tripitaka Koreana played an important role in diplomacy, they were too expensive to cover the national treasury. This may have had a huge impact on East Asian diplomacy. When the Japanese demanded a printed Tripitaka Koreana, he talked about the actions of pirates and the repatriation of drifters and fatigues. It was a quiet pressure on Joseon Dynasty. The request was made because of Japanese interests in Joseon Buddhist culture and the establishment of a temple. He also asked for help in rebuilding temples that were devastated by personal desire, war and fire. Ryukyu asked for a printed Tripitaka Koreana while repatriating souvenirs or drifts to Joseon. It was called for the reinforcement of the kingship, the unification of ideas through Buddhism, and the justification of the dynasty. It is a request to prosper Buddhism and pray for national well-being. The diplomatic issues of Joseon-Japan, Joseon-Ryukyu and the request of a printed Tripitaka Koreana are related. In the 15th century in East Asia, the distribution of a printed Tripitaka Koreana was carried out at the diplomatic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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