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日磾 관련 논의의 현 단계와 새로운 이해의 방향
The Current Stage of Discussions on Kim Il-je(金日磾) and the Direction of New Under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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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한국학에서 金日磾를 새롭게 연구해야할 필요성과 방향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 우선 김일제를 인식하는 두 견해에 대하여 모두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지지부진한 논의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적 추론을 소개하였다. 김일제는 『漢書』에 전해오는 인물이지만, 「文武王陵碑」에도 기록된 문제의 인물이다. 더구나 金閼智를 신라 김씨의 시조로 알고 있는 역사상식과 전혀 달라 비문을 발견하면서부터 의혹의 중심이 되어왔으나 이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둘로 나누어진다. 한쪽은 김일제가 한무제시기 포로로 잡혀온 匈奴 休屠王의 아들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신라의 김씨들이 흉노족의 후예들이라고 보는 견해다. 다른 한쪽에서는 비문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김씨왕족들이 자신들의 선조의 권위를 과장하기 위해 내세운 허구적 조상이라고 본다. 두 견해 사이에 사실 접점이 없어 서로 토론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논의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해 인식론적 근거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논제를 제시했다. 우선 『三國遺事』에도 ‘秦之亡人’이라는 기록이 있는 만큼, 진한교체기 인구 이동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였다. 이에 바탕을 두고 「문무왕릉비」에서 언급된 휴저왕의 ‘金人’을 폭넓게 고찰할 필요가 있으며, 휴저왕이 흉노영역으로 도망간 진시황의 후예나 혹 진나라 귀족이며 이들이 진시황이 천하통일 후 만든 금인을 모방하여 제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이러한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김일제와 관련한 기록을 재검토하고 유적 등을 새롭게 발굴 조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를 보다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연구할 방향설정이 필요하다.
Abstract
This paper was written to suggest the necessity of advanced research on Kim Il-Je(金日磾) in Korean Studies. I looked at the current status of research on Korea and China related to Kim Il-Je(金日磾) and sought the possibility of joint research on Kim Il-Je(金日磾) in East Asia. Then, I proposed a new point of view related to Kim Il-Je(金日磾). First, I proposed a new understanding of ‘Jin-ji-mang-yin(秦之亡人)’ written in SamgukYusa(三國遺事). I also introduced a new discussion on the identity of the ‘Geum-yin(金人)’ that King Hu-Jeo(休屠王) had. This suggests the need for a new research on Kim Il-Je(金日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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