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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全州圈의 士族 硏究 序說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Country Noble at Jeonju Region in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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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시대 전주는 건국 시조 이성계의 관향이라는 연유로 인해 선초부터 왕과 집권세력으로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의 결과는 경기전, 조경묘, 조경단의 조성으로 이어졌으며, 다른 한편으로 현존하는 실록의 기원을 제공한 장소 역시 전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고는 전주와 인근 10개 군현을 포함한 전주권의 범주를 설정하고 문과급제자, 지리지 인물항 등재 인물, 서원ㆍ사우의 건립이라는 3가지 자료를 토대로 전주권의 유력사족에 해당하는 11개 가문을 선정해보았다. 이어 이들 11개 가문을 대상으로 시기별 활동 양상을 살펴보았다. 먼저 15세기 전주권의 유력사족들은 전주최씨, 전주유씨, 전주이씨, 여산송씨 등 모두 전주권의 토착성씨였으며, 아울러 이들 4가문은 고려 중후반기 이미 중앙정계에 진출하였고, 이를 토대로 조선 건국 이후에도 계속 이 지역의 유력사족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柳崇祖는 전주출신으로 중종 초반 성균관 대사성으로 재직하면서 趙光祖를 비롯한 많은 사림들을 배출하는 한편 이 지역의 성리학 학풍 振作에도 일조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16세기에는 여타의 지역처럼 여말 선초를 전후하여 이 지역에 새롭게 이거해 온 성씨들이 유력사족으로 등장하여 활동하였다. 예컨대 전의이씨 李繼孟과 李昌壽, 진주소씨 陽谷형제 등이 이에 해당하는 인물이며, 이들의 면면을 보아 전주권의 사족 사회가 이 시기 들어 사림적인 성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 들어서는 종전의 전의이씨, 진주소씨와 더불어 새롭게 한산이씨와 진천송씨가 유력사족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특히 이들 유력사족들은 己丑獄死와 仁祖反正 등을 거치면서 대체로 西人 계열로 재편되어 활동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동래정씨 가문은 몰락하거나 타 지역으로 이거하였다. 18세기 역시 전의이씨 창수계열과 진천송씨 英耈계열의 후손들이 전주권을 대표하는 유력사족으로 가문의 성세를 이어갔으며, 특히 전의이씨 木山 李基敬은 洛論의 宗匠인 李縡의 門人으로서 이 지역 낙론 학맥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렇기에 목산은 의리탕평론을 견지하는 한편 호락논쟁에서 人物性同論을 지지하였다. 결론적으로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주권도 유력사족이 되기 위해서는 문과급제를 통한 관직 진출, 지역 및 중앙의 중요 가문들과의 혼인을 통한 연대 등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후 여타의 지역과는 다른 전주권 만의 특성을 해명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Abstract

During Chosun Dynasty, Jeonju was remarked by the Royal family and ruling parties because Jeonju was the birthplace of Lee Seong Gye's(founder of Chosun Dynasty) first ancestor. These attention resulted in building up Gyunggijeon, Jokyungmyo, Jokyeongdan in this area. Meanwhile, Jeonju preserved the only existing Chosun Dynasty chronicles from plunder of Japan. Therefore, this study selects 11 Jeonju local families by categorizing Jeonju and its nearby villages and investigating 3 research data about people who succeeded in national examinations, were registered in a character clause of Jiriji(a document about Chosun Dynasty's territory and people), and founded seowon and Sa-woo. First of all, during 15th century 4 influential families in Jeonju including Jeonju choi, Jeonju you, Jeonju Lee and Yeosan song family were all native families that were based on Jeonju. These families had already been engaged in politics from Koryeo Dynasty and continued to be influential during next Chosun Dynasty. Especially, while You Seung Jo were in office of Seonggyunkwan Dae sa seong, he helped make many sarim(local academic hermit group) including famous Confucian scholar Jo Kwang Jo and contributed to promoting the academic atmosphere. During 16th century converging from Koryeo to Chosun Dynasty, newly immigrated families into Jeonju became influential and actively involved in society of those days. For example, people like Lee Kye Maeng and Lee Chang Soo from Jeonju Lee family, Yang gok brothers from JinJu So family were identified as becoming sarim(local academic hermit group). During 17th century Hansan Lee family and Jinchon Song family joined into influential families in Jeonju. In particular, these leading families were reorganized as Seo-in (West party) after undergoing Kichukoksa(death in prison) and Injobanjeong(deposing the former ruler) while Dong-lae Jeong family colllapsed and moved out of Jeonju. During 18th century Chang-su branch of Jeonju Lee family and Young -- branch of Jincheon Song family were the most high-powered families of all clans. Above all, Jeon-eui Lee family's Moksan Lee Ki Kyeong was leading the mainstream of national study as Nak-lon's member. In this regard, Moksan supported Bantangpyeonglon(anti-partisan politics policy) politically and Inmulseongdong(principle of sameness between human and materials) academically. In conclusion, it was very important for Jeonju local nobles to take up pass the higher civil service examinationand jointly incorporate with other central and regional famous familes by marital union in order to be consistently influential power. It is promised to verify Jeonju's unique property differentiating itself from other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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