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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견훤왕의 왕권 신성화 방안검토 -정통성표방, 연호 건원, 대왕호칭, 시조신화 신성화를 중심으로-

Studies on the plan to deify King Gyeon Hwon of Later Baekje -Focused on authenticity, era name construction, great king title, progenitor myth de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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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후백제왕 견훤은 신라의 골품제적 한계와 피정복지역민에 대한 가혹한 수탈 등이 가중된 통일신라 후기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으로서 ‘백제’부활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같은 새로운 국가 개국의 명분으로서 역사정통성 회복이란 대의명분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같은 명분 확립의 방안으로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연호 제정을 통해 개국의 지향점과 목표를 제시하였으며 신라복속과 신라왕옹립 시점에 대왕(大王)을 자칭하였다. 또한 탄생설화의 신성화를 통해 견훤왕의 신성화와 후백제의 삼한통일 명분 확립을 진행하였다. 본고에서는 이 같은 후백제 왕권의 신성화 방안에 대한 검토를 위해 기존 논의 가운데 역사정통성 확립 측면의 논의를 심화하고 연호 제정 및 대왕 호칭의 사용, 탄생설화의 신성화 측면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다음의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견훤은 마한-백제 정통성의 강조와 신라의 비정통성 부각을 통해 백제부흥을 통한 시대 혼란 극복을 명분으로 제시하였다. 둘째, 연호로서 ‘잘못된 국가(=비정통 신라)를 바로잡아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정개(正開)’를 제정하여 백제 부흥에 부응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천명하였다. 셋째, 백제 무왕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용(龍)의 아들’ 신화와 고구려 주몽 신이성 관련 ‘새의 보호’ 내용 및 전통적 호랑이 신앙을 자신의 출생신화에 포함시켰고 신라 왕실과의 관련성도 부각하였다. 이를 통해 삼국의 왕권 신성성 상징코드를 모두 갖춘 존재로서 자신을 미화하였다. 이같은 왕권 신성화를 통해 견훤왕은 후삼국 통일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Abstract

Gyeon Hwon, King of Later Baekje, prepared a plan to overcome Silla's problems, such as the limits of golpum system in Silla society and harsh exploitation of the conquered people. First of all, he sought a new dimension of establishing the cause of Baekje legitimacy and highlighting himself and the sacredness of Jeonju, the royal capital, and proceeded with related policies. Gyeon Hwon first proclaimed the establishment of the legitimacy of Gojoseon-Mahan-Baekje, the unorthodoxy of Silla, and the return to orthodoxy through the revival of Baekje as a new historical protagonist. In addition, as an era name, it was enacted ‘Jeonggae(正開)’ to open a new era by correcting ‘wrong history (= unorthodox Silla)’ and proclaimed that a new history by Later Baekje had begun. The new era name expressed in Jeonggae was an important ceremony symbolizing the birth of a new family as a political declaration promulgated by the emperor. In addition, Gyeon Hwon used the name of the Great King(大王) after subjugating Silla. This was to express the status as an imperial state and well express the national character for th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In addition, Gyeon Hwon used the name of the great king after subjugating Silla. This was to express the status as an imperial state and well express the national character for th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In addition, the myth of the 'son of the dragon' symbolizing the sacredness of King Mu of Baekje, the 'protection of birds' related to the divine nature of the founder of Koguryeo, Jumong, and the traditional tiger belief were included in his birth myth, and the relationship with the royal family of Silla was highlighted. Through this, he beautified himself as a being equipped with all the symbolic codes of the sacredness of the kingship of the three kingdoms. King Gyeon Hwon laid the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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