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이광수의 해외체험 연구
A Study on the Foreign Travels of Lee Kwangsoo in the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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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이광수의 1910년대 해외체험이 조선개혁론 구상에 미친 영향을 살핀 것이다. 이광수는 1913∼1914년에 상해, 해삼위, 치타(시베리아)를 여행하였고, 1915∼1918년에 동경에서 2차 유학을 하였다. 이글은 당시의 기행문들과 나중에 그때의 해외체험을 상세히 기록한 자전적 소설과 고백록, 여행지에서 썼던 조선동포에게 주는 글 등을 분석하였다. 20대의 청년 이광수에게 1910년대 해외체험은 ‘세계’를 보는시각을 부여했고, ‘조선’을 객관화시켜 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중국에서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나 국민에의 예우는 그 나라의 문명화 단계에 좌우됨을 목도했고, 러시아에서 조선이주민들의 가난과 지식인망명객들의 당파싸움을 보았다. 그는 북방 방랑길에서 조선의 자주적독립에의 가능성을 찾지 못했는데, 당시에 그가 쓴 글들에 탈식민적 의지가 퇴색해 있음은 이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대국에서 그는조선이 소국임을 절감했다. 조선을 벗어나고자 북방으로 갔으나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조선인임도 통감했다. 1915년 이후 2차 동경유학에서는 일본근대문명이 세계적 수준임을 깨달았고, 진화론적 세계관과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에 침윤되었다. 1918년 해외체류를 마치고귀국할 무렵, 무정의 성공에 고무된 그는 「우리의 이상」에서 조선사회의 개혁방향을 국가 단위의 문명화에서 지역 단위의 문화론으로 전회한다. 이는 그가 2차 유학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과 오카 아사지로의 진화론적 세계인식을 익혔으나, 1910년대 실제 북방으로의방랑과 해외체류 등에서 국가 간 ‘약육강식’의 현장을 목도하는 중에, ‘약육강식’의 세계정세 속에서 ‘독립’을 말할 수 없는 ‘약자’인 조선은, ‘문화’를 통한 ‘민족의 보존’에 매진함으로써, 진화론의 한 원칙인 ‘적자생존’의 논리에서 ‘적자’로서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 끝내 미래의 어느 날 국권을 회복할 가능성을 말살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길임을 직감한 때문으로 보인다. 진화론적 세계관에 비추어 보아도, 민족의 ‘생존’은 ‘독립’의 전제일 뿐 아니라, ‘독립’ 자체보다 중요한 ‘목적’임을그는 해외체험에서 통찰했던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reveal the main achievement of Lee Kwangsoo’s travels abroad in the 1910’s. Lee Kwangsoo traveled to Shanghai, Vladivostok, Cheeta, and North Manchuria in 1913~1914. In those travels, he observed the grades of rank, catching up with how much these nations had been modernized. The nations of the East could not compare to those of the West in terms of the degree of civilizedness. Japan was observed to be more developed than the other eastern countries at the time. Russia was also more civilized. But China was seen to be only half-civilized and Joseon yet to be civilized. Lee Kwangsoo regarded the Joseon people to be very poor and unenlightened, and the Joseon intellectuals to be very lazy and emersed in violent disputes regarding party politics. Thus, he did not find any kind of hope for Joseon to remain an independent nation in the near future. In 1915~1918, Lee Kwangsoo lived in Tokyo due to his studies. During this time, his second period of study abroad, he observed how great the Japanese power of civilizedness was, as well as how high the Japanese grade of civilization was, compared to Joseon. He had been impressed by Fuguzawa Yugichi’s theory of civilization and evolutionism. But it is in Russia that he realized the fate of the Joseon people. This is why his theory of civilization was transformed into a theory of culture for Joseon, as a neighbor of Japan in those times. He believed that if the independence of Joseon could not be ensured, then at least efforts should be made to reserve the identity of its people by maintaining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Joseon culture. These thoughts were the results of his travels abroad in the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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