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현육각이란 용어의 생성과 왜곡
The Formation and the Distortion of the Term, Samheonyuk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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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재 학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용어의 어의에 문제를 제기하여 이 용어의 생성 배경과 왜곡 과정을 조명하였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삼현육각이란 용어는 조선시대 ‘삼현(三絃)’ 혹은 ‘육잽이’란 용어에서 비롯된 낱말이다. 삼현은 신라 때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이상 3종의 현악기를 지칭한 데서 비롯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악기로 연주하는 악곡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특히 민간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삼현’이라 지칭했으며, 이 음악을 연주하는 대금 1, 피리 2, 해금 1, 장고 1, 북 1 이상 6명의 연주자를 지칭하기도 하였다. 한편, 민간인들은 6명이 연주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 이를 ‘육잽이’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20세기 초기 유성기 음반에 육잽이를 한자로 ‘六樂’이라 표기하고, 한글로 ‘륙각’이라 표기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여기서 ‘륙각(六樂)’은 두음법칙과 연음현상으로 인하여 발생된 표기다. 그후 1917년과 1918년에 ‘육악(六樂)’을 ‘육각(六角)’으로 왜곡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육각(六角)’은 삼현을 의미하는 ‘육악(六樂)’을 잘못 표기한 왜곡이요, 명백한 오류다. 이렇게 표기한 장본인은 ‘풍류생(風流生)’이란 필명을 사용하는 인물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또 한 명의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우리 음악이나 악기에 대한 기본 식견이 부족한 사람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6인이 연주하는 5종의 악기 중에 ‘향피리 2’를 ‘당피리 2’ 혹은 ‘당피리 1’ ‘향피리 1’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27년으로 접어들면 ‘육각’이 다시 ‘삼현육각’으로 2차 왜곡이 발생한다. 이때 바로 ‘삼현육각’이란 용어가 새롭게 생성되었다. 이 용어는 1927년 김동환에 의해 비롯되었다. 이렇게 생성된 ‘삼현육각’이란 용어는 1930년대에 판소리 명창 송만갑에 의해, 1940년대에는 이왕직아악부와 문인이자 사학자인 최남선에 의해 그리고 1950년대에는 제1세대 음악학자인 이혜구 등에 의해 정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결국 민간 6인조 악단 혹은 그 편성을 기존에는 ‘삼현’ 혹은 ‘육잽이’라 지칭했으나, 이 용어가 일제 강점기에 1차로 ‘육각(六角)’, 2차로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용어로 왜곡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왜곡과 오류가 발생한 원인은 우리의 전통음악 문화를 기록하는 주체가 1890~1940년 사이에 단절되거나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왜곡된 용어를 사용한 지가 어느새 10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로 잡아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필자는 ‘삼현육각’를 ‘삼현’ 혹은 ‘육잽이’라 칭할 것을 제안한다.
Abstract
This thesis raises a question about the most well-known meaning of samhyeonyukgak. To find the correct definition of the term, the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the word and the process of its distortion had to be studied. The term, ‘samhyeonyukgak’, derives from the Joseon-era word ‘samhyeon’ or ‘yukjaebi’. ‘Samhyeon’ used to refer to the three stringed-instruments of the Silla dynasty, geomungo, gayageum and hyangbipa. However, from the Joseon dynasty, the pieces of music performed by these instruments were also called the same. Especially the music the civilian performed was called ‘samhyeon’. Not only that, the term also referred to those 6 performers who played this music. It required 6 instrument players, one each for daegeum, haegeum, janggo, buk and two for piri. Because there were 6 members, people also called it ’yukjaebi.‘ In the early 20th century, ‘yukjaebi’ was introduced as ‘六樂’ in Chinese and ‘ryukgak’ in Korean on the cover of a gramophone record. It seems to have been transcribed as ‘ryukgak’ owing to the Korean word initial rule and the prolonged sound phenomenon. Later in 1917 and 1918, it happened that ‘六樂’ was wrongly spelled as ‘yukgak(六角).’ Yukgak(六角) is a mistranscription of yukak that represents samhyeon. Those who committed this error were the one whose pseudonym was ‘Pungryusaeng’ and the other that hasn’t yet been identified. These two don’t seem to have had enough expertise in Korean music and instruments. Because, of the 5 instruments performed by six players, they looked upon hyangpiri 2 as either dangpiri 1 or dangpiri 2 or hyangpiri 1. In 1927, another distortion of the term took place: ‘samhyeon’ was added to ‘yukgak’, forming ‘samhyeonyukgak’. This new term was first introduced by Kim donghwan in 1927; Since then it had been reinforced by Song Mingap, the pansori master singer in the 1920s; Choe Namseon, a writer and historian in the 1940s; and finally settled down as an official term by Yi Hyegu, the first generation music scholar in the 1950s. In short, ‘samhyeon’ or ‘jukjaebi’ originally meant and referred to six-member music and its arrangement, bu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was fist mistranscribed as yukgak and then to samhyeonyukgak. Since then, it has been established as an official music term without a challenge up until today. The reason for the distortion and mistranscription could be ascribed to the absence of an authority for recording our traditional music from 1890 to 1940. It has almost been 100 years since the wrong term started to be used, and it should be corrected: the original ‘samhyeon’ or ‘yukjaebi’ should replace ‘samhyeonyuk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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