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일본어판 「오도답파여행」을 쓴 것은 누구인가

Who wrote “O do Tappa Yoheng”? (五道踏破旅行 A Trip around Five Prefectures)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1917년 여름 『무정』의 연재를 마친 이광수는 신문사의 의뢰를 받아 조선반도 남부(南部)를 여행하고, 기행문 「오도답파여행」을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양 지면에 각각 조선어와 일본어로 연재했다. 나중에 이광수는 조선어판 「오도답파여행」을 단행본 『반도강산』(1939)에 수록했는데, 그 서문에서 전주부터 조선어와 일본어 양쪽에 썼고, 목포에서 중병을 앓아 목포·다도해·경주 기행문은 자신이 일본어로 원고를 쓰고 친우 심우섭이 조선어로 번역해 주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경성일보』에는 이광수가 도착하기까지 5회분의 기행문이 게재되어 있다. 그러면 이 5회분의 기사를 쓴 것은 누구일까. 본고에서는 당시 『매일신보』의 편집국장이었던 나카무라 켄타로(中村健太郞)가 이광수의 조선어 원고를 일본어 문장으로 다시 썼다고 추론했다. 다도해 여행 후 이광수는 진주와 통영에서 쓴 기행문을 다시 조선어와 일본어 두 개의 언어로 썼다. 그러나 여기에는 게재 순서와 집필 날짜에 현저한 혼란이 보인다. 『매일신보』의 조선어 기행문에 근거하여 여정을 정리해보면, 통영을 출발한 이광수는 동래온천으로 직행하여 휴양하고, 그 후 해운대에서 3일을 보내고 있다. 이광수는 이때 진주에서 쓰기 시작했던 조선어 기행문을 완성시키고, 이어서 진주와 통영에 관한 일본어 기행문을 썼다고 생각된다. 총독부의 조선어 기관지 『매일신보』와 일본어 기관지 『경성일보』에 기행문 「오도답파여행」을 동시에 게재한 것은 이광수로서는 조선인 독자를 대상으로 쓸 때와 일본인 독자를 대상으로 쓸 때의 입장(stance) 변경 기술의 습득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Abstract

In the summer of 1917, Yi Gwangsu had finished to serialize “Mujong” (無情Heartless) and made a trip to the south part of Korea Peninsula by request of newspaper company. During the trip, he serialized a travelogue “O do Tappa Yoheng” (五道踏破旅行 A Trip around Five Prefectures) in Korean at “Meil Sinbo” (毎日申報) and “Godō Tōha Ryokō” in Japanese at “Keijō Nippō” (京城日報) at the same time. Later Yi Gwang-su put “O do Tappa Yoheng” in the book, titled “Pando Kangsan”(半島江山 Peninsula Landscape 1939) and clarified, in the preface, that he began to write the travelogue both in Korean and Japanese after Jonju but, because of a serious illness he suffered at Moppo(木浦), his friend Sim Usop(沈友燮) translated those of Moppo, Tadohe(多島海)and Kyongju(慶州) that Yi Gwangsu wrote in Japanese into Korean. But “Keijō Nippō” carried the serial travelogue in 5 installment before Jonju, which contradicts with the above description in the preface. A question arises then: Who wrote this part? In this paper I reason that Nakamura Kentarō(中村健太郎), a Japanese who acted as a managing editor of “Meil Sinbo” wrote this in Japanese, rewriting Yi Gwangsu’s Korean manuscript. After the trip to Tadohe, Yi Gangsu wrote the travelogue of Jinju(晋州) and Tongyong (統営) again in the two languages, Korean and Japanese. But quite a confusion is observed in the placing order or the writing date. Organizing the itinerary of his trip in accordance with the Korean travelogue in “Meil Sinbo”, Yi Gangsu, after leaving Tongyong, went straight to Tongne Spa(東莱温泉) where he took a rest, and then spent three days in Heunde(海雲台). It is likely that he completed the travelogue of Jinju in Korean and also wrote those of Jinju and Tongyong in Japanese during this period.

참고문헌 (24)

  1. "五道踏破旅行", 京城日報, ~ (1917)
  2. "오도답파여행", 매일신보, ~ (1917)
  3. 島村抱月, "朝鮮だより 僕のページ", 早稻田文學, ~ (1917)
  4. "無佛翁の憶出 1․2", 京城日報, ~ (1939)
  5. "이광수전집 1․16․18" (1962), 삼중당
  6. 허영숙, "나의 자서전", 여성 (1939)
  7. 中村健太郞, "朝鮮生活五十年" (1969), 靑潮社
  8. 김영민, "이광수 문학의 재인식" (2009), 소명출판
  9. 김재관, "「五道踏破旅行」에 나타난 일제 식민지 교통 체계 연구", 어문론집, (46), pp.267~294 (2011), 중앙어문학회
  10. 김현주, "근대 초기 기행문의 전개 양상과 문학적 기행문의 ‘기원’", 현대문학의 연구, 16 (2001), 한국문학연구학회
  11. 並木真人, "朝鮮における 『植民地近代性』․『植民地公共性』対日協力", 国際交流研究, 5 (2003)
  12. 並木真人, "植民地期朝鮮における『公共性』の検討 , 東アジアの公論形成" (2004), 東大出版会
  13. 並木真人, "大衆の国民化と民族化―植民地期朝鮮の事例から", 国際交流研究, 9 (2007)
  14. 柴崎力也, "徳富蘇峰と京城日報", 日本歴史, 425 (1983)
  15. 심원섭, "1910년대 중반 일본인 기자들의 조선기행문 연구", 현대문학의 연구, (48), pp.183~214 (2012), 한국문학연구학회
  16. 심원섭, "‘일본제 조선기행문’과 이광수의 「오도답파여행」", 현대문학의 연구, (52), pp.135~167 (2014), 한국문학연구학회
  17. 李錬, "朝鮮總督府の機關紙『京城日報』の創刊背景とその役割について", メディア史硏究, 21 (2006)
  18. 鄭晋錫, "第2의 朝鮮総督府 京城日報", 京城日報, 1 (2005), 韓国図書センター
  19. 정혜영, "<오도답파여행>과 1910년대 조선의 풍경", 현대소설연구, (40), pp.313~335 (2009), 한국현대소설학회
  20. 최주한, "제2차 유학시절의 이광수", 춘원연구학보, 4 (2011)
  21. 최주한, "두 가지 판본의 오도답파여행", 근대서지, 9 (2014)
  22. 咸苔英, "1910年代朝鮮總督府機關紙と德部蘇峰", アジア文化硏究, 37 (2011), 國際基督敎大學
  23. 布袋敏博, "李光洙『五道踏破旅行記』小考 : 朝鮮語版と日本語版の比較研究", 第54回朝鮮学会発表文要旨 (2003)
  24. 布袋敏博, "이중언어의 이광수『五道踏破旅行記』론", 한국 현대문학회 제3차 전국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08), 한국현대문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