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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 조선기행문’과 이광수의 「오도답파여행」

Japanese journal of traveling Chosen and Lee Kwang Su’s O-do-ta-pa-yo-heng(五道踏破旅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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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1917년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제1면(일부는 2면)에 70회 가까이 연재되는 파격을 누린 이광수의 「오도답파여행」은 그간 ‘조선기행문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근대소설과 마찬가지로 근대 기행문 역시도 이광수가 문을 열었다는 문학사적 동의가 학계와 교단에 형성되어 왔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오도답파여행」 과 유사성이 많은 또 다른 부류의 조선 기행문들이 그 이전에도 이미 다량으로 존재했다. 그 중 주목되는 것이 당시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경영진을 포함한 일본인 기자들이 발표해 왔던 다량의 ‘일본제 조선기행문’들이다. 두 신문에 발표된 ‘일본제 조선기행문’들의 기원은 청일, 러일 전쟁기의 종군 기행문에 있다. 전후의 기행문은 유명 문인, 지식인들에 의한 전승지 여행과 중앙 언론에의 발표, 일본 국민의 호응, 신문 부수의 확대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사회에서 완전한 정착을 보았다. 여행 산업이 만들어낸 안내서들은 여행자들이 들를 장소와 이동 노선, 그리고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 양식까지도 미리 매뉴얼화했다. 그 시대의 일본 종군 기자들 중 일부가 합병 전후 포진해 들어온 곳이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였고, 그들은 자신들이 써 왔던 종군 기행문 혹은 전승지 기행문 관습을 조선에서도 실천했다. 두 신문사의 감독과 사장도 적극적으로 나서 집필했던 이 기행문들은 신영토의 경영을 위한 지역 정보의 수집 및 종합, 총독부의 ‘선정’ 내용, 식민지 통치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홍보하는 정치적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일본제 조선기행문’들은 식민지 통치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강력한 정치적 장르의 하나였다. 이 기행문들이 1910년대 중반 강력한 장르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던 가운데 이광수의 「오도답파여행」이 태어난 것이다. 「오도답파여행」은 물론 「무정」의 청년 영웅 이광수가 ‘빼앗긴 국토’를 답파한 이야기다. 당연히 망국민의 비애와 울분, 근대국민국가 건설에 대한 열망, 망국의 한 원인을 제공한 봉건 조선의 구습과 자산 계급에 대한 통렬한 비판, 청년 계급의 각성을 요구하는 언설들이 기반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오도답파여행」 속에는 ‘일본제’ 조선 기행문들이 갖고 있었던 내용과 양식적 특성, 그리고 정치성 역시도 농도 짙게 답습되어 있다. 그것이, 발전하는 각 지역의 산업, 경제, 문화 지리에 대한 소개, 철도와 신도로, 승용차 문화에 대한 예찬, 조림 사업에 대한 관심, 고유적의 발굴 및 보호에 대한 관심, 조선의 타율적ㆍ정체적 역사관의 홍보 등등이다. 그의 이동 자체가, 일제가 진행한 기반 인프라 건설 사업의 성과, 즉 철로와 도로와 해로와 자동차와 기차를 통해서 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의미심장하다. 그가 ‘자신의 실감’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쓴 답파 보고 내용들은, 결과적으로는, 군사용 목적이 은폐된 채로 수행된 1,2차 차도사업, 지역 소산업의 점진주의적 육성 정책, 조선 고적조사 및 보존 사업 등등, 데라우치의 ‘선정(善政)’ 결과를 현장에서 실감있게 보고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원래 일제의 ‘시정 5년의 민정 시찰’을 해달라는 것이 이광수에 대한 원고 청탁 내용이기도 했다. 이광수를 피의자 다루듯 압박한 진주의 경찰관에게 이광수는 ‘일본 통치하에서 조선이 발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공인하고 마는데, 이 에피소드야말로 「오도답파여행」이 ‘일본제 조선기행문’으로부터 이어 받고 있었던 양식사적 맥락, 정치적 맥락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1917年、毎日新報と京城日報の第1面(一部は2面)に70回近く連載された李光洙の「五道踏破旅行」は、現在まで‘朝鮮紀行文の開拓者’という高い評価を受けてきた。近代小説とともに紀行文も李光洙が扉を開いたという文学史的同意が学界や教壇に形成されてきたと言えよう。しかし「五道踏破旅行」と類似性の多い、別の種類の朝鮮紀行文がその以前にも大量に存在していたことが最近明らかになった。そのなかでもっとも注目に値するのが、当時毎日新報や京城日報の経営陣を含め日本人記者たちが発表し続けていた大量の‘日本製の朝鮮紀行文’である。両新聞に大量発表された<日本製の朝鮮紀行文>の起源は日清戦争、日露戦争期の従軍紀行文にある。この従軍紀行文は有名な文学者、知識人による戦勝地旅行と巨大新聞への発表、日本国民の呼応、販売部数の拡大などにつながりながら、日本社会に定着するようになった。旅行産業界が作り出した案内書は訪問客が立ち寄る場所や移動ルート、旅行先で楽しむ感情様式までもマニュアル化した。その時の従軍記者立ちの一部が合併前後に布陣してきたところが毎日新報と京城日報であり、彼らは自分で書いてきた従軍紀行文もしくは戦勝地紀行文慣習を朝鮮で実践したのである。両新聞社の監督や社長が先頭に立って執筆に臨んだこの紀行文は、新領土の経営のための地域情報の収集や総合、総督府の<善政>実績や植民地支配の正当性を内外に広報する政治的な機能をはたしていた。そのような意味で、この<日本製の朝鮮紀行文>は植民地統治に直接に寄与する強力な政治的なジャンルの一つであったといえる。このような紀行文が1910年代の半ばに強力なジャンル的支配力を行使している最中で李光洙の「五道踏破旅行」が生まれたのである。「五道踏破旅行」は、言うまでもなく「無情」の英雄である李光洙が<奪われた国土>を踏破した記録である。当然でありながら、亡国民の悲哀や鬱憤、近代国民国家建設への熱望、亡国の原因を提供した封建朝鮮の旧習や資産階級に対する痛烈な批判、青年階級の覚醒を要求する言説が基盤をなしている。しかし同時に「五道踏破旅行」の中には<日本製朝鮮紀行文>が持っている内容や様式的な特徴、そして政治性も色強く踏襲されている。それが、発展する各地域の産業、経済․文化地理の紹介、鉄道と新道路、乗用車文化に対する礼賛、造林事業に関する関心、古遺跡の発掘及び保護に関する関心、朝鮮の他力的․停滞的な歴史観の広報などである。彼の踏破自体が、寺内が遂行した基盤インプラ建設事業の成果である鉄路や車道、海路や車、汽車を通してなされたことこそ意味深い。彼が‘自分の実感’に対する信頼や自信を持って書いた踏破報告内容は、結果的には、軍事用の目的が隠蔽された形で遂行された1,2次車道事業、産業に対する漸進主義的な育成政策、朝鮮の古遺跡調査及び保存事業など、寺内の<善政>の成果を現場で生き生きした感じで証言する内容でもあった。元々日本の統治5年間の民政を視察してほしい、というのが李光洙に寄せられた原稿請託の核心でもあった。李光洙を容疑者扱いしながら圧迫した晉州の警察官に、李光洙は<日本の統治の下で朝鮮が発展したという事実が分かった>と公認するようになるが、このエピソードこそ「五道踏破旅行」が<日本製の朝鮮紀行文>から受け継いでいた様式史的なコンテキスト、政治的なコンテキストの核心を圧縮的に語ってくれる例であると言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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