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天柱寺의 위치 비정 재고
Review on the Determination of the Location of Silla’s Cheonju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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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대에 창건된 천주사는 內帝釋宮으로 불렸으며, 內佛堂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천주사는 ‘경주 동궁과 월지’ 서편의 대나무숲과 연꽃밭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왔다. 이러한 판단은 천주사와 관련한 명문 기와와 『東京雜記』 등의 일부 문헌자료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천주사와 관련한 명문 기와는 출토지가 분명치 않거나 실물이 공개된 적이 없어서 판독이 맞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천주사와 관련한 명문 기와를 천주사의 위치 비정에 활용하기는 곤란하다. 월지 안팎에서는 여러 점의 불상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월지 서편의 2호 건물지 주변에서 출토된 금동제 귀 1쌍은 대형 불상이 봉안된 내불당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천주사와는 별개의 내불당이 궁궐 내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한편, 『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는 천주사 북쪽에 월지가 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그리고 월지의 위치는 거의 예외 없이 천주사 북쪽으로 기술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지는 않지만, 不動石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광복 이전까지 월지 남쪽에 남아 있었다는 전언도 주목된다. 이러한 자료에 비추어보면 천주사는 지금까지 추정해 온 것과 달리 월지의 서쪽이 아니라 남쪽 일대에 자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이와 같은 천주사의 위치는 진평왕대에 이미 궁궐이 월성 외곽으로 확장되던 일면을 보여주거니와, 월성 내부의 공간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삼국유사』 月明師兜率歌條를 재검토해 朝元殿과 內院은 천주사와 연관시키기는 힘들고, 월지 서편 건물군 및 東宮의 내불당과 관련지어 이해해야 한다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Abstract
Founded during the reign of King Jinpyeong of the Silla Dynasty, Cheonjusa Temple was also known as Naejeseokgoong and Naebuldang, both of which mean “Buddhist temple of the palace”. So far, it has been assumed that Cheonjusa Temple was located in the vicinity of the bamboo grove and the lotus garden to the west of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based on certain records related to the temple, such as a roof tile with an inscription, and Donggyeong japgi (Miscellaneous Records of the Eastern Capital, Gyeongju, written by Seong Won-muk). However, as the location of the excavation site of the roof tile with an inscription related to Cheonjusa Temple has not been formally identified, the actual relic has not been opened to the public, and the decoding of the inscription has not yet been verified, it is difficult to use that roof tile to determine the location of Cheonjusa Temple. The discovery of Buddhist statues near Wolji Pond and, more particularly, a pair of gilt-bronze ears near Building Site 2 to the west of Wolji Pond, which is assumed to have been related to Naebuldang, where a large Buddhist statue was enshrined, suggests that there was a separate Buddhist Hall named Naebuldang, as distinct from Cheonjusa Temple. Meanwhile, according to various records, including the Dongguk yeoji seungnam (Geographical Conspectus of the Eastern Kingdom), Wolji Pond was located north of Cheonjusa Temple. In fact, all of the records state precisely that Wolji Pond was located to the north of Cheonjusa Temple. Most notably, one record states that a large rock called Budongseok, now lost, was located to the south of Wolji Pond in the period before Korean independence. Judging from such records, it is highly likely that Cheonjusa Temple was located to the south of Wolji Pond, rather than to the west, as previously estimated. Furthermore, the location of Cheonjusa Temple shows the aspect of the expansion of the royal palace to the outskirts of Wolseong Palace during the reign of King Jinpyeong, and suggests that the space inside the palace had reached its limits. Moreover, the review on the Dosolga of Wolmyeongsa Item in the Samguk 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uggests that the Joweon-jeon structure and Naewon (Buddhist temple of the palace) could not have been linked with Cheonjusa Temple, whereas the buildings to the west of Wolji Pond and Donggung Palace could have been related with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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