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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朝鮮 國王國葬에 관한 연구 - 純祖․憲宗․哲宗國葬을 중심으로 -

关于19世纪朝鲜国王国葬的研究 - 以纯祖·宪宗·哲宗国葬为中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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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五禮 중 凶禮는 왕실을 직접 보살펴주는 선조의 귀신들이 産生되는 기제를 이루면서, 조선왕조 국왕승계의 이상적인 상태인 柩前承繼가 이루어지는 의례라는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조상신의 보우를 통해 국가의 안녕이 지켜지고, 이는 종묘․사직의 제사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서 증명된다. 또한 왕통의 승계, 세자책봉을 포함한 국가의 기간이 되는 결정들은 그것들이 朝廷에서 결정되었다 하더라도,宗廟에 계시는 혼령들에게 告由함으로써 비로소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이해하고 있다. 19세기는 조선후기 국왕권이 최고조에 달한 正祖의 치세를 이으며, 대비를 연결고리로 하여 大妃戚族이 국권을 專斷하는 시기다. 이 시기 조선에는 순조․헌종․철종 세 국왕의 국장이 있었고, 國王國葬의 특징은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顧命과 傳位遺敎가 없거나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嗣王이 어리거나 세자가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로 우연적 요소가 크다. 하지만 이를 기화로大妃가 國璽를 장악함으로써 遺敎를 대표하게 되었다. 둘째, 大妃의 位相이 강화되면서 대비에 관한 의례들이 설행되고, 마침내 의궤의 儀註로 자리잡게 된다. 절대적이었던 왕권의 위상이 흉례 행례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尊尊義理가 약화되고 家統체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철종이 家統으로서 純祖를 중시한 것도 이와 같은 경향이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왕실흉례 절차와 행례는 세도정치 주도층에 의해 오히려 중시되는 측면을 보이고 있다. 세도정치 주도세력의 권력획득·유지가 국왕국장 의례를 매개로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척족세도기의 흉례 의주에 變禮가 계속 추가되었지만, 凶禮 형식의 골간은 완강하게 지켜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Abstract

五礼中的凶礼作为直接看护王室的祖先鬼神产生的机制,作为朝鲜王朝国王承继的理想状态的柩前承继形成的礼仪,在这一点上,显得尤为重要。在朝鲜看来,国家的安宁,以宗庙社稷祭祀不断为证明;包括王统的继承、世子册封等成为国家基干的重大决定,虽然它们已经在朝廷决定,只有向居留宗庙的诸魂灵告由以后,才被认为是具备了法律的效力。在朝鲜历史上19世纪的势道政治时期,乃继承朝鲜后期国王权最高峰的正祖(在位1777-1800)之治世,而且君王母族的大妃戚族专断国政的时代。该时期举行的“国王国葬”之特征大致可分为四个方面。其一,顾命与遗教根本不存在或不明确。因缘于此,将大妃掌握国玺后自然代表遗教。其二,随之大妃的位尊势重,有关大妃的仪礼也设行而终于将它正式设为仪轨之仪注。因此,绝对的王权的象征显示在凶礼之行礼。其三,“尊尊义理”之思想越弱化,而显示将重视家统体系的“亲亲”崇尚的倾向。正祖是比继承王统的真宗益崇慕私亲庄献世子(思悼世子)的;哲宗(在位1849-1863)则以家统立后嗣续纯祖(在位1800-1834)而更为重视纯祖。其四,该时期的王室凶礼之节次与行礼是由势道政治领导层却有重视的侧面的。因为,国王国葬之仪礼在势道政治主导势力的权力之获得与维持起着桥梁作用。因此,在势道政治时期凶礼的仪注之内不断的增加变礼之目,而凶礼形式的主要骨干更为坚强维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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