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辰韓 정체성과 ‘馬韓-고구려’ 인식의 함의
The Jinhan Identity of Silla and the Meaning of ‘Mahan-Goguryeo’ Succ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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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신라가 三韓一統意識을 수립하면서 자신을 삼한의 하나인 辰韓으로 연결하게 되는 배경과 그에 상응하여 馬韓을 고구려로 연결한 의미를 찾아본 것이다. 7세기 전쟁 후에도 신라는 자신을 선행한 역사적 존재와 연결하지 않았으나 9세기에 진한을 역사적 정체로 삼았다. 이는 중대 왕실의 기원을 중국의 金日磾로 연결하던 것을 파기하고 내부 연원의 閼智로 대체하면서 집단의 연원도 선행한 역사에서 찾은 결과이다. 이것은 신라가 삼한의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여전히 자신과 백제·고구려를 연원적으로 구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신라는 마한을 고구려로 연결하였다. 자료적으로는 마한과 백제를 연결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진한이 마한에 부속되었던 사적의 연장에서 신라가 백제에 부속되었다는 인식이 유도될 수 있었다. 백제를 병합한 신라는 이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한을 고구려로 연결하였다.
Abstract
Examined in this study is the logical process of Shilla identifying itself with Jinhan(辰韓), one of the Three Hans(Samhan, 三韓), in the midst of forging the “Three Hans are one(Samhan Iltong, 三韓一統)” notion, while connecting Mahan(馬韓) with Goguryeo. Also discussed is the meaning of such discourse’s development. Even after the war in the 7th century Shilla did not actively try to connect itself with its legacy predecessor, but did so after all in the 9th century, embracing Jinhan as its historical root and identity. Previously the origin of the Middle(中代) Family of Shilla Kingship was considered to be a Chinese figure named Kim Ilje(金日磾), but such notion was apparently abolished in favor of a new one viewing a Shilla brethren Alji(閼智) as its new founder, and the origin of the state itself was modified accordingly. This decision ironically suggests the existence of a perspective differentiating Shilla itself from Baekje and Goguryeo, when all the three Hans were supposed to be one, and so should be all the countries that came later on. Meanwhile, it should be noted that Shilla also identified Mahan with Goguryeo. Considering what had been said in historical texts, it would have been more logical to connect Mahan with Baekje instead of Goguryeo, but the history of Jinhan having been annexed by Mahan could lead to a historical image of Shilla being subdued by Baekje. In reality it was Shilla which annexed Baekje, so such image was unacceptable. Hence, made was the connection between Mahan and Goguryeo instead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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