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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李氏 菊堂公派의 榮州 정착과 鄕村社會 活動

The Settlement of Gyeongju Lee Family, Gukdanggongpa in Yeongju and it's Activity in Local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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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영주지역에서 대표적인 사족가문의 하나인 경주이씨가 어떻게 이곳에입향하여 정착하면서 향촌활동을 전개하였는지 살핀 것이다. 경주이씨 국당공파는 조선중기에 李介立 때 영주에 입향하여 혼인과 과거 급제등 다양한 사회적 기반을 갖추면서 정착하고 성장하였다. 이개립은 박승임과 김성일 등에게 수학하였고, 유성룡에게 유일로 천거되어 임란 때에는 왜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봉산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경주이씨는 광해군 2년(1610) 이개립이 서당을 세우려다가 임란 때문에 중지하였던 옛 行衣寺 자리에 서당을 건립하였다. 현종 5년(1664)에는 김응조의 적극적후원과 경주이씨의 주도로 이개립을 제향하고 節孝祠라고 하였다. 숙종 5년(1679)에는 학문적 명망과 관직이 높았던 김응조를 추향하였고, 23년에는 義山書院으로 승격시켜 일정한 위상을 갖춘 서원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은 당시가문의 위상이 중요하였던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주이씨가 숙종대 이후 6명의 사마시 입격자와 7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사회적 위상을 한층 높이려는 의도의 하나였다고 하겠다. 의산서원에 제향된 이개립은 경주이씨의 입향조였고, 김응조와 서로 학문적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유성룡과 장현광의 제자였던 김응조 역시 이 서원의건립과 운영에 큰 역할을 하였고, 지역에서 학문적, 정치적 위상이 높아 추향되었을 것이다. 경주이씨는 서원의 원장직을 맡는 등 주도적으로 서원을 운영하였고, 世德祠와誠山書堂 및 石宗齋 등을 세워 가문의 결속과 지위를 확고하게 하였다. 이 외에도養拙堂과 避炎亭 등 5개의 누정을 건립하고 芙蓉契를 조직하여 지역의 사족들과인적 관계망을 유지하였다. 특히 선조 초에는 李徽音 등이 상소로써 이언적을 변무하여 그를 문묘에 배향시킴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Abstract

Yeongju Sajoks such as the Gyeongju Lee Family were migrated and settled in this area, forming a village community under a socioeconomic base. The number of people who passed the Samasi(司馬試) in Yeongju were 508people. Uisan Shrine(義山書院) originated from a private school. Lee, Gae-Rip intended to construct a private school, but it was stopped by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Jin, Sang-Hong and so on constructed a private school where Haenguisa(行衣寺) was located. Uisan Shrine was supported by Kim, Eung-Jo, enshrined Lee Gae-Rip and named Jeolhyosa(節孝祠) in the fifth reign of Hyeonjong(顯宗). It enshrined additionally Kim, Eung-Jo in the fifth reign of Sukjong(肅宗). Also, it has been renamed shrine in the twenty-third reign of Sukjong. Lee, Gae-Rip was the first ancestor in the family of Gyeongju Lee. He and Kim Eung-Jo, they connected with each other academically and relationally. Kim, Eung-Jo played a great role on construction and administration of Uisan Shrine. What's more, he was highly appreciated and enshrined because of his academic and political status. Gyeongju Lee Family led administration of shrine and took up a its president. It appropriated a source of revenue by earning a profit from a land of shrine. They established Sedeoksa(世德祠) and five pavilions such as Yangjoldang(養拙堂) and Piyeomjeong(避炎亭). Thus they influnced keeping social intercourse with local Saj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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