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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전후 조선 조정과 고니시 유키나가 진영의 교섭 분석

Analysis of the Succeeding Talks between the Joseon Court and Konishi, Yukinaga Camp around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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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597년을 전후하여 조선 조정에서는 재침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에서는 경상도제진위무사 황신, 경상우병사 김응서를 통해 고니시 유키나가 진영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히데요시가 과연 재침할 것인지 여부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고니시 유키나가 진영으로부터는 유키나가 측 인원이 직접 보고들은 내용, 혹은 傳聞한 내용을 입수하면서 일본 측의 동향을 판단했다. 1597년 초반을 전후하여 조선 조정과 고니시 유키나가 진영은 서로 적이었음에도 이해관계를 일부 공유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내부에서 재침을 주장하는 쪽은 가토 기요마사였고, 이에 반해 고니시 유키나가는 전쟁을 회피하려는 쪽이었다. 조선 측에서는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유키나가와 강화를 논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유키나가를 다른 적과 동일하게 적대할 수 없었다. 역설적이지만 유키나가는 재침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상의해야 할 ‘적’이었던 것이다. 조선 조정에서는 유키나가에 의심을 거듭하면서 유키나가와 그 휘하 인원 등을 조선에 유리하게 부리고자 했다. 의심과 기대가 반복되고 있었지만, 조선 조정에서 끝내 기대를 놓을 수 없는 상태에서 후속교섭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바로 이 시기의 조선 조정과 유키나가 진영의 교섭 내용, 그리고 그 의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Abstract

Around 1597, the Joseon court did not renounce its attempts to prevent Japanese reinvasion. The Joseon court communicated with the Konishi, Yukinaga camp through their envoys Hwang, shin(황신) and Kim, Eungseo (김응서), and carefully watched whether Toyotomi, Hideyoshi would actually invade Joseon again. The Joseon court received direct and indirect information from the Yukinaga camp, and perceived the internal and external situations in Japan. Although the Joseon and Yukinaga camps were adversaries, they shared common interests to some degree. Meanwhile, Kato, Kiyomasa pursued the reinvasion of Joseon in Japan’s camp, while Yukinaga was opposed to war. The Joseon court recognised that there was some scope for negotiations with regard to preventing the war with Yukinaga. It was inevitable for the Joseon court to consider that Yukinaga was not an ordinary rival to fight against like other Japanese enemies. Ironically, Joseon had to negotiate the peace-making process with an adversary like Yukinaga for its survival. It was true that the Joseon court suspected Yukinaga repeatedly, but it did not lose hope that they could negotiate with the camp. In these circumstances, negotiations between the Joseon court and Yukinaga camp critically continued for a moment, making it imperative to analyse the communication and its significance of the process thoroug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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