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發靷班次의 변화와 의미
朝鮮後期發靷班次の變化と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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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국왕국장의 발인은 국왕 승하 후 5개월 만에 이루어져 국왕의 시신이 모셔져 있는 梓宮을 왕릉에 안장하게 된다. 발인의례가 시작되어 殯殿에서 陵所로 이동할 때 발인행렬이 이루지고, 행렬에 필요한 인적·물적 구성요소의 位次를 發靷班次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國葬都監儀軌에 발인반차를 그려 넣은 發靷班次圖가 첨부되어 있는 것은 많은 물력과 인력이 동원되는 발인반차를 차질 없이 행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므로 발인반차도는 길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國葬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드러나고, 年代記의 기록과 五禮儀의 규정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자료이다. 發靷班次圖를 통하여 확인된 조선 후기 발인반차는 조선전기의 『國朝五禮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구성요소들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는 국상의례의 변화상과 같이 禮學의 발달과 당대의 정치상황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변화의 의미가 가장 큰 발인반차는 숙종국장에서 볼 수 있는 백관의 喪服 變化이다. 숙종국장에서는 왕위승계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노론예론 선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발인반차가 시행되었다. 영조대 『상례보편』의 특징은 節用과 愛恤이라는 두 가지 실천적 정신 위에 왕통의 정통성 확인과 부모에 대한 의리인 孝, 그리고 魂·魄의 의리구현이었다. 이러한 요소는 송명거와 망촉의 생략, 증옥백요여의 추가, 화철롱과 초롱의 추가배치 등으로 발인반차에 반영되었다. 영조의 국장에서는 보편의 규정과 달리 요여들이 오히려 늘어났는데, 이 요여들인 尊號冊寶腰輿 5개와 几杖架子는 국왕권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요소였으므로 정조는 왕권의 확립 차원에서 선왕의 威儀를 강조하며 발인반차를 구성하였다. 정조의 발인반차는 구조가 압축적으로 변하였는데, 이는 정조 치세 25년 간 다수의 行幸에서 축적된 행렬방법의 발전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순조는 강력한 왕권을 위해 개혁을 추구하였던 정조의 통치제도 연장선에서 정조국장을 치렀고, 발인반차의 구조적 변화와 軍兵의 증가를 가져왔다고 본다. 순조의 발인반차는 유교적 상례의 기본적인 법칙에 어긋나는 발인반차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곡궁인과 수릉관·시릉관·종척집사의 위치가 대여의 앞으로 이동하여, 哭하며 따른다는 법칙에 어긋나는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哭宮人의 行帷가 시야를 막고 흐름을 끊어지게 하여 수릉관·시릉관 등 各 臣에 대한 검측이 어려워 불편하다는 이유로 禮制가 변화하였지만, 세도정치기의 혼란한 정국에서 禮制는 중요한 정치 사안이 아니었으므로 논의과정도 없었다. 이렇게 변화한 발인반차 구조는 이 후 고종의 발인반차에서도 확인 되는 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정조대 이후 국왕권의 강화와 맞물려 외척의 세력이 강화되는 정치적 모순이 국가의 몰락을 자초하였고, 의례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외형적으로는 화려하고 왕실의 존숭이 유지되는 듯하지만, 발인반차라는 상례의 절차에서 드러난 것처럼 왕조례는 형식화 되어갔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國葬の發靷は国王遐後の5ヶ月で行われ国王の屍身が置かれてある梓宮を王陵に安葬することになる。發靷儀禮が始まり、殯殿から陵所へ移動する時發靷行列でき、必要な人的.物的な構成要素の位次を發靷班次という。したがって國葬都監儀軌に發靷班次が描かれた發靷班次圖が添附されているのは多物力と人力が동員される發靷班次を狂いなく行うための努力の結果物だった。したがって發靷班次圖は路上で行われている國葬の模樣が視覺的に現れ、年代記の記錄と五禮儀の規定が實際にどう具現されたかを確認できる資料である。發靷班次を通じて確認された朝鮮後期の發靷班次は朝鮮前期の 『國朝五禮儀』と大きく変わっていないが、構成要素などはやや差がみられる。これは國喪儀禮の變化象と共に禮學の發達と當代の政治狀況が反映されるためである。變化の意味が最も大きい發靷班次は肅宗國葬から見られる百官の喪服の變化である。 肅宗國葬は王位承繼の安定性確保のための老論禮論 選擇がそのまま現れる發靷班次が施行された。英祖代 『喪禮補編』の特徵は節用と愛恤という二つの實踐的な精神の上 王統の正統性確認と父母に対する義理である孝,そして魂·魄の義理具現だった。こういった要素は松明炬と望燭の 省略, 贈玉帛腰輿の追加, 火鐵籠と燭籠の追加配置などで發靷班次に反映された。英祖の國葬では補編の規定とが逆に腰輿が反って増えたが、この腰輿である尊號冊寶腰輿5個と几杖架子は國王の權威を表す要素だったおで正祖は王權の確立の次元から先王の威儀を强調し、發靷班次を構成した。正祖の發靷班次は構造が壓縮的に変わったが、これは正祖治世 25年間 多數の行幸から蓄積された行列方法の發展的な傾向であるといえる。純祖は强力な王權を作るために改革を追求した 正祖の統治制度の延長線での正祖國葬を執り行い, 發靷班次の構造的な變化と軍兵の增加をもたらしたと思われる。純祖の發靷班次は儒敎的な喪禮の基本的な法則に食い違った發靷班次の構造を持っている。すなわち哭宮人と守陵官·侍陵官·宗戚執事の位置が大轝の前方に移動し、哭しながらついて行くという法則と食い違った構造に変わったのである。 哭宮人の行帷が視野を妨げ流れを絶えるようにし、守陵官·侍陵官など各臣に対する檢測が難しくて遣り辛いという理由で禮制が変化したが、勢道政治期の混亂な政局にて禮制は重要な政治思案ではなかったので論議の過程もなかった。こう變化した發靷班次の構造はこの後高宗の發靷班次からでも確認できたそまま継がれている。正祖代以後國王權の强化とかみ合って外戚の勢力が强化される政治的な矛盾が國家の沒落を招き、儀禮もなお こういった現實を反映し外形的には王室の尊崇が保たれたかのようだったが, 發靷班次という喪禮の節次から見られるように王朝禮は形式化していくというのが分か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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