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과 월지 출토 불상의 봉안양상과 신라왕궁 속 불교시설
Concerning the Enshrinement of Buddha Statues at the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and the Inner Temple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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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왕궁 내부에 존재한 불교시설, 일명 내도량은 왕실불교와 직결되는 중요성으로 인해 그간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으나, 월지 출토품을 제외하고는 그 실체를 시각적으로 복원하기는 쉽지 않았다. 본고는 월지에서 수습된 불교유물의 출토지점에 대한 통일성이 요구되었기에 보고서와 야장을 서로 비교하여 출토지점을 7장의 도면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예배대상으로 추정되는 불교유물의 봉안장소는 동궁과 월지 서편 제1, 2, 3, 4건물과 대도주변 건물이었을 것으로 유추하였다. 특히 제2, 4건물지와 대도주변 출토품은 통일신라 그 당시 전각 속에 봉안된 모습을 추정해 보았으며, 도면으로 압축화하여 본문에 제시하였다. 또한 동궁과 월지에 소재한 내도량은 천주사와 같이 탑―금당을 갖춘 정식 사찰이 아니라 왕궁 건물을 불당으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서편 제2건물에 봉안되었을 한 쌍의 금동 귀는 경주 황용동사지 출토 사례에서처럼 각각 별도로 주조한 후 조립하여 하나의 불상으로 완성한 것으로 보았다. 귀의 형태는 국보 제83호 반가상과 유사하였기에 7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제4건물지에 봉안된 소금동불상들은 공반유물을 통해 679년 창건 당시부터 존재하였으며, 불상 양식을 통해서는 9세기까지 크고 작은 불상들이 함께 봉안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판불 역시 불상양식을 기준으로 7세기 후반 주조된 것으로 유추하였으며, 주자(불감)에 모셔졌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필자는 판불 주변에서 발견된 “壬子龕第⼀”명 칠판의 명문을 기왕의 연구결과와는 달리 “王寺龕第⼀(왕사감 중 첫 번째 감)”로 판독하였다. 또한 이 판불과 칠판은 주자를 구성한 물품이었으며, 원래 大島 혹은 동쪽 호안 건물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해 보았다. 왕궁 내부에 마련된 불교시설은 왕실 불교와 불교문화는 물론이고 왕궁의 공간적 성격 규명을 포함한 왕경 복원에도 중요한 대상이 된다. 본고를 통해 왕궁 건물지의 기능과 성격을 추적함에 있어 새로운 인식 전환과 시각의 확대가 요구됨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Abstract
The Buddhist temple established in the royal palace of Silla (called Inner Temple) has aroused considerable interest among academic circles due to its direct relationship with the Buddhist tradition maintained by Silla’s royal family. Unfortunately, however, it has not been easy to obtain a visual representation of the temple, which is largely due to the lack of related relics, except for those discovered at the Wolji pond. The purpose of this study, which acknowledges the lack of related evidence about the archaeological findspots of the Wolji pond, is to present seven floor plans showing the findspots discovered while comparing the related archaeological reports and field notes. It is assumed that the Buddhist relics conjectured to be objects of worship were enshrined in four buildings (1 to 4) situated to the west of the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and in a building located near the Large Islet (Daedo). It is also suggested, as shown by the illustration of a floor plan attached to the main text, that the relics discovered at the sites of Buildings # 2 and 4 and the Large Islet were once kept in a large shrine buil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Furthermore, it is concluded that the Inner Temple of the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was not a proper Buddhist temple complete - as in the case of Cheonjusa Temple - with a pagoda and the main hall, but rather one that was one housed within a preexisting palace building. The pair of gilt-bronze ears of a statue of the Buddha, which may have been enshrined in Building # 2 in the west, is conjectured to have been attached to the head of the statue after being sculpted separately, as in the case of the statue discovered at the Hwangyong-dong Temple Site. The ears have the same shape as those of the Gilt-bronze Pensive Bodhisattva (National Treasure No. 83) suggesting that these works date back to the late seventh century. Judging by their style and the appearance of the other related relics, it is conjectured that the gilt-bronze Buddha statuettes, which may have been enshrined in Building # 4, already existed at the time of the temple’s founding in 679 and continued to be enshrined until the ninth century. The style of the Buddhist plaque also suggests that it was made in the late seventh century and kept in a niche. Regarding the inscription composed of five Chinese characters on a lacquered plaque, this study suggests that the characters “王寺龕第⼀” actually mean "first shrine of the royal temple”, thus refuting the existing view that the inscription is rather “壬⼦龕第⼀”. The study concludes, though tentatively, that the two plaques were parts of a Buddhist ritual ewer that was related either with the Large Islet or the building on the eastern side of the 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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