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와 조중고고발굴대 - 顧頡剛의 자료를 중심으로 -
Reexamination of role and significance of Lee Ji-Rin’s study on Old Joseon and Korea-Chinese joint excavation on North-Eastern Part of China in 1963~196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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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학계에서 리지린은 1980년대 촉발된 고조선의 영역문제로 회자되었지만, 사실 그의 연구는 북한은 물론 러시아의 연구가 유.엠.부찐에게도 결정적 영향을 주었던 바, 사회주의권을 대표하는 고조선의 연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역과 관련된 소모적인 논쟁에만 그의 연구가 인용될 뿐, 그의 연구가 태동하게 된 배경 및 중국과 북한의 연구에서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되지 못했다. 본 고에서는 리지린의 의의는 단순하게 영역 논쟁으로 그칠 수 없으며, 1960년대에 지속되었던 북한 학계의 첨예한 학문적 갈등 속에서 만들어지고 등장한 인물임을 밝히고자 했다. 필자가 본 고에서 밝혀낸 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로 고힐강의 일기와 북한의 자료들을 대조한 결과 리지린의 연구와 고조선의 강역을 둘러싼 논의가 사실상 이미 1950년대 말부터 북한 학계 내부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되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고조선에 관한 과학토론회’는 사실상 이러한 북한학계가 재편된 것을 공표하는 것에 불과했다. 두 번째로는 리지린의 방중목적은 이미 상당부분 완성된 고조선 연구를 고힐강 지도하의 박사학위를 통해서 공인받으려는 했다고 보인다. 고힐강의 지도는 형식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리지린의 연구에는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여 경계심을 표했다. 이와 같이 리지린의 유학은 북한-중국간의 역사갈등의 단초가 되는 역작용도 초래했다. 세 번째로 리지린이 북경유학을 한 또 다른 목적은 이후 조직된 조중고고발굴대를 위한 준비에 있었다. 리지린의 박사학위논문 목차를 이후 출판된 『고조선연구』와 대조한 결과, 『고조선연구』에는 박사학위논문과 비교해서 고조선 영역 내의 고고학적 자료에 대한 보완이 대폭되었음을 확인했다. 리지린이 박사학위논문 작성 이후 조중고고발굴대를 인솔해서 중국을 다시 방문할 것을 대비하여 북경 체재기간에 중국 동북지역의 고고학적 자료 집성에 힘을 기울였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리지린의 모습은 중국문헌을 통해 고조선의 영역을 증명하려는 문헌사학자의 모습만 부각되었다. 하지만, 실제 리지린은 자신의 설은 궁극적으로 고고학적 자료로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에는 한반도 자체의 고고학자료로 당시 헤게모니를 장악하였던 도유호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Abstract
In this study author reexamines the role and significance of Lee Ji-Rin’s study on Old Joseon based on newly published Ku Jiekang’s diary data. According to Ku Jiekang’s writing, Lee Ji-rin studied in Beijing University from 1958~1961 y. by Ku Jiekang’s instruction. In spite of short period, Li Ji-Rin started to submit his dissertation orderly since Jan. 1961 y. It means that Li Ji-rin already prepared his work before staying in China, and the defence in China was a mere better than a symbolic ceremony. Author argues that the reason for Li Ji-Rin’s defense in China resulted from the conflict between historians and archaeologists around the location of Old Joseon. So far, it is believed that Liaoning theory of location of Old Joseon was confirmed in 1963 y, after colossal discussion on the Old Joseon. But, if referred Lee Ji-Rin’s studying and acting in China started since 1958 y., we can conclude that the controversy over Old Joseon started from middle of 1950’s years, and the public discussion in 1963 was nothing but symbolic gesture to purge Do, Yoo-Ho. In this context, we can also figure out how the Koren-Chinese joint excavation of Old Joseon sites in 1963~1965 years started. After the discussion on Old Joseon, Lee, Ji-Rin organised joint excavation to prove his theory, but in the other hand, it arises serious conflict with China. So far, historian in South Korea just valued Lee, Ji-Rin just for supported of Liaoning location theory of Old Joseon. But, in this study author argues that his appearance cause not from mere academic discussion, but from inner conflict of North Korean Acade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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