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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및 고고자료를 통해 본 고대 장송의례 - 백제를 중심으로 -

Ancient Funeral and Burial Rituals through Literature and Archeological Materials - Focused on Baekj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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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문헌과 고고자료를 통해 초기 국가단계의 장송의례부터 삼국의 장송의례까지 그 일면을 파악하고, 변화 과정을 검토하였다. 고고자료는 백제권의 도읍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의례 유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정지산유적은 무령왕릉 출토 묘지석을 통해 국가 의례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대개 빈장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살펴진다. 송산리고분군 방단적석유구의 A지구 구덩이는 마한과 백제의 의례적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주목해보았다. D지구 역시 3단 방형 형태를 갖춘 제단시설로 살펴졌다. 이들은 모두 유구의 모습을 통해서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펴진다. 웅진 천도 이전인 공주 수촌리 적석유구에서도 의례 공간으로 활용한 흔적이 보이며, 이는 한성시대 왕릉인 석촌동고분군과 유사한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三國志』동이전을 통해 초기 국가단계의 장송의례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도 부여조 ‘停喪’기록은 이미 3세기 중·후반 단계에 빈장으로 추정되는 장례 풍습이 확인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옥저조에서는 세골장의 풍습이 보이며, 시신을 가매장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하면 빈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여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마한 장송의례는 구슬을 중시하였으나 마구류와 금과 은 등을 부장하는 것은 백제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화되는 것으로 살펴볼 수 있다. 변진조에서도 큰 새의 깃털을 장례용으로 쓰는 등 계세사상과 연관된 모습이 보인다. 이처럼 초기 우리나라의 각 정치체들은 주변 나라와의 접촉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 특히 불교와 유교의 영향은 장송의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 사서에서 보이는 백제 장송의례는 공통적으로 服을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복을 제도로 3년 하였다는 『翰苑』의 기록에서 7세기 대 복상이 일반적 장송의례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日本書紀』 속 신라의 장송의례 모습과 고구려 무용총 벽화 등에서 음악·무용과 곡 등을 하는 모습이 살펴지는데, 백제에서도 비슷하였다고 추정된다. 이는 중국의 東漢대 상제에 음악이 쓰여 중국의 유교 영향을 받은 상장례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백제에서는 부여 능사 북편 건물지의 빈전시설을 통해 불교와 결합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처럼 삼국의 장송의례는 불교와 유교의 도입으로, 이전의 전통적인 계세사상에 영향을 주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살펴진다. 또한 무령왕릉은 묘지석을 통해 왕과 왕비 모두 27개월의 상장 기간을 거쳐 유교식 상장제와 일치함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매지권을 통해 도교의 영향도 미쳤음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무령왕릉의 사례를 통해 당시에는 관이 안치된 빈전일 가능성이 컸음을 확인하였다. 그렇지만 빈전의 운영은 여러 기술적인 문제로 이후 매장하는 빈을 택하였다. 7세기 초반 내용을 담고 있는 『翰苑』에서 매장하여 빈하였다는 기술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백제의 장송의례는 부여와 마한 등 우리 고유의 장송의례와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장례문화가 변화되면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d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Baekje through literature and archeological materials. This study figured out the aspects of the early state-level funeral and burial rituals and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the Three States and reviewed the process of changes. For archeological materials, this study investigated the representative relics for ancestral rites, centered around the cities in the Baekje area. The Mt. Jeongji-san remains can be seen as a place where the national ancestral rites, which were usually Binjang. This study paid attention to the pit in District A of Bangdanjeokseok (squared altar where stones were piled up) relics in Songsan-ri Ancient Tombs as a material by which the ritual relevance between Mahan and Baekje could be seen. District D was also examined as an altar facility in the three square-shaped columns. Also in the Jeokseok (stones were piled up) relics of Gongju Suchon-ri remains, which was built before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Ungjin, there is a trace that it was used as a space for rituals, which was similar to the Seokchon-dong Ancient Tombs, a royal tomb during the Hanseong period. In addition, this study examined the aspects of the early state-level funeral and burial rituals through “Dongyi-jeon” in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In particular, in the Buyeo dynasty, funeral customs are identified in the mid-to-late-3rd century, which is assumed to be Binjang. Next, in the Okjeo dynasty, there was a custom of Segol-jang, and the body was temporarily buried.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Mahan was changed by the influence of the Baekje culture. Also, in the Byeonjin dynasty, there was an association with the thought of the afterlife, e.g. The features of a big bird were used for a funeral. Since Bok (garment) is commonly mentioned for the Baekje funeral and burial rituals in Chinese history books, it is noted that Boksang was a general Funeral and Burial Ritual in the 7th century. In addition, in the Three States, there were music, dance and wailing in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which can be seen as funeral rites affected by Confucianism. Also, in Baekje, it was combined with Buddhism through the Binjeon facilities in the building site north of Buyeo Neungsa Temple. Like this,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the Three States were changed with the influence on the traditional thought of the afterlife by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and Confucianism. Especially, the tombstone of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shows consistency with the Confucian funeral and burial rituals. Also, this study examined the impact of Taoism through Maejigwon (the bill of the sales of the site). In addition,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is very likely to be Binjeon in which the body was enshrined in the coffin. However, it was noted that Bin was chosen later due to several technical issues for Binjeon. Like this, in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Baekje, the funeral culture was changed and developed as we accepted our own funeral and burial rituals like those of Buyeo and Mahan and Chines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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