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궁과 월지’의 성격을 둘러싼 논의와 쟁점
A Study on the Controversy over the Nature of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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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동궁과 월지’ 및 그 주변 지역의 성격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신라 때 안압지는 月池로 불렸고 그 주변 건물지가 바로 679년에 건립된 東宮, 즉 태자의 居所였다는 견해가 거의 통설처럼 여겨져 왔다. 이는 ‘동궁(태자궁)과 월지’설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동궁(태자궁)과 월지’설에 힘입어 ‘慶州 臨海殿址’였던 사적 지정명칭은 2011년 ‘慶州 東宮과 月池’로 바뀌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사적 지정명칭의 변경을 전후해 ‘동궁(태자궁)과 월지’설에 대한 반론이 본격화되었다. ‘동궁(태자궁)과 월지’설은 『삼국사기』의 기록과 월지 일대에서 출토된 문자 자료를 기반으로 1980년대에 성립하였다. 하지만 가장 기본인 ‘경주 동궁과 월지’ 내의 遺構 분석을 소홀히 한 문제가 있다. 특히 월지 일대를 동궁(태자궁)으로 파악하기에는 고려나 조선의 태자궁과 비교해 그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비판이 1991년에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동궁은 ‘동쪽의 궁궐’을 가리키며, 그 안에 태자궁이 포함되었다는 수정된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중심 건물은 월지 서편에 자리한 건물군이다. 하지만 월지 서편 건물군을 태자와 연관 지을 수 있느냐는 문제는 201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 뒤 여러 연구자가 월지 서편 건물군의 성격에 관해 언급했지만, 건물의 특징을 면밀하게 검토한 경우는 많지 않다. 최근 월지 서편 건물군 가운데 일부 유구가 재발굴되었고, 월지 동편의 가지구도 발굴보고서가 모두 발간되었다. 따라서 최신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경주 동궁과 월지’의 성격을 새롭게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건물의 중앙부에 기둥이 생략된 內陣 減柱가 확인된 건물의 성격과 월지 동편에서 발굴된 1호 담장의 축조 배경을 밝히는 것이 ‘경주 동궁과 월지’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특히 내진 감주가 확인된 월지 동편 가지구의 1호 건물은 국왕의 공간일 가능성이 큰 월지 서편의 A건물과 동등한 차원에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고고학적인 접근과 더불어 東池가 넘쳐 內殿 50여 칸이 떠내려갔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월지 및 그 주변 건물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경주 동궁과 월지’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ere have been many discussions about the nature of the historic site known as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and its vicinity. As is well known, the most widely accepted view on the historic site has long been that the artificial reservoir named Anapji was also called Wolji during the Silla period, while Donggung Palace, built in 679, was the official residence of the crown princes of the Silla dynasty. Following the widespread adoption of the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theory, the historic site known as the “Imhaejeon Site in Gyeongju” was renamed as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2011. Ironically, however, divergent opinions to that theory had already begun to emerge by the time the historic site was renamed, in accordance with a new theory established in the 1980s. This latter theory was largely based on the records in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Sagi) and the text materials excavated in the area around the Wolji Pond. Unfortunately, the researchers who proposed this theory paid little attention to the remaining archaeological features found at the site in question. Another view, which emerged in 1991, held that the area around Wolji Pond was too large to become Donggung Palace, in other words the official residence of Silla’s crown princes, and particularly so when compared with the crown prince’s palace in the subsequent Goryeo and Joseon periods. This was followed by the still new idea that the term “Donggung” referred, as the name suggests, to the “Eastern Palace,” whose precincts contained the crown prince’s residence (Taejagung Palace). The central part of the site,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is represented by a building complex located to the west of the pond. Discussions aiming to connect the central buildings with the crown prince’s residence only began as recently as 2010. This issue attracted the attention of many researchers, although few of them actually undertook a thorough review of the characteristic features of these palatial buildings. Recently, however, some of the structural remains of these buildings were re-excavated together with the ‘Ga’ section situated to the east of Wolji Pond. Accordingly, the achievements of the latest studies and archaeological discoveries have laid the foundation for fresh discussions about the nature of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One of the most important tasks required in the effort to identify the nature of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should be to understand the nature of the building that is marked by an absence of inner columns at its center, as well as the background to Wall No. 1, which was discovered due east of Wolji Pond. That is why it has been concluded that Building No. 1 located in the ‘Ga’ section to the east of Wolji Pond, which is characterized by an interior without columns, should be compared with Building ‘A’ located to the west of Wolji Pond, which may well have been related with Silla’s kings. In order to acquire a closer, more accurate understanding of the true nature of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researchers will need - in addition to adopting archaeological approaches - to explore text materials connected with Wolji Pond and the buildings in its vicinity, such as the record in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Yusa), according to which the entire fifty rooms forming the palace’s internal quarters were swept away when Dongji Pond overflo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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