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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지역 2~5세기 고대유적의 현황과 의미

Present Status and Meaning of Ancient Ruins in the 2nd and 5th Centuries in Asa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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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아산지역의 탕정지역에 위치한 토착세력은 새로운 선진문물의 유입에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토대로 2세기부터 성장하였고 3세기에 이르러 교류를 통한 물품의 소유, 새로운 무기의 수용, 다수의 장신구 소유 등을 통해 주변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분묘를 조성하면서 아산지역 내 중심세력이자 마한 주요 세력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이 세력은 관련기록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백제에서 인식한 마한의 국읍으로 『삼국지』 내 마한의 목지국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목지국은 3세기 말이후 백제에 의한 공격으로 변화하였고 아산지역 내 세력의 중심은 배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배방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4세기에 이르러 백제와의 관계 속에 아산지역 내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지만, 주변지역의 다른 세력과 달리 백제와 위세품을 매개로 한 상호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백제의 목지국 병합과 대두성 및 탕정성 축성에서와 같이 아산지역 내 세력들을장악하면서 지방으로 인식하였고 마한의 중심지였던 상징성을 감안하여 아산지역이 아닌 다른 주변지역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위세품의 사여를 통한 상호관계를 맺지 않았던 백제의 의도에따라 나타난 결과였다. 이러한 이유로 백제는 주변의 다른 세력과 달리 배방세력과는 위세품을매개로 한 상호적 관계를 이루지 않았고 아산지역 내에서 백제의 착장용 위세품 등이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The indigenous forces located in Tangjeong(湯井) area grew from the 2nd century based on the geographical location favorable to the inflow of advanced artifacts. In the third century, it became one of the main forces of Mahan as well as the central forces in Asan through the possession of goods through exchanges and the acceptance of new weapons. This force can be presumed to be Mahan's prime town(國邑) and the country of Mokzi (目支國) The country of Mokzi was transformed into an attack by Baekje(百濟) at the end of the 3rd century, and the indigenous forces located in the Baebang(排芳) area became the central force of Asan through the relationship with Baekje in the 4th century. However, the indigenous forces located in the Baebang area unlike other powers in the surrounding area, there was no mutual relationship based on Baekje's prestige goods(威勢 品). This is because Baekje recognized Asan asan as their province and emphasized the relationship with other forces in the surrounding area. For this reason, Baekje did not establish mutual relations with the indigenous forces located in the Baebang area through Baekje's prestige goods, It is estimated that Baekje's prestige goods were not confirmed in Asa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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