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泊翁 李明五 시 연구(1) -初期詩를 중심으로-

A Study on Pakong, Lee Myong O (1) -in his early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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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李明五(1750∼1836)는 字가 士緯, 號가 泊翁, 書娛生으로 雨念齋 李鳳煥(1710∼1770)의 아들이고, 東樊 李晩用(1792∼1863)의 아버지이다. 이봉환은 18세기 椒林體를 대표하는 시인이었고, 그 자신과 아들 역시 당대의 저명한 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이명오는 87세로 장수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 순조 때까지도 詩壇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 논문은 이명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첫 걸음으로서 먼저 그의 생애와 시집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조사하였다. 이명오의 생애는 시종 아버지 이봉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시를 家業으로 물려받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庚寅年(1770) 이봉환이 정치적인 사건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과 관련이 깊다. 이명오는 선친의 신원을 위해 丙午年(1786)부터 己巳年(1809)까지 무려 25년이나 擊錚을 하며 끈질기게 노력하였으니, 이명오의 장년기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燃燒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오가 洪樂任(1741∼1801), 金祖淳(1765∼1832) 등이 주축이 된 詩會에 참석하며 활발하게 활동한 것도 선친의 신원 운동을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오의 시집으로는 9卷 4冊의 『泊翁詩鈔』가 전하는데, 이 시집은 이명오가 남긴 일만 수가 넘는 시 중에서 이만용이 약 1600수 가량을 뽑아 활자로 印行한 것으로, 洪就榮(1759∼?), 金左根(1797∼1869), 鄭元容(1783∼1873), 趙斗淳(1796∼1870), 尹定鉉(1793∼1874), 金炳學(1821∼1879), 南秉哲(1817∼1863) 등 당대 京華世族을 대표하는 명망가들의 서문이 붙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일단 간략하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의 編年의 문제점에 대해서 논하였다. 그리고 서문들을 바탕으로 당대인들의 이명오의 시를 어떻게 평가했는가를 살펴보아 그가 진부한 말을 싫어하고 “남들이 하지 않은 말[不經人道]”를 지으려 애써서 젊은 시절에는 “今詩之怪者”로까지 일컬어졌던 것을 밝혔다. 그 다음에 이십대 후반에 지은 칠언율시들을 대상으로 실제 작품분석에 들어가서 “남들이 하지 않은 말”을 지으려고 노력한 흔적들을 우선 警句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다음에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뽑아서 분석하였다. 이 논문은 주로 이명오의 초기 칠언율시를 대상으로 논의를 진행한 바, 평생 일만 수가 넘는 시를 남겼던 이명오 시세계의 전모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椒林體 시인들의 嫡傳으로서 이명오의 위상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Abstract

Lee Myeong O(李明五) is not only the son of Lee Bong Hwan(李鳳煥), but also the farther of Lee Man Yong(李晩用). These three men were famous for their poetry in their times. This paper surveyed the fundamentals of Lee Myeong O's life and an anthology of his poetical works. His life was overshadowed by his father, Lee Bong Hwan. He was bequeathed poetical talent by his father. Furthermore, he was deeply frustrated by his father's tragic death- a political trouble occurred in 1770. To redress his father's unjust, wrongful death, he tried hard for 25 years from 1786 to 1809. In order to achieve this purpose, probably he made friends with men of influence by the medium of poetry. He was survived by his anthology of about 1600 poems, the Selected poems of Pakong(泊翁詩鈔). This anthology was selected among more than ten thousands poetry by his son, Lee Man Yong and printed by movable metal types. And this anthology was prefaced by the influential politicians and prominent literary men. From the prefaces of his poetry, we can see he distasted hackneyed expressions and tried to new literary expressions. Next, from seven-syllabic code verses(七言律詩), which were created late-twenties by him, we find and introduce some fresh expressions, and then we analyse some of his representative poetical works of this period. This paper deals chiefly with Lee Myeong O's seven-syllabic code verses, which were created his late-twenties, we cannot fully understand his poetical works, but at least we ascertain distinctly Lee Myeong O's position as a successor of Cholim Style(椒林體) poets.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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