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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峯山 漢詩 硏究

A study on Sino-Korean poetry for Dobong Mountain[道峯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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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근대 이전 도봉산은 서울의 산이 아니었다. 도성에서 가깝지도 않았을뿐더러 金剛山과 같은 名山처럼 일부러 찾아 나설 만큼 볼거리가 많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인들이 도봉산을 찾아 시문을 남겼는데, 본고에서는 도봉산을 두고 지은 名篇을 중심으로 한시에 드러나는 도봉산의 공간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도봉산이 지니는 다양한 공간적 함의를 살피기에 앞서 劉希慶과 朴世堂이 도봉산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도봉산을 두고 지은 시들을 살폈다. 유희경은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고 도봉산에서 시묘살이를 하면서 도봉산과 인연을 맺었고 南彦經을 도와 도봉서원을 건립했으며 만년에 도봉산에 깃들어 살다가 죽어 도봉산에 묻혔다. 한편 박세당은 수학기에 도봉산과 인연을 맺은 이후 수락산 西溪에 머물면서 도봉산 밖에서 도봉산을 애호하였다. 고려 시대부터 도봉산은 여러 佛刹들이 들어서 있던 佛家의 道場이었다. 도성에서 제법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超俗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간간이 寧國寺 등의 사찰을 찾아 讀書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金守溫이나 徐居正의 시를 통해 조선 전기 도봉산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바, 參禪하는 禪僧들을 형상화하거나 탈속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등 佛家의 道場으로서의 도봉산의 공간적 함의를 확인할 수 있다. 도봉산이 세상에 더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573년경 趙光祖의 位牌를 봉안한 도봉서원이 들어서면서였다. 이후 1696년에 宋時烈의 위패까지 봉안되면서 도봉서원은 道脈 계승의 산실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한 양상을 李廷龜나 宋時烈, 李敏求 등의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成汝學이나 金昌協은 도봉산의 아름다운 景槪를 읊거나 도봉서원에서 독서한 경험을 두고두고 떠올리며 시를 짓기도 해서 도봉서원을 두고 지은 시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양과 동북쪽 교외를 잇는 곳에 위치한 도봉산은 여러 시인들의 시에서 한양의 지표로서의 의미를 띠면서 때로는 이별의 장소로 형상화되기도 하였다. 李安訥, 丁若鏞, 魚有鳳, 金尙憲 등의 시를 통해 이 점을 살폈다.

Abstract

Dobong Mountain did not consider as a mountain in Seoul before the modern time. It was not a mountain near the capital, and, unlike other famous mountains, there were not many spectacles to visit. However, not a few literary men visited Dobong Mountain and wrote poems about it. So I studied spatial meanings of Dobong Mountain in these poems and classified into three groups. There were many poets who wrote Dobong Mountain as a daily space during thier lifetime. Yu Hee-kyung[劉希慶] had deep connection with the mountain during his lifetime. Park Se-dang[朴世堂] got a grave site to see Dobong Mountain as well. They liked Dobong Mountain as a daily space as we can find in their poems. Dobong Mountain was a spiritual place of Buddhism where several temples placed. Because the mountain was quite far from the capital, it had a supermundane atmosphere. So there were some people who studied in temples like Youngkuksa[寧國寺]. Through poems of Kim Su-on[金守溫] and Seo Geo-jeong[徐居正], we can see the atmosphere of Dobong Mountain in the Former-Joseon period. We can identity the mountain as a spiritual place of Buddhism as the poets met Buddhist monks in their poems. Dobong Mountain became more generally known in 1573 as Dobong Seowon[道峯書院] in which enshrined Cho Kwang-jo[趙光祖]’s tablet constructed. Enshrining Song Si-yeol[宋時烈]’s tablet in Dobong Seowon in 1696, Dobong Seowon became a cradle of inheriting moral doctrine. We can see this aspect through Song Si-yeol and Yi Min-ku[李敏求]’s poems. In this regard, we can see Dobong Mounatain had a meaning of memorial place of learning time at Dobong Seowon through Kim Changhyup[金昌協]’s poem. Dobong Mountain was a sign of Seoul and a place of farewell at the same time because of its location in between capital Hanyang[漢陽] and northeast suburb. This aspect was in poems of Yi An-nul[李安訥], Uh Yu-bong[魚有鳳], and Kim Sang-hun[金尙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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