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직전 조선의 정보수집과 재침 대응책
Joseon’s Collecting of Information and Preparation of Countermeasures before Japan's Second Invasion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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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화교섭 결렬 선언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조선의 재침 대응책을 살펴보았다. 강화교섭기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황신은 교섭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의 사행록인 『日本往還日記』를 통해 강화교섭의 결렬 당시의 상황에 접근할 수 있다. 황신은 일본에서 미리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였고, 부산에 도착한 후에는 조정에 보고서를 올려 보냈다. 황신이 서울에 올라온 후에는 선조와 만나 상세한 정보를 전달했다. 연이어 도착하는 정보를 받아들인 조선은 빠른 논의를 거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도출하였다. 첫 번째는 국내 방비였다. 조선은 통신사와 일본측 교섭담당자가 전한 정보를 반영하여 방어책을 마련하였다. 두 번째는 명 조정에 대한 보고였다. 조선은 당시 상황이 명에게도 위협임을 강조하며 구원군을 요청했고 허락을 받아냈다. 세 번째는 교섭선 유지였다. 조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구조건이 왕자임을 확인하였다. 조선은 이 조건은 거부하였으나 사신 파견과 같은 대안은 열어두었다. 이와 같이 조선이 입수한 정보는 실제 대응책에 즉시 반영되고 있었다. 이는 이전 전쟁에서 조선이 보여주지 않았던 대응방식이었다. 조선은 유연한 자세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하였다. 비록 그것이 ‘전쟁 방지’라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조선이 거둔 성과를 낮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countermeasures of Joseon (朝鮮) until the outbreak of Japan's second invasion (1597), after Toyotomi Hideyoshi (豊臣秀吉)'s declaration of negotiations broke down. Hwang Shin (黃愼), who was dispatched to Japan as an ambassador, detailed the negotiation situation. Hwang sent a message from Japan to inform the government of news. After arriving in Busan (釜山), he sent a report to the government. After Hwang visited Seoul, he met the King (宣祖) and gave detailed information. The subsequent information was immediately discussed in the Joseon government and led to detailed and realistic measures. The first was defense. Joseon provided defensive measures reflecting the information provided by the envoys and Japanese negotiators. The second was a report on Ming (明). Joseon emphasized that the situation was also a threat to Ming. Joseon requested reinforcements and received permission. The third was to maintain negotiations. Joseon confirmed that Toyotomi Hideyoshi's requirement was a prince. Joseon rejected this condition, but opened up several alternatives and came to the discussion. The information obtained by Joseon was reflected in the actual plan. This was the way that Joseon did not show in the previous war. Joseon received information in a flexible manner and prepared countermeasures. Even if it did not lead to the result of "war prevention," that Japan was not able to underestimate the achievements of Joseon cannot be underestim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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