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사비기 백제 왕실의 조상 제사 변천
How Ancestral Memorial Rites Held by Baekje’s Royal Family Changed During the Ungjin-Sabi Baekj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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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웅진기와 사비기 백제 왕실의 조상 제사에 대한 변천 과정을 검토한 것이다. Ⅱ장에서는 무령왕릉을 중심으로 한 웅진기 백제 왕실의 상장례를 살펴보았다. 기존 학계에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묘지석, 정지산유적 발굴 성과에 근거하여 무령왕과 왕비가 27개월 동안 殯葬을 했고, 정지산유적에 殯殿이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공주·부여 지역의 발굴 사례가 증가하면서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특히 연화문와당의 경우 부여나 청양 지역에서 6세기 후반에 속하는 동범품이 확인되는 등 기존 견해로는 설명이 어려운 현상이 나타났다. 문헌기록에 따르면 빈전이 설행된 장소는 왕이 승하한 장소 인근에 설치되는데 이는 아침·저녁으로 빈궁에 의례를 올리기 편리한 장소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정지산유적 빈전설은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무령왕과 왕비의 27개월 빈장설 역시 의문이 따른다. 『예기』를 비롯한 조선시대 國喪들을 살펴보면 국왕 사후 5개월 이내에 매장이 완료되는 현상이 확인된다. 따라서 무령왕과 왕비의 장례는3년상이 적용된 유교적 상장례였기 때문에 27개월을 殯 기간으로 보기 보다는 ‘服喪’ 기간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Ⅲ장에서는 사비 천도 이후 부여 능산리 일대에 왕실의 분묘가 조영되고 왕실 발원 사원이 건립되는 과정을 검토했다. 백제는 사비 천도 이후 祀典 체계를 개편하면서 육후와 같은 중국의 의례전문가를 초청하여 상장례 등을 보완하였다. 하지만 백제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갑자기 戰死 했기 때문에 그 장례 절차가 순조롭지 않았다. 문헌사학자들에 따르면 554년 7월 관산성에서 전사한 성왕은 같은 해 12월 무렵에는 그 주검이 부여에 돌아왔다고 생각된다. 위덕왕은 부왕인 성왕이 행했던 무령왕의 장례 절차를 참고하여 27개월 3년상을 치렀을 것이다. 위덕왕은 555년 8 월 갑자기 出家를 선언한다. 성왕이 사망한지 13개월이 되는 시점으로 성왕의 장례 절차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었음을 시사한다. 『일본서기』에 위덕왕이 557년 3월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기록된것은 27개월 복상 기간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덕왕은 성왕의 장례에 불교를 추가한다. 위덕왕은 555년 8월 출가 발언 이후, 승려 1백명을배출하고 많은 幡蓋를 만들었다. 567년명 창왕명 석조사리감이 발견되면서 능산리사지가 바로위덕왕이 성왕을 追福하고 성왕릉을 관리·수호하기 위해 창건한 사원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위덕왕은 유교적 상장례에 더하여 ‘왕릉과 사원’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왕실 제사를 출현시켰다. 그러나 ‘建邦의 神’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 것은 위덕왕대 유교적 상장례에 새롭게 불교적 요소가추가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Abstract
Chapter 2 of this article attempts to determine how the royal family held funeral rites during the Ungjin Baekje period based on the artifacts unearthed from the Tomb of King Muryeong. In earlier studies, researchers made the following conjectures: The bodies of King Muryeong and his wife were placed in a special place before burial, a practice known as binjang(a hall where the body of a dead king or queen was kept during funeral rites) that lasted for 27 months; and a binjeon was discovered at what is now known to be the Archaeological Site in Jeongjisan Mountain, based on a tombstone unearthed from King Muryeong’s Tomb and the result of the excavation of Jeongjisan. However, questions were raised about this theory following an increase in the number of excavation surveys of ancient sites in Gongju and Buyeo. As regards roof-end tiles with lotus flower patterns, tiles made with similar molds dating from the late sixth century have been found in Buyeo and Cheongyang, which is difficult to reconcile with the existing view. Ancient records state that a binjeon was set up in a place close to where the king or queen died, that a rite was held there twice a day during the funeral, and that it was a convenient place for holding the said rite. Due to this, researchers have raised questions about the assumption about a binjeon in Jeongjisan. One also comes to question the information about the 27 month-long binjang process. According to ancient records - including Yegi (The Book of Rites) - about state funerals during the Joseon Period, the body of a dead king was buried after a 5-month period, and a 3-year-long period of mourning was observed according to Confucian custom in the case of King Muryeong and his wife. Thus, it is assumed that the 27-month period was a mourning period rather than a waiting period preceding the burial. Chapter 3 considered the process of building royal tombs and the temples where prayers for the royal family were held in present-day Neungsan-ri, Buyeo after the relocation of Baekje’s capital to Sabi (present-day Buyeo). At that time, the Baekje Dynasty was striving to improve its funeral protocols by inviting experts such as Lu Xu from China. As for King Seong of Baekje, who was killed in action during the Battle of Gwansanseong, it was not possible to hold his funeral rite according to the usual practice. According to historians, the king was killed in July 554, but his body was not brought home to Sai until December of that year. It is assumed that his son King Wideok followed the precedent of observing a 27-month period of mourning just as his father had done for his grandfather (King Muryeong). Thus, some 13 months later, in August 555, King Wideok announced that he would become a monk; and it is assumed that most of the funeral customs for his father would have been completed by that time. Nihon Shoki (tThe Chronicles of Japan) states that the prince rose to the throne and became King Wideok in March 557, after seeing out the 27-month mourning period. King Wideok held the funeral for his father in the Buddhist style. Following his announcement about becoming a monk, he had a hundred people become monks and made a large number of Buddhist flags. With the discovery of a stone sarira reliquary with inscriptions of the year 567 and the name Prince Chang (King Wideok), researchers have pointed to the possibility that the temple site in Neungsan-ri, Buyeo may once have been the site of a temple built by King Wideok to console the spirit of his dead father and to protect the tomb. King Wideok adopted a new style of ancestral memorial rite for the royal family, combining the existing Confucian rite with the style for a royal tomb and a Buddhist temple. However, records about the related controversy tell us that the process of combining the Buddhist style with the existing Confucian style of memorial rite did not proceed smoo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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