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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기 전북지역 풍류의 전개와 의의

The Development and Significance of Pungnyu in Northern Jeolla Region in the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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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음악학

초록

본 연구는 20세기 전반기에 전북지역에서 전개되었던 풍류의 전개 양상 을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1차 사료인 옛 신문기사를 정리 및 분석하였다. 이 시기는 근대 음악사가 새롭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이 제 기되었다. 그러나 지역음악에 대한 연구는 중앙에 비하여 사료 부족으로 인 하여 미진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를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20세기 전반기에 들어서면서 전북지역의 풍류는 풍류방의 율객과 기생, 민속 음악인이 합류하면서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대한제국기인 1908년 전주 의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풍류계를 조직하고 경성에 있던 율객과 악공들을 초빙하여 풍류를 전수받았다. 이후 1920년대까지 조선후기 풍류의 맥을 전 승해가며 풍류방 등 선호를 받고 기생조합과 권번 소속 기생, 그리고 풍류 객들이 참여하였던 풍류는 193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정악부흥운동이 본격화 되었으며, 정악부 흥운동은 구체적으로 정악구락부 창립과 악보집 발간으로 이어지며 지방 인사와 기생들을 중심으로 재기를 맞게 된다. 또한 지역적 교류를 통해 가야금풍류는 이 시기에 전주, 이리, 군산, 정읍, 고창지역으로 확대됨으로써, 지역적 다양성을 확보하였다. 연행공간 또한 조선후기까지 관아와 사가 중심에서 열린 것과 달리 전주공회당, 이리좌, 군산 희소관, 정읍정악회, 고창청년회관 등 신식극장으로 확장되고, 극장 시 설에 따라 무대화 되면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선보여졌다. 풍류가 본 격적으로 근대성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근대기의 전북지역의 풍류가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풍류객 중심에서 벗어나 기생과 민속 음악인들의 합류로 연주영역의 확대가 이루어지며 대중들에게 선보이 는 공연종목으로 정착되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Pungnyu developed in the northern Jeolla region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Old newspaper articles were organized and analyzed as the primary source of the study. There was dire need for research of this time period as this was when modern musical history had newly developed. However, compared to the central region, studies of regional music were lacking due to lack of sufficient sources. To overcome this challenge, this study was conducted, and the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northern Jeolla region’s pungnyu further developed when instrumental musicians, female entertainers, and national musicians joined the pungnyu-bang (a private salon where literati gathered to enjoy music, arts, and poetry). In 1908, during the Korean Empire, Jeonju’s senior citizens played a pivotal role in organizing pungnyu clubs, inviting instrumental musicians and professional musicians from Seoul to learn the art of pungnyu. Passing down the legacy of the late Joseon Dynasty until 1920s, pungnyu was widely received through pungnyu-bang, where the gisaeng johab (the union of female entertainers), members of gwonbeon (school-union of female entertainers), and pungnyu-gaek (pungnyu aficionados) would perform. Unfortunately, pungnyu rapidly declined in popularity in the early 1930s. To remedy this situation, the Jeong-ak Restoration Movement went full swing. The movement specifically led to the establishment of Jeong-ak Gurakbu (Jeong-ak Club) and publication of musical scores. Jeong-ak experienced a renaissance centering on local figures and female entertainers. Furthermore, through regional exchanges, gayageum pungnyu expanded to Jeonju, Iri, Gunsan, Jeongeup, and Gochang during this time period, gaining diversity. Until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performances were mainly held in government offices or private houses. In contrast, during this time period, performances were held in modern theaters such as Jeonju Theater, Jeonju Public Hall, Iri Theater, Gunsan Heesogwan, Jeongeup Jeong-ak Hall, and others. According to the theater facilities, the performances were theatricized and shown to a general audience. This process can be interpreted as pungnyu attaining modernity. In the modern era, through an official channel, Jeolla region’s pungnyu deviated from being based solely on pungnyu-gaek. With the incorporation of female entertainers and national musicians, the realm of performance broadened as pungnyu established itself as a performance for the general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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