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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朝五禮儀』 內喪在先 의례의 성격과 의미
The Character and Significance of Queen’s funeral ritesearlier than king’s in Kukchoory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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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국조오례의』의 내상재선은 세자의 父在爲母服인 齊衰杖期로 규정되었고, 실제 의례 역시 세자의 복제를 기준으로 거행되었다. 『국조오례의』에는 왕의 복제와 행례에 대한 규정이 없었지만, 아버지이자 국왕이라는 尊者의 위상은 내상재선 의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왕은 공식적으로 상례 절차를 결정했고, 왕의 ‘服盡’을 기준으로 백관과 내시 등의 상복에 대한 세부 규정이 마련되었다. 또한 세자가 주관하는 혼전의례에서 왕과 세자의 의례적 조율이 강조되었다. 왕의 존재는 내상재선의 차등적 규정을 생산하는 기준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상재선의 主喪은 세자로 간주되었다. 내상재선의 혼전의례는 주상인 세자의 복제에 따라 練祭-祥祭-禫祭-再期의 절차를 거치면서, 흉례에서 길례로 변화되었다. 15개월 담제 후 내상재선의 혼전은 음복과 음악이 허용되는 길례의 공간이었지만, 심상삼년을 치르는 세자의 존재로 인해 재기까지는 흉례의 의미가 유지되었다. 재기 이후부터는 祔廟를 기다리는 온전한 길례의 공간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세자없는 내상재선의 혼전은 세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자최장기를 원칙으로 운영되었고 담제가 거행되었다. 그럼에도 세자의 부재로 인해 담제 이후부터는 길례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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