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가야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
光復(1945年) 以後 加耶史の硏究の動向と课题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광복 이후 가야사 연구는 영세한 문헌자료의 한계와 과거 ‘任那日本府’로 상징되는 일제 식민사학의 폐해로 인하여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가야 유적에 대한 활발한 발굴조사와 자료의 축적, 가야사 연구에 필요한 방대한 문헌자료의 정리, 문헌자료에 기초한 고고학연구 성과의 수용, 『日本書紀』의 비판적 활용 시도 등의 노력에 힘입어 가야사 연구가 활기를 띠면서 가야사 전개과정의 전체적인 맥락이 복원되었다. 1980년대 이후 加耶 諸國의 성립과 발전, 交易체계, 가야사회의 구조와 정치적성격문제, 영역의 설정 및 지배방식, 그리고 사상과 문화상 문제 등으로 연구주제가 구체화되고 연구범위도 확대되면서, 이를 위한 접근방법도 다양하게 추구되었다. 이제 가야사 연구는 종전 백제사와 신라사의 부수적 존재에서 벗어나, 가야제국의 자율적 발전론의 시각에서 가야의 역사 전개과정을 파악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加耶聯盟’설에 대한 논의는 가야 제국의 사회발전단계와 연계하여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다. 가야를 구성하는 여러 소국 사이에 그 발전정도가 달랐으므로, 앞으로 중심 소국과 주변 소국의 복속관계 등 가야제국의 지배체제를 해명하는 방향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가야와 인접한 백제 및 신라와의 비교를 통한 노력도 요구된다. 가야의 건국신화와 그곳에서 행해진 제의가 어떠한 사회구조 속에서 형성되고시행되었는가를 추구하는 노력이 미진하므로, 가야의 건국신화와 제의의 연구를사회사상사로 정립하여 그것의 객관적인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건국신화와 祭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 왔던 국문학․민속학․종교학 등 인근 학문분야에서 축적한 연구 방법론과 성과에도 관심이 요구된다. 고고학 유물의 분포권이 정치적 세력범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고고학 자료를 기준으로 가야의 세력권을 설정하기보다는 문헌자료를 기반으로 세력범위의 윤곽을 설정한 뒤에 고분과 토기의 분포 등을 고려하여 접근할필요가 있다. 부족한 가야사 관련 사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일본서기』의 관련 내용을비판적으로 활용하였는데, 앞으로 『일본서기』의 편찬과 출전문제 그리고 기년을비롯한 사료적 성격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또한 임나일본부의 역사적현장으로 보는 함안을 비롯한 가야지역의 고고학 자료와의 대비를 통한 사료 비판의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Abstract
光復(1945年)以後に加耶史の研究は零細な文献資料の限界と'任那日本府説'で象徴になる日帝の植民史学の弊害で因して不振を兔できなかった。1970年代から本格的に展開になった加耶の遺蹟に対する発掘調査と資料の蓄積, 加耶史の研究に要求になる文献資料の整理, 文献資料に基礎した考古学の研究成果の受容, 『日本書紀』の批判的活用の試図等の努力に負って加耶史の研究が活発になりながら加耶史の展開過程の全体的な脈絡が復元された。1980年代以後に加耶の諸国の成立と発展, 交易の体系, 加耶社会の構造と政治的性格の問題, 領域の設定及び支配の方式, そして思想と文化と関連になった問題などで研究の主題が具体化されて研究範囲も拡がりながら, このため接近方法も多様に追求された。もう加耶史の研究は従来の百済史と新羅史の附隨的存在から脱して, 加耶諸国の自律的発展論の視覚で加耶の歴史の展開過程を把握するようになった。今まで'加耶連盟'説に対する論議は加耶諸国の社会発展の段階と連繋して接近する傾向が強した。加耶を構成する諸国の間にはその発展程度が違ったので, 将次中心小国と周辺小国との服属の関係を抱含して加耶の支配体制を解明する方向で接近が必要する。また加耶と接した百済及び新羅との比較を通じて試図する必要がある。加耶の建国神話とその所で行した祭儀がどんな社会の構造の中で形成になって施行になったのかを追求する努力が未盡するので, 加耶の建国神話と祭儀の研究を社会思想史の側面で定立して, それの客観的である普遍性を導き出す作業が必要する。これと共に建国神話と祭儀に対して深い関心を持って来た国文学․民俗学․宗教学等の隣近の学問の分野で蓄積した研究方法論と成果にも関心が要求になる。考古学の遺物の分布圏が政治的な勢力範囲と必ず一致しないから, 特定の考古学の資料を基準で加耶の勢力圏を設定するよりは, 文献資料を基盤で勢力範囲の輪廓を設定して, その後に古墳と土器の分布等を考慮して勢力範囲を想定する必要がある。加耶史の関連史料の不足を補完するために今まで『日本書紀』の関連内容を批判的に活用したが, これから『日本書紀』の編纂と出典問題そして紀年を含めた史料的性格に対する本格的である研究が要求になる。また任那日本府の歴史的現場で推定になる咸安を含めた加耶の地域での考古学的資料と対比をする史料批判の努力も併行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참고문헌 (252)
- 李丙燾, "首露王考", 歷史學報, 17 (1962)
- 丁仲煥, "加羅史草" (1962), 釜山大學校 韓日文化硏究所
- 김석형, "초기조일관계사" (1966), 사회과학원출판사
- 三品彰英, "增補日鮮神話傳說の硏究, In 三品彰英論文集 第4卷" (1972), 平凡社
- 丁仲煥, "廉斯鑡說話考-加羅前史의 試考로서-", 大丘史學, 7(8) (1973)
- 井上秀雄, "任那日本府と倭" (1973), 東出版寧樂社
- 鬼頭淸明, "加羅諸國の史的發展について, In 古代朝鮮と日本" (1974), 龍溪書舍
- 文暻鉉, "伽耶史의 新考察-대가야 문제를 중심으로-", 大丘史學, 9 (1975)
- 李丙燾, "加羅史上의 諸問題, In 韓國古代史硏究" (1976), 朴英社
- 千寬宇, "‘三國志’ 韓傳의 再檢討", 震檀學報, 41 (1976)
- 文暻鉉, "加耶聯盟 形成의 經濟的 考察", 大丘史學, 12 (1977)
- 金廷鶴, "任那と日本" (1977), 小學館
- 千寬宇, "復元加耶史 (上)․(中)․(下)", pp.28~29 (1977), 文學과知性
- 李殷昌, "伽耶墓制의 硏究", 硏究論文集, 22 (1980), 大邱가톨릭大學校
- 金廷鶴, "古代國家의 發達(伽倻)", 韓國考古學報, 12 (1982)
- 李基東, "加耶諸國의 興亡, In 韓國史講座 1 (古代篇)" (1982), 一潮閣
- 李殷昌, "加耶古墳의 編年硏究", 韓國考古學報, 12 (1982), 韓國考古學硏究會
- 朱甫暾, "加耶滅亡問題에 대한 一考察-新羅의 膨脹과 關聯하여-", 慶北史學, 4 (1982)
- 金世基, "竪穴式墓制의 硏究-가야 지역을 중심으로", 韓國考古學報, 17(18) (1983)
- 金廷鶴, "加耶史의 硏究", 史學硏究, 37 (1983)
- 李賢惠, "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 (1984), 一潮閣
- 權鶴洙, "加耶諸國의 成長과 環境", 白山學報, 30 (1985)
- 金泰植, "5世紀 後半 大加耶의 發展에 대한 硏究", 韓國史論, 12 (1985), 서울大 國史學科
- 金鉉球, "大和政權の對外關係硏究" (1985), 吉川弘文館
- 尹容鎭, "加耶文化의 考古學的 槪觀, In 韓國의 美 22(古墳美術)" (1985)
- 李永植, "加耶諸國의 國家形成問題", 白山學報, 32 (1985)
- 金泰植, "後期加耶諸國의 성장기반 고찰", 釜山史學, 11 (1986)
- 金廷鶴, "加耶의 國家形成段階", 精神文化硏究, 32 (1987)
- 延敏洙, "廣開土王碑文에 보이는 倭關係 記事의 檢討", 東國史學, 21 (1987)
- 金鍾徹, "北部地域 加耶文化의 考古學的 考察", 韓國古代史硏究, 1 (1988)
- 金泰植, "후기가야연맹의 성장과 쇠퇴, In 韓國古代史論" (1988), 한길사
- 李賢惠, "4세기 가야사회의 交易體系의 변천", 韓國古代史硏究, 1 (1988)
- 姜賢淑, "伽耶 石槨墓 硏究 試論", 韓國考古學報, 23 (1989)
- 金相鉉, "陜川 梅岸里古碑에 대하여", 羅文化, 6 (1989)
- 金泰植, "加耶史 연구의 제문제」 韓國上古史-연구현황과 과제" (1989), 民音社
- 白承忠, "1∼3세기 가야세력의 성격과 그 추이", 釜大史學, 13 (1989)
- 山尾幸久, "古代の日朝關係" (1989), 塙書房
- 申敬澈, "加耶의 武具와 馬具", 國史館論叢, 7 (1989)
- 千寬宇, "古朝鮮史三韓史硏究" (1989), 一潮閣
- 金廷鶴, "加耶와 日本, In 古代韓日文化交流硏究" (199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金泰植, "加耶의 社會發展段階, In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 (1990), 民音社
- 延敏洙, "六世紀前半 加羅諸國을 둘러싼 百濟·新羅의 動向", 新羅文化, 7 (1990)
- 延敏洙, "任那日本府論-소위 日本府官人의 出自를 중심으로-", 東國史學, 24 (1990)
- 尹錫曉, "伽倻史" (1990), 民族文化社
- 田中俊明, "于勒十二曲と大加耶連盟", 東洋史硏究, 48(4) (1990)
- 丁仲煥, "駕洛國記의 文獻學的 考察", 伽倻文化, 3 (1990), 伽倻文化硏究院
- 金煐泰, "駕洛佛敎의 傳來와 그 展開", 佛敎學報, 27 (1991)
- 金泰植, "가야사 연구의 시간적․공간적 범위", 韓國古代史論叢, 2 (1991),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安春培, "伽倻土器의 硏究", 嶺南考古學, 9 (1991)
- 李基東, "伽倻史 硏究의 諸問題", 伽倻文化, 4 (1991)
- 千寬宇, "加耶史硏究" (1991), 一潮閣
- 김용덕, "가야불교 설화의 연구", 韓國學論集, 21 (1992)
- 金元龍, "考古學에서 본 伽耶", 가야문화, 5 (1992)
- 金恩淑, "日本書紀의 ‘任那’기사의 기초적 검토, In 韓國史市民講座 11" (1992), 一潮閣
- 金泰植, "6세기 중엽 加耶의 멸망에 대한 硏究", 韓國古代史論叢, 4 (1992)
- 金泰植, "加耶史硏究의 現況, In 韓國史市民講座 11" (1992), 一潮閣
- 金鉉球, "‘任那日本府’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In 韓國史市民講座 11" (1992), 一潮閣
- 白承玉, "新羅․百濟 각축기의 比斯伐加耶", 釜大史學, 15 (1992)
- 白承忠, "‘加耶’의 用例 및 시기별 분포상황", 釜山史學, 22 (1992)
- 申敬澈, "金官加耶의 成立과 對外關係, In 伽耶와 東아시아" (1992), 김해시
- 全虎兌, "伽倻古墳壁畵에 관한 일고찰", 韓國古代史論叢, 4 (1992)
- 田中俊明, "大加耶連盟の興亡と任那" (1992), 吉川弘文館
- 崔秉鉉, "新羅와 加耶의 墓制", 韓國古代史論叢, 3 (1992)
- 洪潤植, "伽倻佛敎에 대한 諸問題와 그 史的 位置", 伽耶考古學論叢, 1 (1992), 伽耶文化硏究所
- 金泰植, "加耶聯盟史" (1993), 一潮閣
- 文明大, "伽耶美術史 硏究의 課題", 先史와 古代, 64 (1993)
- 朴天秀, "삼국시대 창녕지역의 고분문화", 嶺南考古學, 13 (1993)
- 宣石悅, "‘三國史記’ 新羅本紀 加耶關係記事의 檢討", 釜山史學, 24 (1993)
- 申敬澈, "최근 가야지역의 고고학적 성과", 加耶史論 (1993),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安春培, "伽倻土器와 그 領域의 연구", 박사, pp.1993
- 李永植, "加耶諸國と任那日本府" (1993), 吉川弘文館
- 林孝澤, "洛東江下流域 加耶의 土壙木棺墓 硏究", 박사, pp.1993
- 田中俊明, "大加耶連盟の興亡", 加耶史論 (1993),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金泰植, "咸安 安羅國의 成長과 變遷", 韓國史硏究, 86 (1994)
- 金鉉球, "4세기 加耶와 百濟·야마토倭와의 관계", 韓國古代史論叢, 6 (1994)
- 權珠賢, "阿羅加耶의 成立과 發展」", 啓明史學, 4 (1994)
- 權鶴洙, "加耶諸國의 相互關係와 聯盟構造", 韓國考古學報, 31 (1994)
- 李永植, "加耶諸國의 外交形式", 韓國古代史硏究, 7 (1994)
- 李永植, "九干社會와 駕洛國의 成立", 伽倻文化, 7 (1994), 伽倻文化硏究院
- 李熙眞, "加耶의 消滅過程을 통해 본 加耶-百濟-新羅關係", 歷史學報, 141 (1994)
- 李熙眞, "4세기 중엽 백제의 ‘加耶征伐’", 韓國史硏究, 86 (1994)
- 조희승, "가야사연구" (1994), 사회과학원출판사
- 대가야의 불교, in 加耶史硏究, "金福順", 慶尙北道, ~ (1995)
- 金世基, "大加耶 墓制의 變遷",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金貞淑, "大伽耶의 성립과 발전",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金亨坤, "阿羅伽耶의 形成過程 硏究-考古學的 資料를 중심으로-", 加羅文化, 12 (1995)
- 權珠賢, "安邪國에 대하여-3세기를 중심으로-", 大丘史學, 50 (1995)
- 南在祐, "加耶史에서의 ‘聯盟’의 의미", 昌原史學, 2 (1995)
- 盧重國, "大加耶의 政治․社會構造",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白承玉, "比斯伐加耶의 形成과 國家的 性格", 韓國文化硏究, 7 (1995)
- 白承忠, "加羅國과 于勒十二曲", 釜大史學, 19 (1995)
- 白承忠, "가야의 지역연맹사 연구", 박사, pp.1995
- 李明植, "大伽耶의 歷史․地理的 環境과 境域",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李文基, "大加耶의 對外關係",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李永植, "百濟의 加耶進出過程", 韓國古代史論叢, 7 (1995)
- 李永植, "6世紀 安羅國史 硏究", 國史館論叢, 62 (1995)
- 李炯佑, "大伽耶의 멸망과정",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李熙濬, "토기로 본 大加耶의 圈域과 그 변천",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李熙眞, "廣開土王碑文에 나타난 任那加羅征伐 배경과 영향", 韓國古代史硏究, 10 (1995)
-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加耶諸國의 鐵" (1995), 신서원
- 朱甫暾, "序說-가야사의 새로운 定立을 위하여",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崔光植, "대가야의 신앙과 제의", 加耶史硏究 (1995), 慶尙北道
- 金杜珍, "加耶 建國神話의 성립과 그 변화", 韓國學論叢, 19 (1996)
- 金泰植, "대가야의 세계와 도설지", 진단학보, 81 (1996)
- 朴天秀, "大伽耶의 古代國家 形成" (1996), 碩晤尹容鎭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 白承忠, "安羅의 移那斯·麻都에 대한 검토", 지역과 역사, 2 (1996)
- 白承忠, "加羅·新羅 ‘결혼동맹’의 결렬과 그 추이", 釜大史學, 20 (1996)
- 李熙眞, "百濟勢力의 加耶進出과 加耶의 對應", 軍史, 33 (1996)
- 趙榮濟, "옥전고분군의 편년연구", 嶺南考古學, 18 (1996)
- 趙仁成, "6世紀 阿羅加耶(安羅國)의 支配勢力의 動向과 政治形態", 加羅文化, 13 (1996)
- 金煐泰, "伽耶佛敎의 史的 考察", 伽耶文化, 10 (1997)
- 金泰植, "加耶聯盟의 諸槪念 比較, In 加耶諸國의 王權" (1997), 신서원
- 金泰植, "백제의 가야지역 관계사 : 교섭과 정복", 백제의 중앙과 지방 (1997),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金鉉球, "가야의 대외관계", 한국사, 7 (1997), 국사편찬위원회
- 金世基, "加耶의 殉葬과 王權", 加耶諸國의 王權 (1997), 仁濟大學校 加耶文化硏究所
- 金煐泰, "伽耶佛敎의 史的 考察", 伽耶文化, 10 (1997)
- 白承玉, "固城 古資國의 성장과 변천", 韓國古代史硏究, 11 (1997)
- 白承忠, "安羅·加羅의 멸망과정에 대한 검토", 지역과 역사, 4 (1997)
- 李永植, "大加耶의 領域과 國際關係", 伽倻文化, 10 (1997), 伽倻文化硏究院
- 李永植, "加耶佛敎의 傳來와 問題點", 伽倻文化, 11 (1997)
- 李炯基, "小伽耶聯盟體의 成立과 그 推移", 民族文化論叢, 17 (1997)
-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加耶諸國의 王權" (1997), 신서원
- 金世基, "加耶의 文化", 加耶文化圖錄 (1998), 慶尙北道
- 金泰植, "駕洛國記 所載 許皇后 說話의 性格", 韓國史硏究, 102 (1998)
- 東潮, "伽耶諸國の領域をめぐって, In 伽耶はなぜほろんだか (增補改訂版)" (1998), 大和書房
- 朴天秀, "大伽耶圈 墳墓의 編年", 韓國考古學報, 39 (1998)
- 白承忠, "문헌에서 본 가야·삼국과 왜", 韓國民族文化, 12 (1998)
- 연민수, "고대한일관계사" (1998), 도서출판 혜안
- 李根雨, "6世紀代 加耶諸國의 국가구조에 대한 試論", 加耶와 新羅 (1998), 김해시
- 李盛周, "新羅·伽倻社會의 政治·經濟的 起源과 成長", 박사, pp.1998
- 李永植, "加耶佛敎의 傳來와 問題點", 伽倻文化, 11 (1998)
- 李鎔賢, "加羅諸國の權力構造", 國史學, 164 (1998)
- 李鎔賢, "加耶의 姓氏와 ‘金官’國", 史叢, 48 (1998)
- 李柱憲, "토기로 본 安羅와 新羅", 加耶와 新羅 (1998), 김해시
- 李炯基, "星山伽耶聯盟體의 成立과 그 推移-加耶史에서의 地域聯盟體에 대한 一試論", 民族文化論叢, 18 (1998)
- 이희진, "加耶政治史硏究" (1998), 學硏文化社
- 權珠賢, "가야인의 생활문화-식문화를 중심으로-", 韓國古代史硏究, 16 (1999)
- 金杜珍, "韓國古代의 建國神話와 祭儀" (1999), 一潮閣
- 白承玉, "加耶 對外交涉의 展開過程과 그 擔當者들", 加耶의 對外交涉 (1999), 김해시
- 白承玉, "加羅 擬制縣의 존재와 그 정치적 성격", 伽倻文化, 12 (1999), 伽倻文化硏究院
- 白承忠, "가야의 개국설화에 대한 검토", 역사와 현실, 33 (1999)
- 李鎔賢, "加耶と東アジア諸國", 박사, pp.1999
- 李鍾旭, "한국의 초기국가" (1999), 아르케
- 李漢祥, "장신구를 통해 본 大加耶聯盟, In 대가야의 정치와 문화적 특성" (1999), 고령군
- 權珠賢, "于勒을 통해 본 大加耶의 文化", 韓國古代史硏究, 18 (2000)
- 權珠賢, "가야의 생활문화(2)-주거문화를 중심으로-", 新羅文化, 18 (2000)
- 김두철, "마구를 통해 본 가야와 백제", 加耶와 百濟 (2000), 김해시
- 김애경, "6세기 百濟의 加耶진출과 그 성격", 梨花史學硏究, 27 (2000)
- 金泰植, "역사학에서 본 고령 가라국사, In 가야각국사의 재구성" (2000), 혜안
- 金鉉球, "百濟의 加耶進出에 관한 一考察", 東洋史學硏究, 70 (2000)
- 박순발, "加耶와 漢城百濟", 加耶와 百濟 (2000), 김해시
- 朴升圭, "考古學을 통해 본 小加耶, In 考古學을 통해본 加耶" (2000), 韓國考古學會
- 朴天秀, "考古學으로 본 加羅國史, In 가야 각국사의 재구성" (2000), 혜안
- 朴天秀, "考古學 資料를 통해 본 大加耶, In 考古學을 통해 본 加耶" (2000), 韓國考古學會
- 부산대학교한국민족문화연구소, "가야각국사의 재구성" (2000), 혜안
- 白承忠, "6세기 전반 백제의 가야진출과정", 백제연구, 31 (2000)
- 白承忠, "文獻에서 본 加耶․三國과 倭", 韓國民族文化, 12 (2000), 釜山大學校 韓國民族文化硏究所
- 白承忠, "가야의 정치구조-‘부체제’ 논의와 관련하여-", 韓國古代史硏究, 17 (2000)
- 申敬澈, "금관가야의 성립과 연맹의 형성, In 가야각국사의 재구성" (2000), 혜안
- 우재병, "4∼5세기 武器·武裝體系에 보이는 加耶와 倭의 交易體系 變動, In 韓國古代史와 考古學" (2000), 학연문화사
- 李盛周, "考古學을 통해 본 阿羅伽耶, In 考古學을 통해 본 加耶" (2000), 韓國考古學會
- 李鎔賢, "加羅(大加耶)를 둘러싼 國際的 環境과 그 對外交涉", 韓國古代史硏究, 18 (2000)
- 李漢祥, "大加耶圈 裝身具의 編年과 分布", 韓國古代史硏究, 18 (2000)
- 李炯基, "大加耶의 聯盟構造에 관한 試論", 韓國古代史硏究, 18 (2000)
- 정운용, "6世紀 新羅의 加耶 倂合과 그 意味", 史叢, 52 (2000)
- 丁仲煥, "加羅史硏究" (2000), 혜안
- 朱甫暾, "가야사 인식과 사료문제, In 한국고대사와 고고학" (2000)
- 洪潽植, "考古學으로 본 金官加耶, In 考古學으로 본 加耶", 韓國考古學會
- 노중국, "가야사연구의 어제와 오늘, In 한국고대사 속의 가야" (2001), 혜안
- 白承玉, "전기 가야소국의 성립과 발전, In 한국고대사 속의 가야" (2001), 혜안
- 白承忠, "가야 건국신화의 재조명, In 한국고대사 속의 가야" (2001), 혜안
- 李永植, "가야인의 정신세계, In 한국 고대사 속의 가야" (2001), 혜안
- 李永植, "문헌으로 본 가락국사, In 가야각국사의 재구성" (2001), 혜안
- 李賢惠, "加耶의 交易과 經濟, In 한국 고대사 속의 가야" (2001), 혜안
- 李鎔賢, "가야의 대외관계, In 한국 고대사 속의 가야" (2001), 혜안
- 山本孝文, "伽耶地域 橫穴式石室의 出現背景 - 墓制 變化의 諸側面에 대한 豫備考察-", 百濟硏究, 34 (2001)
- 金泰植,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1∼3권" (2002), 푸른역사
- 金世基, "大加耶와 周邊諸國" (2002), 고령군·韓國上古史學會
- 朴天秀, "古塚을 통해 본 加耶의 政治的 發展, In 동아시아 大形古墳의 出現과 社會變動" (2002), 國立文化財硏究所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으로서의 가야사" (2002), 혜안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가야고고학의 새로운 조명" (2002), 혜안
- 成正鏞, "大加耶와 百濟, In 大加耶와 周邊諸國" (2002), 학연문화사
- 우재병, "4~5世紀 倭에서 加耶·百濟로의 交易루트와 古代航路", 호서고고학, 6(6집), pp.165~200 (2002), 호서고고학회
- 趙榮濟, "考古學에서 본 大加耶聯盟體論, In 盟主로서의 금관가야와 대가야" (2002), 김해시
- 姜賢淑, "考古學에서 본 4·5세기 高句麗와 伽耶의 成長, In 加耶와 廣開土王", 김해시
- 金世基, "고분자료로 본 대가야 연구" (2003), 학연문화사
- 金世基, "墓制로 본 加耶社會, In 가야고고학의 새로운 조명", ~ (2003)
- 金泰植, "초기 고대국가론, In 강좌 한국고대사 2" (2003), 가락국사적개발원
- 金鉉球, "任那日本府硏究-韓半島南部經營論批判" (2003), 一潮閣
- 金鉉球, "日本書紀 韓國關係記事 硏究(2)" (2003), 一志社
- 南在祐, "安羅國史" (2003), 혜안
- 朴升圭, "大加耶土器의 擴散과 관계망", 한국고고학보, 49, pp.81~117 (2003), 한국고고학회
- 朴天秀, "토기로 본 대가야권의 형성과 전개, In 대가야의 遺蹟과 遺物" (2003), 大加耶博物館
- 白承玉, "加耶各國史硏究" (2003), 혜안
- 李根雨, "熊津․泗沘期의 百濟와 大加羅, In 古代 東亞細亞와 百濟" (2003), 서경
- 田中俊明, "高句麗 進出 以後의 金官國, In 加耶와 廣開土王" (2003), 김해시
- 곽장근, "湖南 東部地域의 伽倻勢力과 그 成長過程", 호남고고학보, 20, pp.91~124 (2004), 호남고고학회
- 權珠賢, "가야인의 삶과 문화" (2004), 혜안
- 盧重國, "大加耶의 성장기반, In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 (2004), 고령군
- 백승옥, "安羅高堂會議'의 성격과 安羅國의 위상", 지역과 역사, 0(14), pp.7~39 (2004), 부경역사연구소
- 桃崎祐輔, "倭出土의 馬具로 본 國際關係, In 가야, 그리고 倭와 北方" (2004), 김해시
- 山本孝文, "大伽耶와 榮山江勢力-소위 ‘三國周邊’의 社會水準과 交易-, In 大加耶의 成長과 發展" (2004), 고령군·韓國古代史學會
- 이동희, "全南東部地域의 加耶系 土器와 歷史的 性格", 한국상고사학보, 46(46), pp.71~112 (2004), 한국상고사학회
- 李文基, "金官伽耶系의 始祖出自傳承과 稱姓의 변화", 신라문화제학술대회논문집, 25 (2004)
- 김현미, "卓淳國의 성립과 대외관계의 추이", 역사와경계, (57), pp.1~55 (2005), 부산경남사학회
- 盧重國, "가야의 대외교섭-3∼5세기를 중심으로-, In 加耶의 海上勢力" (2005), 김해시
- 朴升圭, "小加耶圈의 토기변동과 대외교섭, In 加耶의 海上勢力" (2005), 김해시
- 백승충, "가야의 지역연맹론", 지역과 역사, 17(17), pp.5~43 (2005), 부경역사연구소
- 유우창, "대외관계로 본 가락국의 발전-5세기 대를 중심으로-", 지역과 역사, 16 (2005)
- 이재현, "금관가야의 성장과 대외교역-교역로 변화를 중심으로, In 加耶의 海上勢力" (2005), 김해시
- 곽장근, "웅진기 백제와 가야의 역학관계 연구", 백제연구, 44(44), pp.85~124 (2006), 백제연구소
- 곽장근, "전북 동부지역 가야와 백제의 역학관계", 백제문화, 2(43), pp.29~60 (2010), 백제문화연구소
- 김장석, "土器의 流通을 통해 본 百濟와 加耶의 交涉, In 백제 생산기술과 유통의 정치사회적 함의" (2006), 한신대학교 학술원
- 김태식, "韓國 古代諸國의 對外交易―加耶를 中心으로―", 진단학보, (101), pp.1~32 (2006), 진단학회
- 金泰植, "5∼6세기 고구려와 가야의 관계", 북방사논총, 11 (2006), 고구려연구재단
- 朴天秀, "대가야권의 성립과정과 형성배경, In 토기로 보는 대가야" (2006), 대가야박물관
- 朴天秀, "任那四縣과 己汶, 帶沙를 둘러싼 百濟와 大伽耶, In 加耶, 洛東江에서 榮山江으로" (2006), 김해시
- 白承忠, "가야의 ‘고대국가론’ 비판", 釜大史學, 30 (2006)
- 백승충, "‘下部思利利’ 명문과 가야의 部", 역사와경계, (58), pp.95~132 (2006), 부산경남사학회
- 우재병, "5∼6世紀 百濟․加耶․倭사이의 廣域交易體系 再編과 그 背景", 선사와 고대, (31), pp.197~226 (2009), 한국고대학회
- 李永植, "가야사연구의 성과와 전망, In 한국고대사입문 2" (2006)
- 李永植, "가야와 고구려의 교류사 연구", 韓國史學報, (25), pp.51~83 (2006), 고려사학회
- 이한상, "裝飾大刀로 본 百濟와 加耶의 交流", 백제연구, (43), pp.61~83 (2006), 백제연구소
- 朱甫暾, "于勒의 삶과 가야금, In 악성 우륵의 생애와 대가야의 문화" (2006), 고령군·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 홍보식, "문물로 본 가야와 백제의 교섭과 교역", 호서고고학, (18), pp.116~147 (2008), 호서고고학회
- 洪潽植, "대가야의 문화교류, In 악성 우륵의 생애와 대가야의 문화" (2006), 고령군·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 권덕영, "금관가야 ‘仇衡王陵’ 전승과 역사화 과정", 대구사학, 86, pp.25~56 (2007), 대구사학회
- 김량훈, "4~5세기 남부가야제국과 백제의 교섭 추이", 역사와경계, (65), pp.183~218 (2007), 부산경남사학회
- 金世基, "대가야연맹에서 고대국가 대가야국으로, In 5∼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대가야" (2007), 고령군 대가야박물관·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 김태식, "가야, In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2007), 서경문화사
- 白承玉, "己汶·帶沙의 위치비정과 6세기 전반대 가라국과 백제, In 5∼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대가야" (2007), 고령군 대가야박물관·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 梁起錫, "5∼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대가야" (2007), 고령군 대가야박물관·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 이근우, "특집 : 백제의 대외교류 ; 웅진시대(熊津時代) 백제(百濟)와 가야(加耶)", 백제문화, (37), pp.37~53 (2007), 백제문화연구소
- 이영식, "『일본서기』의 활용과 문제점, In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2007), 서경문화사
- 연민수, "임나일본부, In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2007), 서경문화사
- 趙榮濟, "옥전고분군과 다라국" (2007), 혜안
- 김세기, "가야지역 고분자료와 묘제의 지역성 고찰", 영남학, (13), pp.165~210 (2008), 영남문화연구원
- 남재우, "柒浦國의 성립과 변천", 한국상고사학보, 61(61), pp.59~84 (2008), 한국상고사학회
- 박현숙, "백제의 섬진강 유역 영역화와 가야와의 관계, In 백제와 섬진강" (2008), 서경문화사
- 우재병, "3~5세기 백제지역 素環頭刀를 통해본 백제 · 가야 · 왜의 교역체계", 韓國史學報, (33), pp.405~441 (2008), 고려사학회
- 이은창, "고령지역의 선사, 고대사회와 암각화" (2008), 령군 대가야박물관․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한국암각화학회
- 전덕재, "삼국시대 낙동강 수로를 둘러싼 신라와 가야세력의 동향 - 낙동강 중류지역을 중심으로 -", 대구사학, 93, pp.29~81 (2008), 대구사학회
- 朱甫暾, "새로운 大伽耶史의 定立을 위하여-硏究上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嶺南學, 13 (2008),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김태식, "악사 우륵과 의령지역의 가야사" (2009), 홍익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우륵문화발전연구회
- 권주현, "「王后寺」와 加耶의 佛敎傳來問題- 加耶社會의 信仰體系와 관련하여 -", 대구사학, 95, pp.41~71 (2009), 대구사학회
- 권주현, "대가야의 정신세계" (2009), 해웃음
- 박천수, "호남 동부지역을 둘러싼 大伽耶와 百濟 – 任那四縣과 己汶, 帶沙를 중심으로 –", 한국상고사학보, 65(65), pp.107~130 (2009), 한국상고사학회
- 白承玉, "韓과 加耶의 譯人", 歷史敎育論集, 42 (2009)
- 유우창, "5∼6세기 ‘나제동맹’의 전개와 가야의 대응", 역사와경계, (72), pp.115~153 (2009), 부산경남사학회
- 강봉룡, "고대 동아시아 연안항로와 영산강·낙동강유역의 동향-4세기 이전을 중심으로-", 『도서문화』, (36), pp.7~36 (2010), 도서문화연구원
- 남재우, "식민사관에 의한 가야사연구와 그 극복", 한국고대사연구, (61), pp.156~191 (2011), 한국고대사학회
- 이동희, "全南 東部地域 加耶文化의 起源과 變遷", 백제문화, (45), pp.5~41 (2011), 백제문화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