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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적대와 연대의 이중주 -1950년대 한국지식인들의 대일인식과 한국문화(학)

Japan, Duet of Hostility and Solidarity -The Perception of Japan and Korean Culture of Korean Intellectuals in the 19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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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동북아 패러독스 현상의 심화는 현 한일관계의 구조적 기원인 1965년 한일국교수립을 다시금 주목ㆍ성찰하게끔 만든다. 한일국교정상화는 8ㆍ15해방 후 한일관계의 원점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 논문은 65년체제를 한일관계의 결절로 간주할 때 그 이전 즉, 1950년대의 한일관계에 주목해 원점의 기원을 추적하고자 했다. 1950년대 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의 기조와 논리가 어떻게 형성ㆍ전개되었는지, 또 이승만정권의 반일주의정책과 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의 길항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구현되어 나타났는가를 중심으로 1950년대 일본적인 것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다. 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이 체계와 규모를 갖추고 대두된 것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의한 일본의 독립과 그에 따라 한일회담이 추진된 전후부터이다. 한국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의 기조는 일본배제론과 일본경계론이 지배적이었는데, 이승만정권의 전략적 반일정책과 공명하면서도 상호 균열, 충돌하는 모순성을 지닌다. 한일회담의 중요 의제에 대한 것과 이승만정권의 대일정책에 대한 대응 두 차원에서 옹호/비판의 다기한 양상이 드러나는데, 대일재산권청구, 구보타 망언, 태평양동맹 구상의 일환으로 결성된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의 발족, 평화선, 재일조선인문제 및 북송 등에 대한 반일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아시아민족반공연맹과 동아시아반공연대 결성에 있어 일본배제론/참여론으로 갈리기도 하고, 정경분리원칙, 정치/문화 분리원칙을 제기하는 등 불협화음이 여러 지점에서 노출되었다. 전체적으로 1950년대 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은 한일관계의 역사성, 특수성, 현재성 등을 바탕으로 일본경제론ㆍ배제론과 현실론ㆍ운명론이 교차ㆍ길항하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반일이데올로기가 심화되는 추세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전적으로 식민지적 멘탈리티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한일회담의 개최, 교착, 중단, 재개의 반복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대한 정책 및 인식태도에 의해 과정적으로 구성되고 심화된 면이 매우 컸다. 지식인들에게 있어 1950년대 일본은 군국주의의 일본, 좌익적 일본일 뿐이었고, 따라서 일본은 대결적, 적대적, 침략적 존재이지 결코 공존적, 협조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경험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단순한 감정적 반일이데올로기의 찌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8ㆍ15해방 후 탈식민의 작업은 반민특위의 해체를 계기로 파행, 왜곡의 길로 들어서는데, 1950년대 일제잔재청산의 탈식민작업도 이 자장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는 일본적인 것에 대한 극단적인 배제ㆍ차별에도 불구하고 일본화 현상이 만연했고 그 추세가 가속된다. 왜색일소운동을 비롯해 관급적 반일국민운동을 통해 일본을 부정적 타자로 한 내셔널리즘의 재흥하나 반일주의의 기저에 존재했던 거부ㆍ증오/모방ㆍ추격의 이중적 존재로서의 일본에 대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인해 일본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밀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끌고 들어온 혐의가 짙다. 일본문화에 대한 검열은 이ㆍ수입의 봉쇄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도입된 일본물에 대한 행정적 단속의 일상화 등 두 차원이 병존했고, 불온과 저속(외설)의 논리가 작동되었다. 그렇지만 과도한 통제는 오히려 일본적인 것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증대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아울러 검열로 말미암아 문화적 기형성을 배태ㆍ조장했다. 1950년대 친일문제는 학ㆍ예술원의 설립과정에 촉발되어 공론화된 가운데 친일경력의 각계 전문가 지식인들의 제도적 복권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된다. 반일정서의 고조와 친일문학인의 복권, 이 극명한 대비가 1950년대 지식인들의 두 개의 일본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정직한 풍경이다. 1950년대는 ‘경험된’ 반공과 ‘경험된’반일에 갇힌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Northeast Asian Paradox Phenomenon makes people focus on the Korea-Japan Normalization Treaty which is the origin of current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The Korea-Japan Normalization Treaty acquires starting point meaning since the 8.15 liberation movement. This thesis has tried to find out the origin, considering 65system as a knot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This thesis mainly explores two things. First, how 1950s' perception of Japan has been made and spread out. Second, how Syngman Rhee government's anti-Japanism and Korean intellectuals perception of Japan to cultural aspect has been realized. Korean intellectuals' perception of Japan based on historicity, distinctiveness and newness in 1950s. And its anti- Japanism spread out through economic, exclusive theory, realism and fatalism. It is from not the colonizing mentality but the holding, mixing, interruption of a Korean-Japanese Conference. For the intellectuals, it was the time when they were ‘empirically’ confirmed that Japan was merely an invasive, aggressive or incursive counterpart, not a cooperative one because Japan was only of militarism or left wing in 1950s. Decolonizing of Japanese imperialism was achieved under the dissolution of SCAA. In 1950s’, Japanism was prevalent and even accelerated despite of extreme exclusion of Japanese style. Japanism was inevitable due to the psychological mechanism against Japan as a two-fold existence of denial, hatred/ imitation, chase, under anti-Japanism, even though they had tried to plant negative images through government supply including clean sweep of Japanese style exercise. It was not Japan, but ourselves that caused it. Censorship over Japan culture leads to not only abolishment of import but also crackdown on the introduced Japanese culture. And the logic of danger and pornography works. However; excessive regulation makes this situation worse. It proves the Japanese value more. The censorship encouraged the cultural tartaric. Pro-Japanese problem in 1950s had become public as the process of establishment of art academy. Pro-Japanese problem promoted Korean intellectuals' institutional reinstatement. Elevation of emotion for anti-Japanism and pro-Japanese literature reinstatement are contrasted with each other. And this is the intellectuals' recognition of Japan in 1950s’. This period was the period when we were locked in ‘empirical’ anti-communism and ‘empirical’ anti-Jap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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